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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11명이 동시에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저 아우성이 될 뿐이다. 아무리 달콤하거나 심오한 뜻을 전하고자 해도 말은 전달되지 않는다. 음악이라 할지라도 11성부의 중창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주 난해한 음악적 실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용일 때는 아주 다르다.

 

질투는 사랑이 낳는 불행한 사생아다. 질투에 눈멀어 사랑하는 아내를 죽여야 했던 오델로의 머릿속은 온갖 고통과 저주의 상상이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격정에 사로잡힌 오델로 머릿속의 또 다른 오델로 11명이 동시 공간에서 몸부림치는 것. 말과 달리 또 음악과도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예술, 무용이기에 가능한 상상이자 구현이 아닐 수 없다.

 

국립발레단(예술감독 최태지)가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올리는 창작발레 <오델로>는 독특하다. '셰익스피어 인 발레'라는 부제를 단 이번 작품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인 <오델로>를 3명의 안무가가 각자의 목소리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제임스 전(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박상철(국립발레단), 백영태(강원대) 등 80, 90년대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들이 그들.

 

이번 작품은 세종대 송현옥 교수가 연출을 맡아 무용과 연극의 크로스 오버를 시도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 해도 그 내용은 대부분 사람들 머릿속에는 가물거리기 마련이다. 연극으로 해도 3시간 정도 걸리는 <오델로>는 그 전부를 대사로 해도 사실 쉽지 않은 내용.

 

사랑과 음모 그리고 질투과 죽음이라는 그나마 셰익스피어 비극 중 감정의 동기들이 비교적 단순한 <오델로>지만 단지 내용이 아니라 그것들의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는 역시 간단치 않다. 더욱이 말 없는 무용이라는 매개를 통하기에 국립발레단이 시도하는 연극과의 크로스 오버는 관객에 대한 작은 친절이자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이다.

 

그러나 이번 국립발레단의 <오델로>에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새로이 국립발레단을 맡은 최태지 예술감독의 한국 창작발레에 대한 의지이다. 세계 유수 콩쿠르마다 대상 및 입상을 거듭하고 있고, 강수진 등 우수한 무용수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 속에 한국 발레는 없다.

 

발레만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예술도 없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적 소양은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이고 있으나, 발레 안무만은 외국 누군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 물론 서울발레시어터 등 민간 발레단에서는 창작발레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으나, 발레의 특성상 대작 전막발레의 경우는 사실 국립이나 유니버셜발레단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이번 국립발레단 <오델로>가 비록 전막 발레는 아니지만 소품은 아니라는 점에서 최태지 예술감독 임기 3년 내에 뜻 깊은 전막 발레의 탄생을 뜨겁게 예감하게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한국 고전을 비로소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태지 예술감독은 "국내 안무가에 의한 전막발레는 내 꿈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한국 발레계에 안무가가 없다는 인식을 바꾸는 데 국립발레단이 앞장 설 것이며,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모이면 전막발레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의지를 보였다.

 

 

창작발레는 무용수에게도 또 다른 예술적 성취를 준다.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인 장운규는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그대로 따라가야 했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안무가와 교감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안무가 제임스 전도 "좋은 무용수들과 작업하니 많은 영감이 떠올랐다"라고 밝혔다. 창작발레는 안무가와 무용수 모두에게 교감과 영감이라는 부산물을 주는 것이다.

 

국립발레단 창작발레 <오델로>는 늘 봐왔던 클래식 발레의 조금 식상하거나 지루함에서 벗어나 오늘날 한국발레의 창조적 표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최고의 발레무용수들과 그들을 한껏 연주하는 제임스 전, 박상철, 백영태 세 안무가의 상상과 혼이 담긴 무대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연명 제122회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오델로"
장소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일시    7월 11일(금)~13일(일)
시간    저녁 7시 30분(금.토) 오후 3시(일)
문의    02)587-6181 국립발레단


태그:#국립발레단, #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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