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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표지
 <귀족> 표지
ⓒ 중앙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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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대표적 인물입니다. <즐거운 사라>필화사건 이후 그의 솔직하면서도 과감한 작품세계나 행보는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였습니다.

덕분일까요. 문학평론가 장석주의 말처럼 그는 권력의 가장자리를 한없이 맴돌기만 하는 고통받는 타자였습니다.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에서도 그는 재임용 탈락 등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데요.

동료 교수들이 배신했다는 절망감과 그 외 제자의 시 표절논란 등 문제가 겹치면서 그는 우울증을 앓았고, 한때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경멸의 대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광마(狂馬) 마광수.

평가가 항상 극과 극으로 나뉘는 그가 최근 중편소설 <귀족>과 단편소설집 <발랄한 라라>(19세 미만 구독불가)를 내놓았습니다. 평생 사랑을 하지 않기로 맹세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귀족>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집까지 두 권 모두가 손톱 페티시나 마조히즘으로 가득한 성적 판타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는 그가 오랫동안 꾸준히 추구해왔던 작품세계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의 그런 작품세계는 필요 이상으로 폄하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술에서는 한 작가가 평생 한 소재에 집착해도 욕을 얻어먹기는커녕 오히려 '줄기찬 추구'라고 칭찬을 듣는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같은 소재를 변주하면 '재탕한다'고 욕을 한다. -<작가의 말>(귀족) 중에서

물론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발언에는 자신의 한결같은 작품세계를 무시한 문단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그런데 참 마광수라는 작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문단이나 학교(교수)에서 소위 외톨이, 왕따 신세를 당하면서도 줄기차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포기하거나 우회할 만도 한데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뚝심 하나는 정말 본받을 만합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역시 자신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한없이 자유롭거나…

재임용 거부 이후, 수입이 없어 더 열심히 글을 썼다는 마광수 작가의 이번 작품들 역시 대부분 성(性)을 다룹니다. 손톱을 비롯한 여러 부위 페티시즘, 보수적인 성관념에 대한 발칙하면서도 과감한 도발, 자유로운 성적 판타지, 성은 깨끗해야 한다는 말에 대한 조롱 그리고 노예나 종속관계, 요즘 케이블 TV프로그램에서 유행하고 있는 펫(애완남) 등에서 비롯된 사도 마조히즘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국내 대표 성문학 작가답게 그는 특유의 진보적인 관념을 소설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여러 작품들에서 '여자전성시대'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우회적으로 여자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여성을 보호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잠재되어 있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의식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내숭 떠는 법이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표현합니다.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작품 속 화자들은 대개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납니다. 사실 살면서 페티시를 즐기거나 몸의 온갖 부위에 피어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진 않겠지요. 자유로운 성관념까지 지닌 이성이라면 더욱 더 그러할 테고요.

또한 그들은 그렇게 만나 좀처럼 하기 힘든 행위들을 기꺼이 해냅니다. 말 그대로 관능의 판타지, 유희로서의 성을 즐깁니다. 때때로 그들은 상대방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고, 이성이 힘껏 때려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손톱>에서는 귀족 여인의 펫(애완남)이 되기로 기꺼이 맹세하지요. 사실 이는 현재 젊은 세대의 생각이나 행동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요. 그것은 마광수 작가가 나이와는 무관하게 얼마나 젊은 생각을 지닌 사람인지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연세대 임용 탈락 당시 학생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하지요.

그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믿는 많은 것을 무너뜨립니다. '하느님이 야한 여자를 워낙 좋아한다'는 도발적인 표현, 외모보단 마음이라는 관념에 대한 조롱과 야유,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 성형 등 인공미(美)에 대한 긍정 등 많은 관습과 고정관념을 박살내 버립니다. 또한 섹스는 생식이 아니라 유희로 즐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낡아빠진 도덕률은 버린다고도 말하지요.

그의 소설에는 손톱 페티시가 유독 많은데요. 사실은 손톱이 길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예전에는 귀족들이 주로 길렀다고 하지요. 문학평론가 장석주는 손톱 페티시가 반노동이나 퇴폐적 게으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현실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그 특유의 성적 판타지겠지요.

이는 모두 구질구질한 현실에 대한 보상이자 대리만족에 다름 아닙니다. 예컨대 소설에는 유독 자신의 이름과 실제 사건(필화사건)이나 재직 중인 연세대가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요. 이는 모두 마광수 작가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성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단편<자궁 속으로 사라지다…>에서 보여주는 연세대 노천광장 집단섹스 장면이나 섹시하고 예쁜 여자들이 남자에게 접근해 이유 없이 원하는 성행위를 해주는 장면 등의 극단적인 성적 판타지는 모두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모든 성애가 변태적 사도마조히즘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즘 애들이 하는 헌팅도 결국 사냥이라는 뜻 아니냐는 거지요. 또한 현실 세계에서는 학벌, 외모, 집안 등 조건 좋은 사람이 시집, 장가 잘 간다면서 자연은 약육강식의 사도마조히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쁜 여자가 좋다는 자신의 견해를 받쳐주는 논리가 됩니다. 그의 소설에는 못 생긴 여자에 대한 경멸과 예쁜 여자에 대한 찬사가 항상 반복되어 노출되는데요. 그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강조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형 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고요.

한없이 지루하거나…

작가는 이번 두 권의 책에서 여지없이 투사로서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주 세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 것처럼 아주 비장함까지 엿보이는데요.

하지만 좋은 약도 계속 먹으면 쓸 수 있듯이, 소설집<발랄한 라라>와 <귀족>은 비슷한 소재,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다보니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수성과 억압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반발도 계속 반복에 그친다는 느낌이지요.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단편들도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계속 되는 강한 주장들의 성적 판타지가 그래서 오히려 아이러니하게 교훈적으로 들리기도 하지요.

작가 자신은 소설을 즐기라고 하지만, 정작 이런 센 이야기들은 유희보다는 메시지가 먼저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또한 페미니스트와 보수적 사회, 못생긴 사람들에 대한 비하, 도덕주의자에 대한 비난 등도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낄 여지가 다분합니다.

작품 재미 자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귀족>과 <발랄한 라라>는 작품 완성도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불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가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현재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언급되거나, 자주 표현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쾌락주의, 페티시, 성적 판타지, 마조히즘 등이 마광수 작가의 전유물만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그가 그동안 성문학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한다면 현재 그가 받는 평가는 한없이 부족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소설 속 리얼한 성묘사는 세상의 위선적인 도덕과 금기, 권력, 억압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보다는 그 너머를 꿈꾸는 색다른 이상주의자일 뿐이지요.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접근한다면, 희생양이 되어야했던 숭고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태그:#마광수, #발랄한라라,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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