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국 응원단이 수건을 펼쳐 보이며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11일, 한국 응원단이 수건을 펼쳐 보이며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 홍현진


 응원하고 있는 한국 관중들

응원하고 있는 한국 관중들 ⓒ 홍현진


[장면1] "한국 분들 여기로 오세요"

경기 시작 1시간 전인 10일 오후 4시,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의 4강전이 있었던 중국 베이징 올림픽 그린 양궁장 앞. 경기장 입구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응원단을 이끌어 온 스태프들이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향해 "한국 분들 저기 위쪽으로 올라가 주시겠어요?"라고 요청했다.

 중국팀을 응원하고 있는 한 중국인 꼬마

중국팀을 응원하고 있는 한 중국인 꼬마 ⓒ 홍현진

홍창화(29) 응원단장은 이날 응원단 규모에 대해 "현지 유학생과 교민으로 구성된 약 500여 명의 한국인 응원단이 온다"고 말했다.

홍씨는 "어제(9일) 여자 양궁이 있었는데,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았다"면서 "하지만 중국인들은 한국 응원단처럼 조직적으로 응원하는 것도 아니고 응원 도구도 없어서 비교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여자 개인전이 있는 내일은 1000여 명이 응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열린 여자양궁 경기도 봤다는 일본인 토모카주는 "한국인들의 응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며 "오늘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기시작 40분 전, 한국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시작하자, 이에 질세라 중국인들도 "찌아요!"를 외쳤다.

4명의 가족과 함께 온 중국인 순아무개는 "중국이 이길 것"이라며 "한국은 여자팀이 잘하지만 중국은 남자팀이 잘한다"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의 얼굴에는 '오성홍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금메달을 딴 여자양궁 대표팀 3인방도 경기장에 와있었다. 한국인 응원단 맞은편에 앉은 여자 선수들은 태극기로 한국인 응원단을 가리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장면 2] "경모야, 편안하게 해 편안하게"... 코치가 된 응원단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이 입장하고 있다.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이 입장하고 있다. ⓒ 홍현진


오후 5시 25분, 이탈리아와 우크라이나의 준결승전이 끝나자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국 선수 세 명이 모두 9점을 쏜 후 중국 선수 두 명이 연이어 10점을 쏘자, 한국 관중석에서는 "괜찮아, 그래도 우리가 이겨!"라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쏜 중국 선수가 7점을 쏘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활을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선수도, 관중도 모두 함께 집중했다.

한국팀 순서가 끝난 후에는 모든 한국인들이 함께 일어나 'KOREA 대한민국'으로 쓰인 수건을 펼쳐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한국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칠 때마다 다른 관중들의 시선이 쏠렸다.

한국인 관중 중에는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 '코치하듯'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 때도 양궁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현지까지 찾아갈 정도로 평소에도 양궁을 좋아한다는 장아무개(56·여)씨였다.

장씨는 선수들이 박빙의 승부를 펼칠 때마다 큰 목소리로 "경모야, 편안하게 해, 편안하게"라고 했으며, 낮은 점수를 얻었을 때는 "괜찮아, 괜찮아"라고 소리쳤다. 또한 장씨는 "양궁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선수들이 다 자식 같다"고 말했다.

[장면 3] 중국인 관중 "한국에 이길 거라 생각 안 했다"

 한국 응원단 사이에 앉아있는 중국 관중들

한국 응원단 사이에 앉아있는 중국 관중들 ⓒ 홍현진


한국인 관중석에는 중국인들도 몇몇 앉아있었다. 한국인 응원단의 열띤 응원 속에서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찌아요!"를 외쳤다. 한국이 중국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한 후 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흐어난에서 왔다는 위아무개(48)에게 "불편하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어디 앉아 있든지 마음만 중국팀을 응원할 수 있으면 좋다"고 했다.

위씨는 "한국팀의 실력이 강해서 이겼다고 생각한다"며 "중국팀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팀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그래도 중국이 이전에 비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오늘 동메달은 딸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걸었다.

