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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은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원촨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원촨 대지진은 사망자 및 실종자 8만6662명 등 중국에 막대한 인명 및 재산 손실을 입혔다. 대지진 발생 한 달을 맞아 쓰촨성 현지에 거주하는 모종혁 통신원이 이번 대지진의 피해 상황을 점검해보고, 중국 경제 및 사회에 끼친 영향을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한 이재민 피난촌에 쌓인 옷가지들. 지진으로 죽어간 피해자들의 남겨진 옷은 살아난 사람들에게 재활의 도구가 되고 있다.
 한 이재민 피난촌에 쌓인 옷가지들. 지진으로 죽어간 피해자들의 남겨진 옷은 살아난 사람들에게 재활의 도구가 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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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촨(汶川) 대지진은 판다에게 있어서 최악의 위기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저우런창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 비펑샤(碧峰峽)판다기지 선전부 주임은 "1980년대에도 대나무에 꽃이 피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한 판다 250여 마리가 굶어 죽었다"면서 "이번 대지진으로 판다의 먹을거리인 대나무가 사라지거나 손상되어 적지 않은 판다가 아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다는 전 세계에서 오직 중국에만 살고 있는 희귀동물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상징 마크에 그려져 있는 판다는 현재 1590여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다가 멸종 위기에 몰린 것은 사람들이 모피와 고기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밀렵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한때 수만 마리에 달했던 판다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 서양과 중국 부자들 사이에 판다 모피가 큰 인기를 끌면서 수백 마리까지 줄어들었다.

1949년 사회주의 정권 건국 이래 판다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중국 정부는 쓰촨성에 판다연구센터를 두어 판다의 번식과 생존에 힘써 왔다. 쓰촨성은 중국에서 대나무가 가장 많은 곳으로, 전체 판다의 80% 이상이 쓰촨에 살고 있다.

판다는 희소한 성 행위와 까다로운 식성으로 번식과 생존율이 낮다. 천성적으로 섹스를 좋아하지 않아 판다는 1년에 한두 차례 성관계를 할뿐이다. 어린 죽순이나 신선하고 여린 대나무 잎만 먹기에, 판다는 청정 자연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저우런창 주임은 "지진 진앙지에서 불과 3㎞ 떨어진 워룽(臥龍)판다연구센터에서 사육되는 판다 217마리 중 1마리만 죽고 10여 마리의 판다가 다쳤다"고 밝혔다. 저우 주임은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어 워룽에 있는 60여 마리의 판다를 여기 야안과 청두(成都)시 판다연구기지, 베이징동물원, 산시(陝西)성 판다기지로 옮겼다"면서 "워룽에서 온 6마리의 판다는 기존에 있던 22마리와 별 탈 없이 잘 지내지만 야생에서 생활하는 판다의 생존이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청두판다연구기지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판다 3마리. 쓰촨은 중국 내에서 판다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청두판다연구기지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판다 3마리. 쓰촨은 중국 내에서 판다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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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판다, 흔들리는 중국 경제

지난 5월 12일 쓰촨성 원촨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은 쓰촨인들에게만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이 아니다. 대지진은 쓰촨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중국 경제에도 큰 충격파를 주고 있다.

2007년 현재 중국 경제에서 쓰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쓰촨성은 중국 전체 GDP의 4.3%, 수출입의 0.7%, 외국인 투자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거시 경제에 있어서 쓰촨성이 중국 경제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만, 서민과 밀접한 식품 생산 기지로서 쓰촨의 위치는 남다르다. 쓰촨성은 중국 식량과 육류의 주요 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3%, 11.6%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풍부하여 중국 생산량의 27%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식품과 천연가스 생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쓰촨성의 지진은 중국 물가 상승에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미 복구 과정에 들어선 쓰촨성 지진 피해 지역에 대한 건축 자재 수요의 증가와 복구 자금 지원에 따른 통화량 증가로 중국은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해 있다. 올해 들어 중국 소비자물가는 10년 이래 최고치를 갱신해 가고 있고 중국인이 즐기는 돼지고기 값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경제 전반의 침체 우려와 세계 증시 하락으로 중국 증시는 연일 폭락하고 있다. 19일 현재 상하이종합지수는 2748.87로 6.54%나 급락하여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중국 서부대개발 거점도시로서 청두의 위치도 흔들리고 있다. 2000년부터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대개발 정책을 통해 쓰촨성 수도인 청두는 지난 수년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작년 청두시는 충칭(重慶)시와 더불어 도농복합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성장의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이번 지진은 중국 내륙의 상하이를 꿈꿨던 청두에 살기 불안한 도시라는 상처를 남겨주어 도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 소비자물가 추이.
 중국 소비자물가 추이.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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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때 발생한 산사태로 수많은 사회 간접 시설이 파괴됐다. 중국 정부는 지진 피해지 재건을 위해 막대한 복구 자금을 지원했다.
 대지진 때 발생한 산사태로 수많은 사회 간접 시설이 파괴됐다. 중국 정부는 지진 피해지 재건을 위해 막대한 복구 자금을 지원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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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 가해자에서 지진 피해자로... "중국 파이팅! 쓰촨 파이팅" 물결

원촨 대지진은 쓰촨과 중국 경제를 흔들어 놓았지만, 국제 사회에 중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5월 12일 대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직접 재난 현장을 찾았다.

