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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와 돈을 가진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승의 호사를 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무덤을 끔직히 잘 만들었다. 그러나 무덤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매우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터키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최고의 시신을 담은 석관들이 많다. 이들 중 단연 최고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알렉산더 대왕의 것이라 점에서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석관을 알렉산더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고의 석관은 알렉산더 석관?

고고학 박물관 1층에 석관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부조한 석관이 단연 최고다.
▲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석관들과 알렉산더가 부조된 석관 고고학 박물관 1층에 석관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부조한 석관이 단연 최고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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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관은 박물관 1층 한 가운데 유리관 안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석관의 전면(全面)을 대단히 고급스럽게 돋을새김으로 장식했다. 지붕 모양의 덮개를 제외하면 아래 위가 대칭이 되는 듯하다. 석관의 덮개 네 모서리를 비롯해 처마 앞뒤, 지붕 꼭대기에 크고 작은 사자들이 앉아 있다. 백수의 제왕으로 주인공의 품위를 높였다. 석관 중앙 앞뒤면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사실적인 부조로 두 가지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펼치고 있다.

한 면의 부조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벌였던 이수스 전투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말을 탄 것은 마케도니아 장군들이고, 꿋꿋하게 서서 적을 죽이는 자들은 마케도니아 군인들이다. 페르시아 군인은 죽어 넘어져 있거나 비실비실 힘도 써보지 못하고 있다. 위의 왼쪽에 말 탄 자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다. 이 무덤의 주인인 아브달로니모스도 오른쪽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다. 이 부조는 측면으로 연결되는데, 그 쪽에서는 아브달로니모스가 말을 타고 용감히 적을 무찌르는 장면을 새겨 넣었다.

위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수스전투에서 활약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석관의 주인인 아브달로니모스의 활약상을 담은 부조다.
▲ 알렉산더 대왕 부조와 무덤 주인의 활약상을 담은 부조 위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수스전투에서 활약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석관의 주인인 아브달로니모스의 활약상을 담은 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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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면 아래 쪽의 부조는 사자 사냥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왼쪽 첫 번째 말 탄 자가 알렉산더 대왕이고 중앙에서 사자와 용감히 싸우고 있는 자가 아브달로니모스라고 한다. 사자와 정면 대결하는 장면이 실감이 난다. 그가 탄 말을 사자가 물었고, 사냥개들도 사자의 뒷다리를 물었다. 오리엔트 지역에서 사자 사냥은 용맹성을 저울질하는 잣대가 되었다. 마케도니아 장군들과 군왕들의 용맹무쌍함을 저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석관이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는 기원전 323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었고, 이 석관은 당시에 시돈이라 불리는 지역, 지금의 레바논에서 발굴되었다. 게다가 부조의 중심 인물은 알렉산더가 아니라 아브달로니모스인 것 같다. 그는 알렉산더와 함께 이수스전투에서 페르시아를 제압하고 시돈 지방의 왕이 된 자였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 될 수가 없다. 아브달로니모스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옳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저렇게 슬플까?

석관 네면에 18모습의 우는 여인상을 부조해 넣었다. 아마도 남편이 죽었나 보다. 한 여인의 슬픈 모습은 지금도 우리를 애처롭게 한다. 남편 죽은지 2000년도 더 넘었는데......
▲ 우는 여인의 석관 석관 네면에 18모습의 우는 여인상을 부조해 넣었다. 아마도 남편이 죽었나 보다. 한 여인의 슬픈 모습은 지금도 우리를 애처롭게 한다. 남편 죽은지 2000년도 더 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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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빼어난 석관은 너무나 많다. 석관 부조의 내용도 다양하다. 로마시대의 석관에는 로마 귀족들의 호화로운 삶을 새긴 석관이 많다. 가족과 편안히 생활하는 장면을 새긴 부조는 부럽기까지 했다. 인생만사를 관장하는 신들과 저승을 담당하는 신들을 주변에 새겨 확실한 저승의 삶을 보장받으려 애쓰기도 했다.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애기 몸체의 에로스를 에로틱하게 새겨 넣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석관도 있다.

