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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키가 참 크네요? 지금 초등학교에 보내도 되겠어요.”

“아, 예에….”

 

둘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시로 듣는 말이다. 솔직히 이런 말 들으면 짜증부터 난다. 그래도 말하는 사람의 선의를 생각하여 그냥 웃어준다. 그러나, 키 크다는 말, 대를 이어 내 아이까지 들어야하다니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날 보고 키가 크네 어쩌네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한창 자라던 시절에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 내 키는 왜 멈추지 않고 자꾸 클까. 혹시 거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걱정한 적도 있었다. 큰 키에 대한 열등감은 서른이 되어서야 풀렸다.(제 키는 169cm^^)

 

때문에 둘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부정적으로 느낄까 걱정이다. 그래서 때론 아이 듣는 데서 ‘키가 크네’ 말하면 내가 다시 의역해준다. “할머니 말씀은 너가 씩씩하다는 뜻이야.”

 

그리고 친한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아이 듣는 데서는 절대 우와, 키 크네! 이런 말 하지 말고 씩씩해졌네,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겠네’로 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키가 작은 상대방의 경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며 잘 이해 못하는데 배부른 소리가 아니고 사실이 그러하다. 키 작은 사람에게 키 작다고 하는 것보다야 덜 아프지만 키 큰사람에게 키 크다는 소리도 자꾸 들으면 아프다.

 

‘예쁘다’라는 말도 자꾸 들으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듯...

 

‘키가 크네!’ 라는 말과 더불어 ‘예쁘게 생겼네!’라는 말도 찬사로 느껴지는 것 같지만 자꾸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늘 좋지 많은 않을 것도 같다. 물론 ‘키 크다’는 말보다야 덜 부담스럽지만 ‘예쁘다’는 말도 자꾸 들으면 본의 아니게 ‘공주’가 되어 지나치게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며 그에 구속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친구의 딸은 참 예쁘다. 예쁘기 때문에 예쁜 것을 예쁘다 해주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나나 싶어서 만날 때마다 예쁘다는 말을 꼭 해 준다. 그랬는데 지난 오월에 만났을 때는 이전 보다 더 예뻐진 것 같아 ‘예쁘다’는 사랑의 화살을 여러 개 쏘면서 문득 불안해졌다. 마냥 어릴 때라면 몰라도 점점 커가는 아이에게 ‘예쁘다’라는 말을 자꾸 각인시키는 것은 정서적으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귀엽다’라는 말만이 아니라 ‘예쁘다’라는 말도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좀 있는 게 아닐까요?”라며 우스개 삼아 선배 지인에게 물었다.

 

“그러게, 우리들이야 다들 한 번씩 할 뿐이지만 당사자는 가는 곳 마다 그런 말을 들을 거 아냐. 때문에 예쁘다는 것을 너무 의식할 수도 있겠지.”

 

“물론 아예 안 쓸 수야 없겠지만 백지수표 남발하듯 자꾸 하면 안 되겠지요. 또 가만 보면 한 무리의 소녀들이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예쁘다 하면 괜찮으나,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중 더 예쁜 아이 하나를 선별해서 ‘예쁘다’고 콕 찍어주잖아요. 때문에 옆의 다른 얘들은 기분 상하죠.”

 

“나중에 다 자라고 나면 예전에 못 났던 얘들이 더 예뻐지고,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 하던  아이는 못난이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상실감이 더 클 수도 있고.”

 

결론은, ‘키가 크네, 예쁘네’ 라는 말을 어린이들에게 쓸 때는 주의해서 쓰자. 키가 작네, 못 생겼네 등은 키 크고 예쁘다는 말보다 더하니 아예 꺼내질 말고 말이다.(웃음)

 

아니, 가급적이면 자라는 어린 아이들에겐 ‘멋지다’ ‘아름답다’ ‘훌륭하다’ ‘씩씩하다’라는 수식을 해 주면 어떨까.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씩씩한 것은 키의 장단과 외모의 미추를 구분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해당될 수가 있다. 그리고 많이 들어도 나쁜 쪽으로 얽매일 수 없는 말들이다.


태그:#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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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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