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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의 영조 정순후의 가례반차도는 왕과 왕비의 행렬이 모두 포함되어 1700여명의 각종 인물이 등장하는 초호화 행렬도이다. 1749년 <국혼정례>의 찬술은 왕가의 혼례를 간소화하기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와 같이 화려한 행렬을 묘사한 것을 보면 영조의 세력 과시를 보는 듯하다. 이 행렬을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에게 이러한 행렬이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이 가례 반차도가 선례가 되어 예외는 있으나 이후의 가례들이 더욱 길고 화려한 반차도를 남겼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책속에서

왕실혼례의 기록-<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왕실혼례의 기록-<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 소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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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혼례의 기록'-<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소와당 펴냄) 표지 그림은 이처럼 화려했던  영조와 정순후의 혼례 기록 중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가례반차도, 그 중 왕의 가마(옥교) 행렬을 그린 것이다. 뒤표지에서는 정순후의 가마 행렬을 볼 수 있다.

신랑인 영조의 가마 행렬은 21~22면에 걸쳐 그려져 있으며, 신부인 정순후의 가마는 42면에 그려져 있다. 이 반차도 13~14면에 부연, 즉 빈 가마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왕이 탄 가마, 즉 왕의 연에 앞서 빈 가마가 하나 가도록 하는 당시의 관례에 따른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제21대 영조와 제22대 정조의 가례기록은 우리 의궤에서 중요하다.

의례에 관한 책인 <국조속오례의>,<국조속오례의서례>,<국조속오례의보>, <국제속오례의보서례>가 찬술된 후 첫 번째 가례로 훗날 다른 가례들의 선례가 되고 있는 것이 영조의 가례요, 세손 이산의 가례 의궤는 조선 왕실의 유일한 왕세손 가례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스스로 3첩 반상을 고집할 만큼 '검소함'을 몸소 실천한 왕이었다.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자 500회가 넘는 잠행(미행)을 했다는 영조는 양반가의 사치가 못마땅해 사치를 금하는 특단의 조치를 여러번 했는데, 금주령을 내린 후 그를 위배하는 자가 고을 수령일지라도 사형에 처해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영조인지라 왕세손(조선 22대 정조)의 혼례(1762년)를 지극히 검소하게 치르라고 명한다. 그리하여 이전 가례에서 금으로 만들었던 물건들은 모두 은으로 만들어 도금을 입혀 사용한다. 가례반차도 속 총 인원은 394명, 92필의 말이 세손빈의 가마를 호위하고 있음이 4년 전 영조의 가례와 무척 큰 차이가 난다.

영조 재위 중에 계비 정순후를 맞이하며 치른 호화로운 혼례(모두 50면)와,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던 해에 치른 왕세손의 가례, 그 기록인 반차도(모두 18면)를 보면서 별별 추측들이 일었다.

영조 가례도감의궤(1759)반차도 제41~42면-영조의 가마 행렬
 영조 가례도감의궤(1759)반차도 제41~42면-영조의 가마 행렬
ⓒ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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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가례도감의궤(1759)반차도 제41~42면-정순후의 가마 행렬
 영조 가례도감의궤(1759)반차도 제41~42면-정순후의 가마 행렬
ⓒ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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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면부터 시작되는 반차도 행렬의 후반부 왕비의 행렬은 앞에서 본 반차도들과 구성요소들이 거의 비슷하지만, 간간히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한다. 즉 제30면에는 동뢰연에 필요한 옥석을 둘둘 말아 든 사람, 배안상을 든 사람 둘, 그리고 충찬의 2인이 교명요여의 앞에 가며 이어서 거안차비 3인과 욕석차비와 교명차비 각각 1인씩 모두 5인의 기마상이…(중략)… 옥책요여의 앞에는 독책상을 받쳐 든 사람이 하나 더 있고, 요여의 뒤에는 제33면에 독책상차비가 하나 더 있어 일렬에 7인의 기마인물들이…"-책속에서

42면에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정순후의 가마 행렬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9면부터 50면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기물들이 혼례 행렬에 보인다. 동뢰연은 무엇이고 배안상, 충찬의, 교명요여, 거안차비, 욕석차비…, 무척 낯선 용어들이다.

이 책에는 이처럼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책은 더디 넘겨진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설명 사이로 풍성하게 실려 있는 의궤 칼라도판들이 책을 쉽게 덮지 못하게 한다.

오밀조밀 그려진 작은 그림들이 참 재미있다고 할까? 비록 손톱만한 그림으로 남아 있지만 몇 백 년 전에 실재했던 우리 조상들을 그린 그 작은 그림들의 꼬물거림이라니! 저마다 다른 복장과 달리 들고 있는 깃발(의장)들과 기물들. 언뜻 같아 보이고 유치해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들이 볼수록 재미있어서 그림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보기도 했다.

