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중국에서 열리는 탓인지 새벽을 깨우는 함성소리는 없다. 현지 시각이야 어쨌든 언론에서 칭하는 대한의 아들과 딸들은 어김없이 금메달의 낭보와 드라마를 전해온다. 수도 없이 재방송되는 경기장의 화면이 안방 스크린을 점령한 지 5일째 접어들고 있다.

 

올림픽 뉴스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감격의 금메달 획득 혹은 안타까운 은메달에 그친 것으로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올림픽, 더 나아가서 스포츠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로 국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금빛영웅과 아쉬운 패배자로 치부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강요하는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의 올림픽 강령 속에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강령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언론의 표현대로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왕기춘 선수의 결승전이 끝난 이후에 언론들은 탄식과 함께 금메달과 은메달의 포상금 액수 차를 계산하였다.

 

그의 부상투혼이나 경기에 임했던 순간의 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펜싱의 경기 규칙도, 심지어는 에페 플러레 사브르로 나뉘어지는 펜싱 종목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현희 선수의 은메달에 애통해했다.  박태환 선수에게는 3관왕을 강요했다. 20년 동안 놓치지 않은 양궁 금메달은 당연시하게 생각하면서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출전한 사이클 경기는 주목하지 못했다.

 

올림픽이 다른 대회와 다른 점은 그들의 실력을 겨루기도 하지만 그들 속에서의 스포츠맨십과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를 증진한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 불굴의 의지, 불가능을 뛰어 넘는 그것이다.

 

경기의 결과와 목에 걸린 메달의 색깔은 차후의 얘기다. 우리는 더 이상 부담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와 은메달을 따서 죄송하다는 인터뷰에 공감해선 안 된다. 메달이 아닌 그들의 땀과 노력과 눈물에 동감하고 응원해야 한다.

 

패했지만 승자의 손을 잡고 들어주는 모습, 기록에는 뒤졌지만 밝게 웃고 악수하는 모습, 승리의 감격에 젖으면서도 패자를 향해 위로의 포옹을 건네는 모습. 그것이 잠을 설치며 딴 메달보다 더욱 가치있게 빛을 발하는 것이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의 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포츠에서 경쟁하여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올림픽 표어에서도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를 요구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더 이상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사연을 전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들에게 아직 덜 자란 어른으로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온 국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물살을 헤친 선수의 땀, 부상의 투혼으로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선수의 땀, 커다란 관심은 가져주지 않지만 20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진출하여 88위에 그친 어느 선수의 땀은 모두 다 가치있고 의미있고 눈물겨운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또한 그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비단 올림픽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세계에는 동메달 하나에 전국이 축제의 도가니에 빠지는 나라도 부지기수라 한다. 금메달을 따고도 시름에 잠기는 대한민국이 되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태극 전사들의 파이팅을 기대해 본다.

2008.08.14 08:33 ⓒ 2008 OhmyNews
올림픽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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