아내인 듯한 여인의 슬퍼하는 부조를 석관 사방에 새긴 부조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기원전 4세기 때 제작된 것으로 시돈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넓은 면에 6가지, 좁은 면에 3가지, 모두 18가지, 한 여인의 슬퍼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새겼다. 아마도 전무후무한 부조이리라. 사랑하는 여인의 슬퍼하는 모습을 통해서 여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알고도 모를 일이다.

스핑크스가 이쁘기 짝이 없다. 사자 몸매에 날개가 달렸기는 해도 용모와 가슴이 이뻐 되돌아 보는 모습이 슬프지기까지 한다.
▲ 스핑크스 부조가 있는 석관 스핑크스가 이쁘기 짝이 없다. 사자 몸매에 날개가 달렸기는 해도 용모와 가슴이 이뻐 되돌아 보는 모습이 슬프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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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석관은 측면에 스핑크스를 비롯한 수호신을 새겨 넣었다. 저승의 삶에 대하여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나보다. 그런데 이 스핑크스가 또 보는 나를 자극한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역시 시돈의 로열네크로폴리스에서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날개가 달렸다. 앞발은 그냥 짐승의 그것이고, 몸체는 사자인 것 같다. 그리고 뒤돌아 보는 표정이 슬프서 아름답기 짝이 없다. 짐승의 몸매에 너무나 아름다운 가슴과 얼굴, 완전한 사람이지 못해 운명을 탓하며 슬프게 짓고 있는 저 표정을 어쩌란 말이냐. 안타깝고도 안타깝도다.

수백년 동안 제작된 무덤들이 즐비하다. 크게 네가지 형태로 구분된단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의 무덤들이란다.
▲ 히에라폴리스 네크로폴리스의 석관을 가진 무덤들 수백년 동안 제작된 무덤들이 즐비하다. 크게 네가지 형태로 구분된단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의 무덤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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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석관들은 대부분 돌로 지하나 지상 건물을 짓고 그 속에 보관하였다. 터키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공동묘지인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로마의 도시는 파묵칼레에 있는 히에라폴리스가 아닐까? 히에라폴리스의 북문을 통과하면 석관을 가진 무덤들이 끊임없이 2km 가까이 펼쳐진다. 이 곳에 살았던 귀족들의 무덤이 수 백 년 쌓였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무덤 형태는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나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헬레니즘 시기(기원전4세기-기원전1세기)의 무덤은 꼭 고구려 석실무덤 같기도 했다.