역사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인물부터 전혀 기록되지 않은 하급 무사까지, 반차도를 그리는 도화서 화원들은 나름 그 사람만의 특징을 묘사하느라 신경 썼을 것이다.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든 생김새의 특징과 몸동작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녕 누구였는지, 규장각으로 달려가 반차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곤 했었다.

이처럼 이런 책으로나마 의궤를 만나는 것도, 의궤를 통해 역사와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아가는 것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기쁨이다.

전면 가득 펼쳐져 몇 페이지고 계속 이어지는 칼라 반차도를 넘기며 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옛날 사람이 되어 왕과 왕비의 혼례행렬을 구경하고 있는 듯 의궤 속 행렬에 빠져들었다. 저자도 이런 마음 때문에 20년 동안 의궤에 빠져 살았던 것은 아닐까?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실의궤를 만나자

왕세자(익종/문조) 가례도감의궤(1819) 본문 '교명식' 세부/왕세자(순종) 가례도감의궤(1882) '동뢰연배설도'
 왕세자(익종/문조) 가례도감의궤(1819) 본문 '교명식' 세부/왕세자(순종) 가례도감의궤(1882) '동뢰연배설도'
ⓒ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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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그림과 글로 기록하여 남겼다. 처음부터 5~8부 가량을 제작하여 사고에 보관, 훗날 같은 성격의 행사에 참고하게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새겨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했다.

종류도 많다. 왕비나 세자 등의 책봉이나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혼례에 관한 것, 장례나 제례 등에 관한 것, 국왕이 모범을 보이고자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과 같은 행사나 각종 잔치, 궁궐 건축물의 신축이나 보수, 중수 등에 관한 것 등. 조선후기로 갈수록 양은 방대해지고 제작 기법도 수작업에서 판화로 바뀌고 있다.

또한 왕실 행사의 기안에서부터 진행과정, 각 부서 관원들 사이에 오고 간 행사 관련 공문서, 왕의 지시와 신하들의 의견과 건의, 사용된 물품과 물품을 만든 사람과 물품 제작과 행사에 소요된 비용, 행사에 참여한 신하들의 관직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의궤는 우리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원 화성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건축 당시인 정조 때 의궤를 작성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수많은 건축물과 의복, 풍습, 풍물, 국가 행사 등의 충실한 자료가 되고 있음도 물론이다. 의궤는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의궤 중 왕실의 혼례에 관한 것이 '가례도감의궤'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가례도감 반차도는 1627년 소현세자의 혼례를 비롯해 1906년의 황태자 순종의 혼례까지 13건. 저자는 현존하는 각 가례반차도만의 특징과 내용, 시대별 변화와 변화에 따른 미술사적 고찰과 의미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들려준다.

가례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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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및 장서각/국립고궁박물관

고속 열차 TGV(테제베)와 함께 유명해진 우리 문화유산 의궤, 드라마(MBC-이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익숙해진 의궤지만 막상 일반인들이 만나기란 매우 힘들다. 현존하는 의궤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모두 귀중본으로 분류, 특별 관리되고 있는지라 접근 자체부터 힘들기 때문이다.

운 좋게 의궤를 만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한자로 기록된 수많은 궁중용어들과 당시의 관직명, 기물, 풍물, 풍속 등의 전문 용어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수 이두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저자는 20년간의 가례도감연구 일화에서 밝히고 있다. 의례 용어,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 실태를 표로 따로 정리한 것도 연구자들에게는 유용할 듯하다.

이런 어려움들을 어느 정도는 극복, 전문가만이 아닌 일반인도 쉽게 의궤를 만날 수 있도록 이 책에는 이런 반차도를 정밀 촬영한 컬러 도판을 풀 페이지로 수록, 마치 행렬을 구경하면서 따라가는 듯 설명하고 있다. 의궤, 가례도감의궤를 알기에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의궤에 관한 책을 내기가 막상 쉽지 않았다. 저자가 20년 동안 연구,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풀어썼지만 워낙 전문적인 소재라 어느 정도의 모험도 감수해야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워낙 유명해진 의궤지만 우리의 의궤 연구는 이제 첫걸음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 성과가 미미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멈춰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이 책을 첫걸음으로 '잔치'와 '어진'에 관한 의궤 2권을 계획 중이다."
- 7월 22일 출판사 '소와당' 담당 편집자와 한 통화

덧붙이는 글 | 왕실 혼례의 기록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 이성미 지음 / 소와당 / 2008년 6월 23일 펴냄 / 3만5000원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 왕실 혼례의 기록

이성미 지음, 소와당(2008)


태그:#인문교양, #의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가레도감의궤, #도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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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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