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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이웃 친구와 함께 집 근처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저녁 찬거리도 조금 사고, 마침 쓰레기봉투도 떨어져 구입하면서 푸념을 늘어놨다.

 

"아유, 쓰레기봉투도 많이 쓰니까 비용을 무시 못하겠어. 애 기저귀 때문에 더 많이 드는 것 같아. 얼른 기저귀를 떼든지."

 

8개월짜리 아이를 두고 있는 친구 역시 "맞아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는데, 웬 걸. 여유 있는 표정으로 하는 말이 좀 '깬다'.

 

"우린 한 달에 두세 장 쓸까 말까 하는데…."

 

그 집 쓰레기봉투는 요술봉투라도 되는지, 그 많은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기에 한 달에 고작 두세 장이래? 궁금해서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기저귀도 장난 아닐 텐데…."

"응, 마트에 장 보러 올 때마다 티 안 나게 조금씩 싸와서 버려. 근데 나만 그런 거 아냐. 이 동네 아줌마들 그렇게들 많이 한다던데?"

"정말?…."

 

쓰레기봉투 적게 쓰는 비법, 기발(?)하네

 

알뜰하게 쓰레기양을 줄일 수 있는 묘안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비법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공공장소에 티 안 나게 버린다? 기발(?)하지만 씁쓸하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나만 손해 본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다지 '땡기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처럼 정말 그런가 싶어 주위 다른 엄마들에게 물어봤다. 반응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래? 난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러게, 정말 머리들도 좋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심했다!"

 

그 친구의 말과 달리 이 동네 아줌마들이 다 그런 것 같진 않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게. 근데 개운치 않은 이 '뒤끝'은 뭐지? 며칠 뒤 마트 직원에게 직접 물어봤다.

 

"요즘 생활 쓰레기를 마트에 몰래 내다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네, 검정색 비닐봉지 같은 데 담아와 종종 몰래 버리는 가는 경우가 있다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좀 어떻게 해달라는데, 저희들 눈앞에서 버리는 건 아니니까 참 곤란하더라구요."

"어떤 걸 보고 가정 쓰레기라고 하시는 건지?"

"감자껍질 같은 게 나오더라구요. 그런 건 마트에서 나올 수 없는 쓰레기이니까 주부들이 몰래 버리고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직원 뿐 아니라, 청소부 아줌마 두세 명에게도 물어봤다.

 

"그런 사람들 제법 있어요. 내가 5층 주차장 담당인데 차에서 쓰레기 봉지 들고 내려서 버리는 경우를 직접 보기도 했어요. 또 나중에 쓰레기통 치우다 보면 묶인 비닐봉지 더미가 종종 있더라구요. 그게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 아니겠어요?"

"비닐봉지를 다 풀어보진 않았지만, 가끔씩 감자껍질이나 기저귀 같은 내용물을 볼 수 있기도 해요. 근데, 티 나게 큰 건 아니고, 자그마한 봉지에 싸오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도 않아요. 내가 화장실 청소할 때 우리 마트 봉지에 꽉 채워 버린 쓰레기도 봤는 걸?"

 

검은색 비닐봉지 묶인 채 버려진 건... 안 봐도 비디오  

 

청소 아줌마들에 따르면, 종량제 봉투를 아끼려는 '알뜰한' 주부들이 의외로 제법 있고, 보통 작은 비닐봉지 수준이지만 가끔은 정말 '몰상식한' 용량의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경우도 있단다. 

 

마트 비닐 봉지를 가득 채운 쓰레기 더미도 가끔 나온다는 대목에선 같은 주부로서 부끄럽기 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지인 한 분도 "학교 운동장 쓰레기통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경우처럼 종량제 봉투 값을 아끼려고 한 데서 나온 행동일 거다. 그래도 그렇지, 봉투 값 얼마나 한다고 양심까지 팔까.

 

그런데 최근 뉴스에서 '쓰레기 불법투기'에 대한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쓰레기통 옆에 떡하니 검은색 비닐봉지에 생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다리 밑에 아예 자루째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대형폐기물 처리필증을 부착하지 않고 버리는 사람 등.

 

사실 이런 '쓰레기 불법투기'는 종량제 봉투 도입과 함께 끊이지 않았던 뉴스거리였지만, 온 세계가 휘청거리는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그 빛을 더 발하는 듯하다. 처음 친구에게 이런 얘길 접했을 땐 잠깐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혹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오늘도 난 마트에서 찬거리 쇼핑을 하고 쓰레기봉투를 샀다. 오히려 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두부, 콩나물 사는 그런 똑같은 맘으로 말이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그 친구에게도 슬쩍 말해줘야겠다.

 

"그런 사람 별로 없다고 하더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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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쓰레기무단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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