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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은 때로 평생동안 간직된다. 그것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타인에게 당한 극단적인 폭력과 학대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그 피해자에게 들러붙은채 거의 일생동안 따라다닐 것이다.

 

그것은 잊고 싶지만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될 것이다. 잊을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자신의 현재 때로는 미래까지도 악몽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심해진다면 정상적인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반사회적인 폭력과 범죄에 빠져들 수도 있다. 강한 자극은 약한 자극을 몰아내는 법.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 감춰져있던 더 어두운 본성을 꺼내는 행동도 서슴지 않을지 모른다.

 

범죄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과거를 간직한 채 성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부모 또는 배우자에게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 상대방은 자신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당사자가 피해자라 하더라도, 세상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피해자에게 동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과거를 끌어안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까?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세 남자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의 장편 <미스틱 리버>에 등장하는 데이브 보일도 11살 때 지독한 일을 겪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일을 털어놓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학교의 동료들은 그를 따돌리고, 선배들은 아무 이유없이 그를 괴롭히고 구타한다.

 

그가 이질적인 존재기 때문이다. 또래의 다른 학생들은 겪지 않을 일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와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다. 그가 당한 악몽이 마치 전염병처럼 자신에게 옮아올까봐 두렵다는 듯이.

 

어린 시절 데이브 보일에게는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숀 디바인, 지미 마커스가 그들이다. 가정환경이나 경제 수준은 달랐지만, 어쨌건 이들은 유년기에 함께 몰려다니면서 지냈다.

 

지미 마커스는 강인하면서 리더십이 있다. 때때로 그 강인함은 나쁜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겁이 없었다. 하지만 겁없는 그 행동은 용기인지 광기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데이브 보일은 지미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나약하다.

 

숀 디바인은 이들 두 명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균형감각이 있지만 가끔은 우유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 세 명은 서로 친구였다. 적어도 데이브 보일이 끔찍한 일을 당한 11살이 되기 전에는.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이들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이야기의 시작은 데이브 보일의 경험이 있고 나서 25년이 지난 시점이다. 11살이던 소년들은 어느새 36살의 가장으로 성장했다. 모두 결혼해서 부인과 자식이 있다.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도 있고 정상궤도를 벗어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세 사람 다 용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공통점도 있다. 어린 시절에 데이브 보일이 당한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피해자는 데이브지만, 다른 친구들도 그 일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채 인생을 살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거나 안타까움일 수도 있다. 가끔씩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 일이 나에게 생겼더라면…'과 같은 같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차에서 폭행당하고 달아나다가 총에 맞고 숨진 것이다. 즉각 수사팀이 꾸려지고 전면적인 조사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살인사건이 그렇듯이 이 사건도 의문점이 많다. 이 잔인한 살인사건은 세 남자의 과거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살인사건과 함께 드러나는 과거

 

<미스틱 리버>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여러가지 일을 해왔다. 카운셀러, 레스토랑 종업원, 리무진 운전사, 서점 점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드러나 있다. 2년 만에 만난 낯선 딸 앞에서 어색해하는 아버지, 딸을 잃고 괴로워하는 아버지, 뒤틀려 버린 인생을 한탄하는 사람, 과거의 기억과 현실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남자 등.

 

이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시 데이브 보일이다. 그는 상처를 간직한 채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아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야구수업을 받는 아들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오래된 과거는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세 남자 사이에도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서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 사이에는 해소되지 못한 어떤 문제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질투나 시기, 원인모를 집착이나 아쉬움일지 모른다.

 

이런 문제들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이 때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이들 사이는 다시 예전처럼 친구로 돌아갈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나버릴까.

 

데이브 보일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그런 비밀, 타인에게도 숨기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그런 비밀을.

 

그것이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면,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만들어서 평생 그 좋은 추억만이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좋은 남편, 상냥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그가 과거를 지웠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지나간 일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다. 기나긴 고해성사를 하듯이 자신의 옛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함께 극복해가는 것도 좋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두운 지난 일들과 그것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직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미스틱 리버> 데니스 루헤인 지음 /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펴냄.


미스틱 리버 - 상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황금가지(2005)


태그:#추리소설, #미스틱 리버, #데니스 루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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