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호초등학교 이성옥 1,3학년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
 동호초등학교 이성옥 1,3학년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
ⓒ 최상진

관련사진보기


전라북도 고창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게 달리는 길, 파란 하늘색 도화지 위에서 춤추는 듯한 산과 논을 지나 들썩이는 파도소리가 귓가를 스쳐오자 버스는 드디어 동호초등학교 앞에서 멈췄습니다.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학교 여기저기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몰려나와 오랜만에 만나는 타지 사람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봅니다. 몇몇 아이들은 벌써 제 카메라까지 들고 도망가서 켜지지도 않은 카메라를 붙들고 사진을 자기가 찍어주겠다며 아우성입니다.

68년 동안 마을의 중심이던 이 학교에는 31명의 아이들과 7명의 선생님, 4명의 교직원 등 총 42명의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나홀로 입학생과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초임 선생님을 만나러 달려왔습니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제 자기소개가 머쓱해질 만큼 간단하고 짤막한 아이들의 영어 인사. 당황할 새도 없이 아이들은 강당에서 피구를 하자며 졸라댑니다. '짐 좀 풀고 하면 안되겠냐?'고 물어보려고 1학년 인선이에게 '선생님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고사리만한 손가락으로 강당을 가리킵니다.

그쪽에는 아이들에 휩싸인 이성옥(23) 선생님이 활짝 핀 얼굴로 벌써 피구 코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활발해서 학생들이 힘들겠네'라고 혼자 중얼거렸더니 옆에 있던 인선이가 한마디 거듭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숙제는 정말 싫어요. 쪼끔만 줄여주세요~잉
 숙제는 정말 싫어요. 쪼끔만 줄여주세요~잉
ⓒ 최상진

관련사진보기


인선이는 동호초등학교의 유일한 신입생입니다. 때문에 다른 나홀로 입학생들이랑 비슷하게 다른 학년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그래서 이성옥 선생님 반은 3학년 5명, 1학년 1명 총 6명입니다. 혼자 1학년이라고 주눅들 만도 하지만 인선이는 반에서 누구보다 활발합니다. 공부도 잘해서 어제와 그제 받아쓰기도 100점 맞았다고 자랑하며 공책을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3학년 아이들은 운동을 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피구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입니다. 비록 남자편, 여자편 나눠서 시합하지만 절대 봐주지는 않습니다. '왜 이렇게 공을 세게 던지냐?'고 물어보니 '탱탱볼이라 맞아도 하나도 안 아파요'라며 더 세게 공을 던집니다. 결국 3학년 소라가 두 번, 민아가 한번 울음보를 터트리고 나서야 길고 길었던 피구는 끝났습니다.

이어서 피구의 흥분은 고스란히 물총과 물풍선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또 한바탕 물독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나서야 길고 길었던 오늘의 놀이를 마쳤습니다. "다들 재밌냐? 여기 한번 봐봐"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며 사진기를 들이밀자 여섯 명의 아이들과 아이 같은 선생님은 그제서야 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물폭탄 세례를 안깁니다.

양말까지 다 젖고, 바지에 물풍선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은 다음에야 고맙게도 눈치를 보던 햇님이 바다 뒤로 숨으며 아이들에게 집에 가라고 재촉하기 시작합니다. 초임 선생님과 나홀로 신입생, 왈가닥 3학년 아이들의 행복한 오늘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올해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에 처음 부임한 이성옥 선생님은 '눈에 콩깍지가 씌인 것처럼 아이들이 사랑스럽다'며 아이들이 돌아간 이후에도 한명 한명 의자를 가리키며 또 소개하고 또 자랑합니다. 어쩌면 '우리 애들'이란 말이 이미 버릇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을 맞았습니다.

식사 후 학교 옆길을 산책하며 이 선생님은 '아이들만 놓고 생각해보면 미안함으로 가득하다'며 초임 교사로의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특히 학생이 갑자기 다치는 긴급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다든지, 준비물을 사오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수업 준비에 소극적일 수도 있다든지, 아이들 각자 집이 멀어 방과 후에 집에 돌아가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 같이 있어주지 못한다며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미안해서라도 한번 더 웃어주고,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게 된다'고 말합니다.