남아 있는 건물 중 화장실이 최고

그렇다고 히에라폴리스가 공동묘지를 위한 도시는 아니었다. 파묵칼레는 에게 바다에서 내륙 시리아 지역으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온천이 충분하고 석회석이 계속 녹아내려 장관을 이루었으니 로마인들이 도시를 건설하는 건 당연하였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웠고, 이후 천 년 동안 로마의 아나톨리아 내륙 지방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니 그들이 남긴 문화도 예사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선문을 통과하면 도심으로 들어간다. 도심 유적들 중에서 우습게도 화장실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 위는 아드리아누스 개선문, 아래는 로마시대 화장실 건물 개선문을 통과하면 도심으로 들어간다. 도심 유적들 중에서 우습게도 화장실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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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폴리스가 끝나는 지점에 83년에 세웠다는 도미트리아누스 개선문이 나타난다. 그 안이 바로 도시가 된다. 문을 통과하면 왼쪽에 아고라가 있었다고 하나 폐허만 남아 있다.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지역을 따라 가면 도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길을 따라 위에서 계속 내려온 온천수가 저 아래 목욕탕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만든단다. 모두 허물어진 가운데 우습게도 화장실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화장실조차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이 도시의 주신은 아폴론이었고, 거대한 아폴론 신전이 위용을 자랑했다고 하나 지금은 교회당 바실리카보다 못하다. 예수가 로마에서 처형당하고 그의 사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기독교를 전파했다. 사도 필립이 이곳에 와서 활동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5세기에 그를 기리는 건물을 지었으니 그것이 필립교회란다. 그러나 교회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북문 입구에 하나, 남문 입구쪽에 하나 히에라폴리스에는 두개의 목욕탕이 있었다. 원래의 모습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 위는 히에라폴리스의 목욕탕, 아래는 로마시대 목욕탕 단면도 북문 입구에 하나, 남문 입구쪽에 하나 히에라폴리스에는 두개의 목욕탕이 있었다. 원래의 모습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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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겼다. 천혜의 충분한 온천수가 목욕을 더 좋아하게 했을 것이다. 북쪽 개선문 입구에도 남쪽문 부근에 더 거대한 목욕탕 건물이 있었다. 남쪽 큰 목욕탕 건물을 수리하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극장도 두 곳이나 있었다. 목욕탕에서 동쪽 산쪽에 거대한 극장이 있고, 북쪽 개선문 부근의 동쪽에 또 극장이 하나 있었다. 북쪽 교외극장은 지금은 땅에 묻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다만 원형극장의 테두리가 얼핏 보일 뿐이다. 터키는 지진이 많은 나라다. 땅속에 파묻힌 문화재가 아직도 무궁무진하단다.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완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은 원형극장일 것이다. 최대 1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란다. 원의 전체를 100%로 표현하면 약 60내지 70% 정도의 원에 아래로부터 위로 객석을 만들고 객석 없는 부분을 앞면으로 가로막아 장식하고 아래 부분을 무대로 사용하였다. 전면에 디오니소스와 아르테미스 신상을 모셨다고 하나 지금은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보이는 건 복제품이란 말인가?

원형극장은 지금도 사용가능할까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은 원형극장이다. 수용인원이 12,000명 쯤 된단다. 전면이 막혀있어 검투사대결도 열렸던 모양이다.
▲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은 원형극장이다. 수용인원이 12,000명 쯤 된단다. 전면이 막혀있어 검투사대결도 열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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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그리스에서는 연극을 공연하는 곳이었다. 로마도 연극만 공연했을까? 노예들과 기독교 신자들과 반역자들이 항상 생겨나는 로마에서 원형극장을 연극 공연에만 사용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원래 공연장이 목적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검투사나 맹수와 검투사의 대결 등도 치러졌을 것이다.

남문 밖에는 김나지움이라는 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도시 바로 앞면에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곳에는 지금도 석회석이 물과 결합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얀 석회석이 물과 어울려 조그만 호수들을 만들고 여름에는 그 호수에서 수욕을 즐길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중간에 넓은 공간이 아고라이다. 아폴론 신전이 대단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로마시대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 히에라폴리스 평면도 중간에 넓은 공간이 아고라이다. 아폴론 신전이 대단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로마시대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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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속국을 점령하고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여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로마인들의 도시중심 삶의 모습이 히에라폴리스의 호화로운 건물 잔해에서 반영되고 있었다. 원형극장에서 연극과 노래 공연, 운 좋은 날에는 검투사 대결도 구경한다. 몸이 찌뿌드드하면 목욕탕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과 함께 목욕을 즐긴다. 이 모든 것은 노예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예가 흘러넘치는 로마 시민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의 세상에 가는 것이었다.

온천에 지금도 석회석이 녹아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조그만 호수들에서 수욕을 즐길 수 있단다.
▲ 목화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 온천과 석회암 온천에 지금도 석회석이 녹아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조그만 호수들에서 수욕을 즐길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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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에는 이렇게 살다간 로마인들의 무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2000년 전의 사람들의 모습이 흘낏 스쳐지나간다. 이곳에선 그들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은 정말로 너무나 순식간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2000년 지난 미래에도 후손들은 우리를 이런 식으로 기억할까?

덧붙이는 글 | 1월에 터키 여행한 기록입니다



태그:#터키의 석관, #히에라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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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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