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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성벽 안에 집을 짓기 전에 광야에 그대들 상상의 초당(草堂) 하나를 지으라. 그대들, 황혼이면 돌아오듯이 그대들 속의 멀고 외로운 방랑자도 결국 돌아오리니. 그대들의 집이란 그대들의 보다 큰 육체, 태양 속에 자라며 밤의 정적 속에 잠든다, 또한 꿈꾼다. 그대들의 집은 꿈꾸지 않는가? 꿈꾸며, 숲이나 언덕 꼭대기를 향하여 도시를 떠나고 있지는 않은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가운데 한 대목을 읽다 이 대목에 밑줄을 긋고 싶어졌다. 제 손으로 집을 지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이 남달리 읽히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인 1998년, 목수 두 사람과 함께 작은 나무집을 지어 본 적이 있다. 19평짜리 전셋집의 보증금 3500만원에 은행 빚을 얹어서 무모하게 저지른 일이었다. 집을 어떤 구조로 할 것인가. 자재를 무엇으로 하고 난방과 수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마당에 나무는 무엇을 심을까.

 

아내와 나는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건축자재를 사러 자재상이 밀집한 서울의 을지로나 경기도 광주 인근을 무수히 오가야 했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스스로의 노동과 발품을 팔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다보는 경치가 좋은 동쪽 산비탈로 창을 내자는 내 생각과 남쪽으로 창을 내야 채광이 잘 되고 거주환경이 좋아진다는 아내의 의견이 일치하기까지는 숱한 토론을 거쳐야 했다.

 

그 집은 단 번에 완성되지도 않았다. 형편에 따라 돈이 조금 생기면 방 하나를 달아냈다. 집을 지은 지 7, 8년이 지나서야 아내와 둘이서 시멘트블록과 외장재를 사다 좌대를 만들고 소망하던 벽난로를 놓기도 했다.

 

수도나 보일러가 망가지면 스스로 땅을 파고 파이프를 잇거나 보일러를 뜯어 부품을 교체해야만 했다. 못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내가 시골살이를 하다 보니 어지간한 미장이나 목수일도 남의 손을 빌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업자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조경공사 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삽 한 자루로 마당을 평탄하게 고르고 서울시 상일동 나들목 근처나 종로5가·6가에 늘어선 묘목상에서 산수유·살구·자두·매화·모과나무를 사다 심었다.

 

나무들은 때가 되면 환한 전등이라도 켜둔 것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모든 동물들이 그러듯 제 손으로 살 집을 지어본 일은 정말 큰 '공부'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시골살이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삶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 사는 10년 동안 몇 번 도시 아파트값이 폭등했다. 그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자기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나 자랑하는 얘기를 듣는 게 일이 되다시피 했다.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다락같이 올라버린 집값과 멀어진 집 마련의 꿈을 한탄하곤 했다.

 

1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우리 집 공시지가를 떠올리면 남들이 하는, 갑자기 뛴 집값으로 몇 억 원을 벌었다는 식의 얘기들은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우리 안의 '멀고 외로운 방랑자'가 돌아갈 거처이거나 '보다 큰 육체'는 고사하고 온 가족이 깃들어 살고 있는 집을 오로지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 것인가, 투기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라고 몰아가는 시대 분위기가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철로변의 공구박스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한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큰 집을 짓고 그 공간에 월부로 온갖 가구들을 들여놓은 뒤 그 빚을 갚느라고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 월부 가구들을 형벌처럼 등에 지고 노예노동을 자처하는 것 같다고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냉소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이 인생의 서열을 정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는 우리시대의 강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동산 투기에 기대 인생설계를 하라고 부추기는 시장과 정부의 논리는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우리 경제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지만 아파트 값이 폭락하고 있다고 한다. 집 때문에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나 또한 이 집을 지으면서 빚이 생겼다.

 

모두를 투기적 소유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게 만드는 현실의 집이, 우리 안의 '멀고 외로운 나그네가 돌아가 쉴 보다 큰 육체'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와 소통의 풀뿌리 안산  인터넷매체 grasslooti.net(12월 3일자)에 함께 실린 것입니다. 


태그:#집짓기 , #아파트 ,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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