한편 '그래도 행복하죠?'라는 물음에 이 선생님은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아이들 자랑 한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아이들에게 한자 공부를 시키는데 가르쳐주면 순식간에 흡수해버려 그때부터 콩깍지가 씌였다든지, 선생님과 손 한번 잡고 싶어서 쟁탈전을 부린다든지 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선생님 드린다고 상장까지 만들어 줬다며 이 아이들을 보며 교사가 천직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너무너무 맛있는 간식시간. 오늘 메뉴는 떡볶이와 오뎅탕.
 너무너무 맛있는 간식시간. 오늘 메뉴는 떡볶이와 오뎅탕.
ⓒ 최상진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초임 선생님인데 두 학년을 한 반에서 가르치다보니 어려운 점도 있겠다'고 물으니 아이들을 다른 학년으로 보기보다는 한 반으로 보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반장도 열외 없이 돌아가면서 하고, 체육활동시 달리기 시간에는 1학년 인선이는 언니·오빠들보다 앞에서 달리고, 피구할 때는 두 번 맞아야 아웃되는 특혜(?)를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자 과목을 담당해 인선이의 공부를 도와주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학교 전 직원과 학생들이 가장 어린 인선이를 마스코트처럼 생각하고 예뻐한다며 제게 어떻게 그 아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예, 이제야 고백하지만 인선이는 너무 귀여워서 정말 집에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초임 교사로서의 고민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초임이니까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내 교육방식이 이 아이들에게 적절한 것인지 하는 고민은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림지도를 만들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올챙이를 잡는다고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고, 잡아온 참새 새장을 만들겠다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써놓은 고민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지우개에 깨끗이 지워진다며 아이들에게 긍정 바이러스를 옮았다고 이 선생님은 주장합니다.

그렇게 긴 밤이 흐르고 다음날 아침, 아침 먹으라는 전화에 달려간 학교 뒤편 관사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직접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마치 대학교 기숙사에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잠시 이곳에 선생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기숙사 축제에 초대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습니다.

관사에서 생활하는 선생님은 모두 4명. 관사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뒤로 관사의 장·단점에 대한 여선생님들의 수다는 끊이질 않습니다. 온갖 벌레의 출현과 개미의 습격, 처음엔 살충제를 이용해 벌레들을 잡다가 요즘에는 그냥 휴지로 꾹 눌러버릴 정도로 익숙해져버렸다고 합니다.

한편 잠자리에 누우면 멀리서 들려오는 철썩 철썩 파도 소리와 밤만 되면 셀 수 없이 반짝대는 보석 같은 별들은 관사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윽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 시간, 아이들과 선생님은 받아쓰기에 열중입니다. 고민고민 하며 받아쓰는 성진이와 동협이, 거침없이 슥슥 써내려가는 용환이, 계속 쓰다 막히는 민아와 소라, 그리고 1학년답지 않게 자신 있는 표정으로 선생님과 받아쓰기 공책을 주시하는 인선이. 결국 인선이와 용환이가 100점을 맞고 활짝 웃고, 40점을 맞은 모 어린이는 금세 울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엄마한테 혼날 생각이라도 했던 걸까요.

1학년 김인선 어린이가 어제도 오늘도 100점 맞았다면서 공책을 펴보이고 있다.
▲ 저 받아쓰기 100점 맞았어요 1학년 김인선 어린이가 어제도 오늘도 100점 맞았다면서 공책을 펴보이고 있다.
ⓒ 최상진

관련사진보기


학교를 떠나오며 저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고사리만한 손으로 쓴 '꼭 또 오세요, 사랑해요, 진짜 피구 잘하시네요,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유치원 선생님 될게요' 등의 이야기들이 꼬불꼬불 담겨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왜 그렇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던지, 한번이라도 더 손 잡아주고 안아줄걸 하는 후회 때문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슬쩍 눈물을 훔쳐냅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과연 그 아이들과 선생님은 행복할까? 라는 생각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들의 해맑은 웃음이 그립습니다. 까르르 웃음과 '우리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라는 한 마디, 그리고 선생님의 호방한 웃음소리 안에서는 초임교사도, 나홀로 신입생도, 까불이 3학년도 모두 '행복'이라는 두 글자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한 가족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몰려든 아이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 선생님 안 가시면 안되요? 헤어지기 직전 몰려든 아이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 최상진

관련사진보기



태그:#동호초등학교, #이성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