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양궁 단체전이 열린 지난 8월 11일, 양궁경기장을 '접수'한 한국응원단

남자 양궁 단체전이 열린 지난 8월 11일, 양궁경기장을 '접수'한 한국응원단 ⓒ 홍현진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지난 11일, 각 언론에서는 중국 관중의 '비매너'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 선수들이 활시위를 당길 때 중국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고 고함을 지르는 등 한국 대표팀을 방해했다는 것. 이에 대해 임동현 선수 역시 "야유 섞인 중국 관중의 응원이 거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하여, <노컷뉴스>는 男양궁 "중국 관중 소음, 대회 옥의 티"라는 기사에서, '고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 양궁인만큼 선수가 활을 잡고 쏠 때까지는 모든 관중들이 숨을 죽이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다. 그러나 전날 여자양궁 결승전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부 관중들의 추태는 계속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중국 관중에 대한 비난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언론의 보도와 네티즌들의 의견만 본다면, 마치 양궁 경기장을 중국인들이 장악한 채 한국 선수들을 경기 내내 방해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양궁경기장은 '한국 응원단'이 접수했다

나는 남자 양궁 단체전 4강전이 열린 11일, 취재를 위해 올림픽 그린 양궁장 현장에 있었다. 전날(10일) 열렸던 여자양궁 단체전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던 관중석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한국 응원단이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인 500여명은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응원수건과 태극기를 들고 한 구역에 모여 있었다. 현지 유학생과 교민으로 조직된 이들 한국 응원단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열띤 응원을 펼쳤다.

현재 한국에서 모 프로야구팀과 농구팀의 응원단장을 맡고 있다는 홍창화씨는 능숙한 솜씨로 응원을 이끌어, 한국인들의 응원이 있을 때마다 경기장 내의 모든 시선이 한국 응원단으로 쏠렸다.

반면, 경기장 곳곳에 흩어진 중국인 응원단은 오성홍기를 흔들며 '찌아요!'만 외쳤지만, 오성홍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국인 응원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댔지만 도저히 그림이 안 나왔다고 한다면 이해가 될까.

이 날 내가 느낀 현장의 분위기는 수적으로는 중국인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많았지만 '응원의 힘'은 한국을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한국 응원단 사이에 앉아있던 중국인들이 측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이 날 양궁경기장은 한국이 장악했다.

상대팀 부진했을 때 '환호와 박수', 이건 아니잖아

 한국 응원단 사이에 앉은 중국인들

한국 응원단 사이에 앉은 중국인들 ⓒ 홍현진


이런 상황에서 한국 응원단은 경기 내내 매너 있는 응원을 펼쳤을까. 현장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대답은 '아니오'다.

올림픽 그린 양궁장은 경기장과 관중석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중석에서는 선수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선수들 역시 관중석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거슬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따라서 관중석 앞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선수들이 활을 쏠 때마다 '쉬, 쉬'하며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했다.

응원을 하러 왔다면 최대한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한국팀에게도, 상대팀에게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매너'다.

하지만 한국 관중석 일부에서는 경기 도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도 했고, 잡담도 이어지는 등 조금은 산만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웠던 것은 상대팀이 낮은 점수를 쐈을 때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일부 한국인 관중이었다.

당시 나는 중국 응원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중국인들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아쉬워하는 중국인들 너머로 신이 난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아무리 활을 쏘고 난 후라 하더라도 이는 활을 쏜 선수의 사기를 떨어뜨려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선수가 7점을 쐈는데 중국인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선수들이 활을 쏠 때마다 박수 보내던 중국인 소년

 한국팀이든, 중국팀이든 활을 쏠 때마다 박수를 보낸 한 중국인 소년

한국팀이든, 중국팀이든 활을 쏠 때마다 박수를 보낸 한 중국인 소년 ⓒ 홍현진

물론 한국 선수가 활을 쏠 때 야유를 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앉아있던 중국인 관중석에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한국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비매너' 중국인들만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중 한 소년은 선수들이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중국팀이든 한국팀이든, 잘했건 못했건 아낌없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는 언론보도만 보고 중국의 텃세를 떠올렸던 내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경기를 펼치는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따라서 자국팀 뿐만 아니라 상대팀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낸 이 중국인 소년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지난 11일 경기에서는 중국 응원단뿐만 아니라 한국 응원단 내에서도 '비매너'인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중국 응원단만을 주목하면서 '반중 감정'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이는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중국 응원단이든 한국 응원단이든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응원을 펼친다면 똑같이 비판해야 한다.

 오성홍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중국인들

오성홍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중국인들 ⓒ 홍현진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남자 양궁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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