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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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는 부지런하다. 3000원이 할인되는 조조할인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에 도착한 시각 오전 8시 50분. 이미 대부분의 표가 팔리고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목을 뒤로 40도는 젖혀야 감상이 가능한 맨 앞자리. 뒤를 돌아보니 마치 여고 동창회라도 하듯 아줌마들만 빼곡히 앉아 있다. 

"사랑한다고~ 말 할 걸 그랬지이~"

대한민국 여배우 중 드레스를 입은 태가 가장 아름답다는 수애. 영화 <님은 먼곳에>는 어느 시골 3대 독자의 며느리 순이로 분한 그녀가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열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방 군대 보내 놓고 노래가 나오나!!"

손주 볼 생각에 매달 며느리를 아들 부대로 면회 보내는 시어머니와 이미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어버린 껍데기뿐인 남편. 매달 면회를 가도, 매일 편지를 써도 다른 여자를 향한 남편의 마음은 돌릴 길이 없다. 그녀에게 남편은 이미 먼 곳에 있는 철없는 '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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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끊기되 되었으니 월남까지 남편을 찾아가서 대를 잇지 않으려면 차라리 집을 나가라는 시어머니와 친정에는 발그림자도 하지 말고 죽어도 시집귀신이 되라는 친정아버지. 순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차라리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 '써니'라는 이름의 가수로 월남행 배에 몸을 싣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동네 할머니들 앞에서 대중가요 가락을 목청껏 뽑던 순박한 시골 아낙 순이는 파월장병 위문공연단의 인기가수 '써니'가 되어 '수지큐'를 부른다.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와 긴팔의 꽃무늬 블라우스 대신 핫팬츠와 어깨를 드러낸 반짝이 무대복을 입은 그녀. 붉은 립스틱까지 바르고 나면 어느새 파월장병들의 연인인 인기가수 '써니'가 된다.

영화 <님은 먼 곳에>의 신선함은 여주인공의 수치심과 자괴감을 우려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인기가수 '써니'지만 여전히 철없는 남편을 찾아 헤매는 시골아낙 '순이'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을 찾는 일에 무모할 만큼의 집착을 보이는 '써니'의 '순이스러움'은 상영 내내 아줌마들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사랑도 아닌 것이, 집착도 아닌 것이, 오기도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면서'까지 이미 마음조차 떠나버린 남편 구하기를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줌마들 역시 순이의 무모한 남편 일병구하기에 동화된다. 어차피 시작된 남편찾기이니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일단 찾고 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믿도 끝도 없는 '아줌마스러운' 고집에 슬그머니 공감대가 생겨나는 때문일 것이다.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와 함께 써니의 맑은 노래가 잔잔하게 울려온다.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맞다. <지옥의 묵시록> 첫 장면. 네이팜탄이 터지는 전장속을 날으는 헬리콥터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처연하도록 서정적 멜로디. 도어즈의 'The End'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재미있는 것은 써니 아니 수애가 부른 영화 삽입곡 '님은 먼 곳에'도 <지옥의 묵시록>의  디엔드 만큼이나 가슴을 울린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 남성팬들에게는 어이없는 패러디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죽을 고비 살 고비를 넘겨 순이는 폭탄이 쏟아지는 전장 속에서 반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남편과 조우한다. 남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아줄까? 울어버릴까? 놀라서 기절을 하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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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한달음에 달려가 안아주는 대신 오열하는 남편의 뺨을 풀스윙으로 시원하게 날려준다.

짝, 짝, 짝, 짝….

상영시간 내내 가슴에 얹혔던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순간이다. 저렇게 속 썩이고 고생시키는 개념상실 남편이라면 나라도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때려 주고 싶지 않았을까.

함께 간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이 장면에서 지나간 한 장면을 떠 올렸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성화로 남편 면회를 온 순이를 앉혀놓고 남편 상길이 싸늘하게 했던 말이다.

"니 내 사랑하나?"

정말 맞아도 싸지 않은가.

님은 먼곳에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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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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