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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봄 동경, <숭덕학사>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물론 기독교사에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단체다. 숭덕학사에는 박영출이라는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기독교를 독립운동에 활용하고 있었다. 그곳의 집회에서는 배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일을 중시했으므로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조선인들도 그곳을 많이 찾았다.

훗날 만주에서 장준하와 만나게 되는 김준엽이나, 박정희의 유신 독재 시절 김대중의 미국 내 반정부 활동을 지원한 최기일 등도 숭덕학사에 드나들었다. 그 자리에는 신안소학교에서 교사를 지낸 장준하와 김용묵도 있었다.

어느 날 김용묵이 낯선 유학생 하나를 데리고 와 장준하에게 소개했다. 그는 임주호였다. 조선인 유학생이면 모름지기 문학을 하거나 정치· 경제학 등을 전공하기가 일쑤였는데, 이색적이게도 임주호는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치과대학이라면 요즘 남학생이 간호학과나 의생활대에 다니는 일보다 더 시답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평생 남의 입이나 들여다보며 산다는 말인가?"

이빨이 좋으면 5복 중 하나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치과대학을 백안시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임주호는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임주호가 치과대학에 간 것은 수학과 입시에서 낙방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명문대학은 조선인의 입학을 노골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이른바 할당제란 게 있어서 게이오나 도쿄 상대의 경우 신입생 천 명 중에서 조선인 입학생 수는 10명 이내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학부의 경우 조선인 입학이 더 까다로웠다. 일어에 약한 임주호가 일어로 묻고 일어로 답해야 하는 입학시험에 통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치과대학에 적을 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가 정규 대학의 이학부에 입학하려면 예비학교에서 더 공부해야 했다. 예비학교란 요즘으로 치면 재수생 학원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임주호에게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에 갈 의욕이 없었다.

조선인 학생들은 숭덕학사에서 독서회를 열었다. 장준하는 임주호를 보고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임주호는 보통 조선인 학생과는 이미지가 아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민족적 신념은 물론 유학생으로서의 향학열도 없어 보였다. 그는 일본인에 대한 미움도 나타내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발표자들의 말을 소홀히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어느 누구의 말에도 쉽사리 공감을 표시하지 않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임주호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발표는 물론 질문도 하지 않았다. 발표를 들은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그냥 빙긋 웃으며, "잘 들었습니다"라고 짧게 응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사실은 제가 잘 몰라서 아무 말씀도 못 드리는 거니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고는 했다.

이강국과 장준하의 질의응답

한 유명 인사가 독서회에서 특강을 했다. 그는 경성제대의 수재였고, 투옥 경험이 있는데다, 베를린 대학에서 노동법을 전공한 학자라고 소개되었다. 물론 그는 이강국이었다. 그가 일본 공산주의자들을 만나러 온 김에 조선인 학생들을 보고 싶다고 하여 마련된 자리라고 했다.

모두들 이강국의 강의를 경청했다. 이강국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자신의 생각이 기독교와 상충되는 부분은 피해 가는 예의와 기지를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준하는 강의 도중에 두 번 이강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부르주아 자본주의 독재를 겪어야 무산자 혁명이 가능한 것인데, 우리 조선은 지금 식민지 상태가 아닙니까? 역사적으로 식민지 상태에서 곧장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대로 간 예도 없을 뿐더러 그 학문적 이론도 박약한 것 아닙니까?"

"현재 조선이 식민지 상태임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아울러 일본 자본가와 친일 부호 및 지주들에 의한 자본주의 독재 상태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이강국은 소신껏 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장준하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사회주의에서는 종교가 아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종교가 마약처럼 중독성과 전염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종교에는 개혁성과 구도성과 기복성이 있어 이 세 가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배타성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배타성이 있는 종교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치닫게 됩니다. 결과로 성공한 종교는 대부분 이기적이고 독선적입니다. 오죽하면, ‘종교가 이타적이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라는 말도 생겨났겠습니까? 그럴 경우 그 종교는 명백히 아편보다도 더 해롭습니다.

바로 일본인들의 천황 신앙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 일본 국민 중에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싱가포르나 발리 같은 곳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런 일본인들은 일본이 아시아의 군주가 된다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해 있습니다. 그런 일본인의 애국심이란 것은 국민이나 민족에 대한 사랑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종교적 충성과 숭배일 뿐입니다.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는 일본 국민의 노래가 아니라 천황 덴노에 대한 찬가입니다. 일본에서는 덴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최고의 인간적 미덕입니다. 덴노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신민 즉 일본인들은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중일전쟁 초기에 일본 병사 세 명이 다이너마이트 꾸러미를 걸머지고 중국군 진영으로 돌격하여 함께 터져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룻밤에 영웅이 되고 신격화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잖습니까? 바쿠단 산유시(폭탄 삼총사) 또는 니쿠단 산유시(육탄 삼총사), 이들은 천황을 위해 죽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아편과 같은 종교입니다."

이강국은 일본 천황에 대한 종교야말로 아편처럼 해롭다고 결론지었다. 장준하는 이강국에게 사의를 표했다.

"성실하신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특이한 청년, 임주호 

이강국의 강의는 한국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이강국이 강의를 마치면서 한 말은 회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뜬금없이 임주호를 언급했던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임주호 군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놀랐습니다. 저런 분 앞에서는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임군은 평소 조용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청년입니다. 저는 임군과 서울에서 독서회를 같이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 분의 질문은 민족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제대로 답변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 분의 논리를 범상히 보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 분은 여러분처럼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나처럼 사회주의자도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 신자는 더욱 아닙니다. 나는 저 분의 생각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에야 그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 분은 개인주의자 아니면 인간주의자쯤 될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서양에서는 실존주의라는 것이 생성되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경향을 임 군은 지니고 있습니다. 이쯤 하겠습니다. 임군의 사상은 본인에게 직접 듣도록 하십시오."

장준하가 임주호에게 관심과 경탄을 갖게 된 것은 이강국의 소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이강국의 말대로 임주호의 사상에는 비범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장준하가 감탄한 것은 그런 가치관이나 세계관 때문이 아니었다. 임주호에게는 이상한 자연적 상상력과 수학적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없는 자질이었다. 임주호는 인문학에는 무지했지만 계산에는 기이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동경에서 사흘 걸리는 삿보로까지 하루 반 만에 가는 방법이라든지, 신주쿠 거리의 간판에 있는 한문과 일어 글씨의 비율 등을 순식간에 밝혀냈다. 그는 일본 과자 하나에 들어 있는 설탕의 입자수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혹은 시속 5킬로미터의 유속을 거스르며 가는 배에서 모자를 떨어뜨린 후 50분이 지나 알았을  때, 다시 돌아가 모자를 주울 수 있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등을 금세 계산해냈다.

하지만 장준하를 비롯한 조선인 학생 어느 누구도 임주호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네는 수학을 전공해야 할 것 같아."

이 정도가 조선인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나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네."

(계속)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숭덕학사#이강국#장준하#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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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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