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우즈 제로>의 포스터

<크로우즈 제로>의 포스터 ⓒ 도호 TBS픽쳐스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를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무대는 고등학교, <친구>의 준석(유오성 분)의 아버지가 폭력조직의 보스이듯 타키야 겐지(오구리 슌 분)의 아버지 역시 야쿠자 조직 유성회 보스다.
 
미화된 폭력과 폭력으로 포장된 영상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관객조차 그 싸움의 한가운데 주먹을 불끈 쥐고 서게 한다.

 

흥행수입은 또 어떤가. 당시 <친구>는 82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한국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고 200여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2007년 10월 일본에서 개봉된 <크로우즈 제로> 역시 흥행수입이나 인기가 <친구> 못지않았다. 당시 7주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탄탄가도를 달리던 스즈키 마사유키 감독의 <히어로>를 누르고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니까. 흥행수입은 약 25억 엔이었다.

 

지난 2일 우리나라 전국에서 동시 개봉한 <크로우즈 제로>가 <친구>의 성공을 경험한 관객들이 그만큼 사랑해 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탄탄한 스토리와 우리의 학창시절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 <친구>가 흥행했던 점과는 달리,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그들의 싸움이 단지 '짱'을 정하기 위한 무모한 주먹질이라고 치부하고 외면할지도 모른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의 한 장면이다. <친구>는 여러 면에서 <크로우즈 제로>와 닮았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의 한 장면이다. <친구>는 여러 면에서 <크로우즈 제로>와 닮았다. ⓒ 시네라인㈜인네트

 

낙서와 주먹 그리고 끽연

 

이 세 가지는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걸까? 고등학교 벽에 쓴 낙서가 인상적이다. '스즈란의 짱, 세리자와 타마오' 그러나 타키야 겐지는 스프레이로 '세리자와 타마오'라는 이름을 지우고 '타키야 겐지'라고 써넣는다. 바로 이 행위가 앞으로 전개될 싸움이 왜 일어나야만 하는지의 당위를 말하는 듯하다. 영화 화면마다 어지럽고 지저분한 낙서들이 즐비하게 비췬다. 낙서로 인하여 주먹이 살고 주먹으로 인하여 낙서를 생산한다?

 

낙서에 철학을 담고 낙서가 인간문명에 끼친 영향을 설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영화는 안성맞춤이다. 스즈란 고등학교의 안팎이 모두 낙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서 속에서 크고 낙서 속에서 정상의 꿈을 꾸며 낙서 속에서 정상이 되기 위해 대결을 한다. 낙서는 있으되 꿈은 없고, 낙서는 있으되 학구열은 없으며, 낙서는 있으되 스승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낙서들 때문에 우리의 촛불 집회에서 눈에 띄던 낙서들의 선한 이미지들까지 흐려질까 걱정이 되었다. 악한 낙서와 선한 낙서가 있을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낙서가 선과 악을 가르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면에서 우리의 주먹지기들은 담배를 꼬나물고 등장한다. 불량학생의 코드쯤 되는 것인지.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금연이 세계적 추세가 된 지금, 그것도 고리타분한 한국에서 그렇게 호락호락한 수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끽연이 주먹질에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크로우즈 제로>의 한 장면 보스는 앞에 서고 뒤에서 패거리들이 지켜보고 있다.

<크로우즈 제로>의 한 장면 보스는 앞에 서고 뒤에서 패거리들이 지켜보고 있다. ⓒ 도호 TBS픽쳐스

 

폭력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있을까?

 

<크로우즈 제로>는 일본에서 3200만 권 이상이 팔린 다카하시 히로시(Hiroshi Takahashi)의 원작 만화 <히어로즈>를 미이케 다카시가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성장영화며 학원폭력물이다. ‘주먹 하나로 평정할 수 있는 세계’나 ‘폭력으로 세워질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 전제로 그것을 추구하는 무의미성(하지만 주인공들이야 유의미성이다)의 폭력이 난무한다.