중국인 부인과 함께 왔다는 미국인 리(Lee)는 한국의 열띤 응원을 보며 "부인 그레이스(Grace)는 '찌아요!'를 외치며 중국팀을 응원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다른 팀을 응원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한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메달을 따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남녀팀 모두가 금메달을 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응원단은 곧이어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3, 4위 결정전이 열리자 중국인들과 함께 '찌아요'를 외쳤다. 중국인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중국이 동메달을 따자 중국인들도 한국인들도 다 함께 기뻐했다.

[장면 4] "동현 아버지가 계속 우시니까 나까지 눈물이 나네"

 이탈리아팀을 응원하고 있는 관중들

이탈리아팀을 응원하고 있는 관중들 ⓒ 홍현진


오후 6시 25분, 한국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이 열렸다. 점수가 나올 때마다 한국과 이탈리아 응원단에서는 환호성과 탄식이 번갈아 가며 쏟아졌다. 접전 끝에 한국이 승리하자 이탈리아 응원단 쪽에서는 머리를 싸매며 아쉬워하는 관중도 보였지만, 이내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한국 관중석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인들은 서로 얼싸안고 '야야∼야야야야∼'하며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눈물 흘리는 임동현 선수 아버지 임한석씨가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눈물 흘리는 임동현 선수 아버지 임한석씨가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 홍현진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기장에 임동현 선수가 나타났다. 그는 긴 다리로 계단을 성큼 성큼 걸어 올라가 관중석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관중들은 "임동현! 임동현!"을 연호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임동현 선수가 시상식을 위해 내려간 후에도 아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옆에 있던 관중들은 "아이고, 그만 좀 울어요"라며 "아버지가 계속 우시니까 나까지 다 눈물이 나려 그러네, 누구는 아들 잘 낳아서 좋겠네"라고 말했다.

임동현 선수의 아버지 임한석씨는 "오늘 너무 많은 관중들이 와주셨다"며 "임동현이라는 학생은 내 아들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들, 여러분의 아들이니까 끝까지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응원용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곧이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높이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남자 양궁 선수들도, 여자 양궁 선수들도 응원단도 다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한국팀이 금메달을 따자 기뻐하는 관중들

한국팀이 금메달을 따자 기뻐하는 관중들 ⓒ 홍현진


大, 韓, 民, 國 티셔츠 맞춰입고 온 네 청년

10일 양궁경기장 입구에 파란색 바탕에 'K'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그의 티셔츠에는 한자로 '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 주위로 똑같은 옷차림을 한 세 명의 남성이 더 나타났다.

네 명의 티셔츠에는 각각 大, 韓, 民, 國이 한 글자씩 적혀 있었다. 티셔츠가 특이하기에 '특별 제작한 거냐'라고 물었더니, 이상민씨는 "3종류의 유니폼을 제작해서 왔다"고 말했다.

이상민씨를 포함해 염대욱, 오광희, 최준우씨 네 명은 거제도와 부산에서 왔다. 이들은 24살 동갑내기로 올림픽을 보기 위해 지난 8일 베이징에 왔다.

이상민씨는 "네 명 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올해 초부터 계획을 세워 돈을 모아 함께 왔다"며 "이날 있을 양궁을 시작으로 한국 대표팀의 메달가능성이 높은 다른 종목들의 티켓도 인터넷으로 구했다"고 말했다. 특히 '야구'를 좋아해서 한국 대표팀의 야구티켓은 모두 구했단다. 이들은 올림픽이 끝나는 24일까지 머물면서 한국팀을 응원할 계획이다.

 이상민, 염대욱, 오광희, 최준우씨 네 명은 거제도와 부산에서 왔다. 이들은 24살 동갑내기로 올림픽을 보기 위해 지난 8일 베이징에 왔다. 네 명의 티셔츠에는 각각 大, 韓, 民, 國이 한 글자씩 적혀 있었다.

이상민, 염대욱, 오광희, 최준우씨 네 명은 거제도와 부산에서 왔다. 이들은 24살 동갑내기로 올림픽을 보기 위해 지난 8일 베이징에 왔다. 네 명의 티셔츠에는 각각 大, 韓, 民, 國이 한 글자씩 적혀 있었다. ⓒ 문경미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남자 양궁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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