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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저술가 조 로즈는 7년 동안 사랑을 가꾼 크라리사와 함께 소풍을 떠난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기분에 취해 와인 병을 잡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풍선 기구가 강풍 때문에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기구에는 아이가 있었다. 남자들은 즉시 기구를 향해 달린다. 그들은 힘겹게 기구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또 다시 강풍이 분다. 엄청난 바람이었다. 다시 기구가 날아가려 하고 남자들은 더 힘껏 그것을 붙잡는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놓는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 그런 건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이윽고 단 한 명의 남자만 빼고 모두가 그것을 놓게 된다.

 

기구는 바람의 힘으로 더 높이 오른다.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다. 남자들은 불안하게 하늘을 본다. 혼자 남게 된 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떨어져 즉사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체를 확인하러 간 조는 이 모든 일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기구를 놓은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만난 이후,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광신도 패리라는 사람 때문일까? 기구를 놓은 그 순간부터, 삶이 헝클어진다. 패리는 조를 사랑한다 말하며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조는 뭔가에 쫓기듯 뭐든 일에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은 '대비'되는 사랑으로 그 의미를 묻고 있다. 소풍을 떠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완벽하다고 믿어졌던 조와 클라리사의 '사랑'과 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패리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패리의 사랑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정상이 아니다. 동성애라는 것을 떠나서, 그는 조 역시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망상에 젖어도 완벽하게 빠져있다.

 

조는 그것이 불안하다.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할 때만 해도 무시하면 될 줄 알았는데, 거의 '스토킹'하는 그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조는 그 감정을 클라리사에게 털어놓는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하여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영원한 사랑은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조가 망상에 젖어있다고 생각한다.

 

패리는 여전히 사랑을 말하고 클라리사도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뭔가 어긋난 느낌이다. 조는 자신의 생활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권총을 구하게 된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거부당한 것에 화를 내는 패리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일까. 패리는 권총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사랑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반면에 클라리사는 어떨까? 완벽하다고 믿었던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언 매큐언의 사랑에서는 '피투성이'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신체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 '파헤쳐진'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평범한 삶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런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대비되는 사랑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위험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는 물론이고 '도덕'과 '믿음'이라는 단어까지 꺼내는 질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런 사랑>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문제'들을 두루 담아낸, '매큐언스러운' 소설인 셈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소수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속죄>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가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이 급속도록 알려졌고 소설 또한 인기를 얻게 됐다. 처음 만난 독자를 사로잡는 그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인데 <이런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언 매큐언의 팬이나 본격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사랑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2012)


태그:#이언 매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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