전쟁터와 같은 지진 피해지에서 진두지휘를 하는 중국 국가지도자들의 신속한 대처는 중국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쓰촨성 내 모든 지진 피해 지역을 훑어 다니면서 이재민들을 위로했던 원 총리의 행동은 상처받은 민심을 곧바로 안정시켰다.

중국 군부는 지진으로 인해 고립된 지역의 구조를 위해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등 14만 명의 군 병력을 구조 작업에 투입했다. 중국 언론 매체도 자연 재해에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버리고 선혈이 낭자한 피해 현장을 시시각각 보여주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여 큰 비난을 산 버마와 달리 중국은 이번 지진을 통해 하룻밤 사이에 티베트 사태 가해자에서 대지진 피해자로 동정표를 받았다.

대지진은 중국 사회를 단결시키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중국 파이팅', '쓰촨 파이팅'이란 글귀가 써진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시를 오가는 적지 않은 자동차에는 '중국인이여 단결하자', 'I Love China'라는 응원 구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중국 국영 CCTV를 비롯한 각종 방송과 인터넷에서는 '집을 다시 짓자'(重新家園), '울지 마, 원촨'(汶川, 別哭), '친구여, 함께 이겨나가자'(親人, 我們一起抗爭) 등 지진을 이겨내자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중국 선전 매체가 원촨 떠오르기에 매진하는 데에는 중국 정부의 숨은 의도도 잠복해 있다. 대지진 피해자와 이재민들은 부정부패로 사회 간접 시설과 공공건물이 쉽게 무너진 피해를 낳은 중국 지도자와 지방 정부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중국 정부는 피해 상황만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대지진 피해자의 분노를 사전에 막고 침체된 민심을 애국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 현장에서는 피해자와 이재민의 불만은 어디에도 없고 "중국 파이팅"(中國 加油), "쓰촨 파이팅"(四川 加油)의 구호만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청두 시내 한 공원에 여진을 피해 텐트와 천막을 설치한 주민들. 쓰촨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어진 여진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지난달 18일 청두 시내 한 공원에 여진을 피해 텐트와 천막을 설치한 주민들. 쓰촨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어진 여진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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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의 한 무상 헌혈 차량. 이번 지진은 중국인에게 사회 봉사와 자원 봉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했다.
 충칭의 한 무상 헌혈 차량. 이번 지진은 중국인에게 사회 봉사와 자원 봉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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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을 재발견한 중국인... 기억에서 멀어진 티베트 사태

개혁개방 이후 낯설었던 자선과 자원봉사 활동이 대규모로 일어난 것은 중국 사회에서 큰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지진 발생 한 달이 되는 지난 12일까지 중국 국내와 타이완·홍콩·마카오 등 중화권, 해외 화교 등 각지에서 성금이 쏟아진 성금은 500억 위안(한화 약 7조2500억 원)을 돌파했다. 이는 2004년 중국 100여 개 자선단체에서 모금한 총액 50여 억 위안의 10배에 해당한다.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인색했던 중국인들에게 이번 대지진은 자선과 기부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나이 어린 꼬마들은 돼지저금통을 뜯어 모금함에 넣는가 하면 나이 지긋한 노인들도 다달이 받는 퇴직금을 털어 성금 모금에 동참했다. 13억 중국인들이 모두 체감했던 대지진의 공포는 재해에 죽고 다친 이웃을 돕는다는 자선의 재발견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연 재해가 터지면 정부와 공산당의 현장 '총알받이'로 인식됐던 자원봉사자의 개념도 바뀌었다. 지진 발생 2~3일 뒤, 생업을 팽개치고 자비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을 피해 지역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는 이들로부터 "내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러 나왔다"는 신념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지진은 그동안 활동이 미미했던 시민단체(NGO)의 존재와 위상도 강화시켜 주었다. 라이윈 그린피스 광저우지부장은 "중국 정부가 시민단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면서 "시민단체의 활동을 금기시하던 지방 정부도 NGO 활동가를 존중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탕즈 충칭TV 기자는 "이번 지진을 통해 중국인은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다"면서 "엄청난 재해 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 내 가족과 이웃이 무사하다는 것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난(西南)민족대학에 재학 중인 한 티베트인 대학원생은 "티베트 사태를 미궁에 빠뜨리게 한 것도 이번 원촨 대지진의 또 다른 공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지진이 발생한 원촨이 속한 아바(阿壩)주는 지난 3월 티베트 독립 시위가 어느 곳보다 격렬했던 곳"이라며 "대지진 속에 티베트 사태가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원촨 대지진 발생 한 달을 앞두고 청두 중심가 텐푸(天府)광장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앞을 자전거로 힘차게 달리는 청두 시민들.
 지난 10일 원촨 대지진 발생 한 달을 앞두고 청두 중심가 텐푸(天府)광장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앞을 자전거로 힘차게 달리는 청두 시민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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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쓰촨대지진, #판다, #중국 경제, #애국주의,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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