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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를 깨뜨리고 어떤 일을 새롭게 도모할 땐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오는 11일 옥천에서 처음 열리는 유정 조동호 선생 54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의 ‘독립관’에서 거행했던 선생의 추도식을 고향 옥천에서 열기까지 여러 사람이 모여 많은 것을 생각하고 논의했습니다.

 

고향 옥천에서 추도식을 갖는 것은 유정 선생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작은 예의도 될 것입니다. 옥천의 각계 각층 뜻있는 사람들이 준비에 적극 협조해서 원만하게 준비가 진행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이 그 지역 출신 독립 운동가들을 기념하며 추도식 등을 정중하면서도 성대하게 치르고 있음을 봅니다. 가신 분들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의 정을 나누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공간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을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생가를 복원하며 그분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준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냉전 시대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좌우(左右)로 사람을 평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서는 좌가 또 북에서는 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군사정권 시대를 마감하고 민간 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20여 성상이 흐른 지금, 이데올로기의 빛이 많이 바래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삶의 가치들이 새롭게 발견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복지, 인권 신장, 공동 선 추구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그러한 가치에 속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데올로기도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정 조동호 선생은 일제시대 조국 독립을 위해 언론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한 분입니다. 몽양 여운형 선생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에서의 좌편향적 노선으로 해방 후 남쪽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이제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깨었습니다. 이데올로기에는 좌우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중간 개념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좌우의 이원적 구조에서 다양한 구조로 이념이 나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가 다 옳은 것이 아니며 좌도 다 그른 것이 아닌, 이념은 모두가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점을 취합해서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해 나가자는 것이 현대 사회의 지향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분이 쓴 책 중에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칼럼집이 있습니다. 좌와 우가 공존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건강한 사회는 일방통행의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 이것이 진정 건강한 사회입니다.

 

유정 선생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것이 2005년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유정 선생에게 우리가 작은 예의나마 갖춘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을 이야기할 때 좌편향의 운동 노선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도 있었다지만, 정부에서 공식 인정하고 서훈 받은 분을 지역에서 더 이상 문제 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옥천은 기개(氣槪)와 지조(志操)를 소중히 여기는 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멀리는 조선시대 중봉 조헌 선생을 비롯해서 근현대의 정지용, 송건호 선생이 이 점에서 우리의 좋은 본이 되는 분들입니다. 유정 조동호 선생도 그런 면에서 앞자리에 위치해 있는 분입니다.

 

일제시대 많은 사람들이 변절의 길을 걸으며 자신과 가족의 호의호식을 도모할 때, 오로지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꼿꼿하게 일생을 걸어온 분입니다. 그분에게 사회주의는 효율적인 독립운동의 측면에서 중요했지, 다른 요소는 그 다음의 문제였음을 그의 글에서 그리고 삶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옥천에서 열리는 유정 선생의 추도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가신 분의 뜻을 기리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도 회장님을 중심으로 선한 뜻을 모아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옥천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이 추도식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그리고 옥천군 등에서 적극 후원한다고 하니 성황리에 거행되는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고장 출신의 독립 운동가는 우리 손으로 제 자리를 찾아 드려야 도리입니다. 민족의 큰 인물을 우리 지역에서 배출해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영국의 역사가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가 없으며, 또 현재를 토대로 미래가 건설된다는 뜻입니다. 요즘 광복절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건국절’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의 제반 장치는 역사에 포괄되는 것입니다. 정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 선현들의 처절한 투쟁이 없었다면 조국 광복은 요원했을 것이며 정부 수립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유정 선생 추도식을 즈음해서 머리 숙여 상고(詳考)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주간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약간 수정보완하여 오마이뉴스에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정 조동호, #독립 운동가, #추도식, #옥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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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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