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의 한장면 포스터의 한장면

▲ 포스터의 한장면 포스터의 한장면 ⓒ 포스터의 한장면

 

지금은 고인이 된 이은주와 현재 한류 스타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2001년)는 한국 멜로 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당시 한국 멜로 영화의 경우 다른 소재를 개발하지 못한 채 항상 비슷한 내용으로 재탕 삼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시기에 색다른 소재를 차용하여 파격적인 멜로 영화를 만들어낸 김대승 감독의 작품은 당시 많은 영화팬들에게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가 서인우(이병헌)와 인태희(이은주)의 아름다운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반부는 자신의 남제자가 환생한 인태희임을 알아보고 사랑하는 동성애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승 감독은 초반부 서인우와 인태희의 사랑보다 후반부 자신의 남제자를 사랑하는 서인우의 임현빈(여현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더욱더 애절하게 표현해 놓았다. 영혼으로 맺어진 소올 메이트(soul mate)는 죽음보다 더 큰 끈으로 매어져 있다는 것을 극적인 설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번지 점프를 하다>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이 보여주는 순수하고 애절한 감정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서인우와 인태희의 사랑, 그리고 서인우와 임현빈의 사랑, 이 두가지의 연결 고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에 묶여 있는 서인우의 감정적인 교감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이란 절대 불변의 진리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교감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고 이야기된다. 어느 철학자도 사랑이란 것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명확하게 내려 놓은 것은 없다. 사랑이란 주제는 그만큼 난해하고 정의하기 힘든 불변의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랑이란 정의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거리 월리암의 <벨벳 토끼>의 구절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인형 토끼가 가죽 말에게 묻는다. “진짜가 되는 것은 아픈가요? 진짜가 되는 것과 아픔은 같이 일어나나요?” 가죽말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아.

진짜가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란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지.

혹은 끝이 날카롭거나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대개 진짜가 되는 순간, 머리털은 모두 빠지고

눈은 아래로 축 처지게 되며,

관절마다 느슨해지면서 초라해진단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너는 진짜니까!

진짜는 추해질 수 없단다.

일단 진짜가 되고 나면 다시 가짜로 돌아갈 수 없단다.

항상 진짜로 남아 있게 되지.

 

서인우의 인태희에 대한 사랑은 진짜이다. 그의 사랑은 진짜이기에 다시 가짜로 돌아갈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인태희와의 추억, 사랑, 그리고 열정은 모두 가짜가 아닌 진짜로 자신의 영혼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 그에게 환생한 인태희, 임현빈(여현수)에 대한 사랑 역시 절실하고 애절할 수밖에 없다.

 

서인우에게 있어 진짜가 되어버린 인태희에 대한 사랑은 임현빈이 되었다고 해도 이제 다시 가짜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서인우에게 있어 인태희에 대한 사랑은 그만큼 애절하고 절실하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관통된 시선은 결국 서인우의 애절하면서도 절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병헌의 영화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병헌의 애수에 젖은 눈빛과 옛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 속의 서인우는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기 때문이라죠.”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기억되어 심장 속에 박힌다. 그리고 그 파편들은 혈관을 따라 흐르면서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계속 기억된다. 서인우의 혈관을 따라 흐르던 그 파편들은 임현빈을 만나면서 더 큰 상처와 아픔으로 그의 몸속을 돌아다닌다.

 

서인우는 임현빈에게 이야기한다. “태희야... 왜... 어째서 넌... 날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니? 난 이렇게 널 느끼는데... 널 이렇게 알아보는데...”

 

운명적인 사랑은 재회를 하지만 서인우가 임현빈에게 느끼는 감정은 현실에서 용납할 수 없는 금기이다. 자신의 남제자를 사랑하는 서인우에게 세상의 시선은 차갑고 날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날카로움은 서인우에게 날이선 칼날처럼 파고든다.

 

<번지 점프를 하다>의 결말은 세상에서 서로의 사랑을 인정 받지 못한 서인우와 임현빈이 동반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운명적인 사랑 앞에 고뇌하고 갈등하던 그들에게 마지막 도피처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 외에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랑이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주제이다. 서인우와 인태희, 서인우와 임현빈 같은 애절한 사랑을 하지 못한 필자에게는 사랑은 더 어렵고 난해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모르게 가슴이 시리고 아픈 것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서인우와 인태희, 서인우와 임현빈 같은 사랑을 할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싶은 영화팬들이라면 <번지 점프를 하다>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운명으로 묶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절실한지, 그리고 진짜가 되고 나면 아무리 허름하고 볼품없어도 다시는 가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30 11:5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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