 

‘오직 주먹 하나로!’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 주먹맛을 톡톡히 보여주는 영화, 폭력이라면 어느 누구도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 신종 사이비 주먹교주들이 펼치는 감칠맛 나는 폭력영화, 폭력영화의 참맛을 보여주겠다고 덤벼드는 폭력미학영화, 이런 영화를 원한다면 <그로우즈 제로>는 제격이다. 그 어느 주먹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주먹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스즈란 고등학교, 날마다 그 세계의 판도를 거머쥐기 위해 주먹질을 해대는 몇 개의 그룹과 이들을 이끄는 몇 명의 보스가 있는, 간판만 학교인 스즈란 고등학교가 있다. 이미 그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 스즈란의 짱 세리자와 타마오(야마다 타카유키 분) 앞에 나타난 타키야 겐지(오구리 슌), 이들의 숙명적인 싸움은 타키야 겐지가 전학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마지막 일전이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다. 이 비가 그치면 '짱'은 결정되는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마지막 일전이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다. 이 비가 그치면 '짱'은 결정되는가? ⓒ 도호 TBS픽쳐스

 

실패자들의 또 다른 형태의 실패 스토리

 

타키야 겐지는 과거 유성회 보스인 아버지가 스즈란 고등학교를 제패하려다 실패한 것을 자신이 성공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스즈란에 전학 온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벽에 낙서된 ‘스즈란의 짱 세라자와 카마오’를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것이다.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화 내내 보여준다.

 

스즈란 출신 야쿠자 카타기리 켄(야베 교스케 분)의 조언을 받으며 1학년, 2학년을 차례로 접수함으로 세리자와 타마오에게 다가간다. 카타기리는 유성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실력이 모자라 유성회와 반대 그룹인 야카키의 야쿠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좌절한 꿈을 타키야 겐지를 적극적으로 도우므로 이루려 한다. 비슷한 패배자가 세리자와 편에도 있다. 토키오인데 그는 병실에서 마지막 전투를 지켜본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보스를 통하여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영화를 통하여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청춘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더라도 끝까지 날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타키야 겐지와 카타기리 켄, 세리자와 타마오와 토키오 이들은 서로의 꿈을 상대를 통하여 이루려 하거나, 혹은 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한다. 스즈란이란 나라는 이 두 그룹의 싸움이다. 혹시 우리의 정치인 중에도 이런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보스정치에 그를 통하여 자신의 얄팍한 꿈을 기대보려는 패거리들…. 아니기를 제발 빈다.

 

빗속을 뚫으며 두 패거리가 싸우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질기게도 맞는다. 질기게도 때린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더 질긴 꿈을 한으로 품고 상대에게 덤벼든다. 그들의 빗속결투 화면과 계속하여 교차하면서 음악축제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이 부른 노래 속에서 "Hero live is in you"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정말 주먹으로 자신 안에 영웅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영웅으로 살기 위해 주먹이 필요한가. 영웅은 주먹으로 가능한가. 여기에 대하여 나보고 대답하라면 고개를 흔들며 말하고프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라고. 폭력으로 오를 수 있는 짱은 없다. 폭력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없다. 있다면 그 나라가 사이비일 것이다.

 

 마지막 일전, 두 보스가 '짱'을 정하는 마지막 싸움에서 서로 움켜쥐고 노려보고 있다.

마지막 일전, 두 보스가 '짱'을 정하는 마지막 싸움에서 서로 움켜쥐고 노려보고 있다. ⓒ 도호 TBS픽쳐스

덧붙이는 글 | 미이케 다카시 감독, 오구리 슌, 야마다 타카유키 주연, 도호 TBS픽쳐스 작품, 쇼박스 (주)미디어 플렉스 배급

2008.07.06 14:2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미이케 다카시 감독, 오구리 슌, 야마다 타카유키 주연, 도호 TBS픽쳐스 작품, 쇼박스 (주)미디어 플렉스 배급
크로우즈 제로 개봉영화 일본영화 폭력 주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