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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발생한 숭례문 화재 사건의 수사가 마무리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방화로 인한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되었고,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들도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허술한 문화재 보호설비와 화재대응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다. 과연 이뿐일까?  그 이면의 문제는 없는 걸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국보 숭례문을 한 순간에 재로 만들어버린 방화사건을 통해 용의자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제2, 제3의 숭례문 화재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까?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12일 공개한 용의자의 자필메모에서 범행동기를 찾을 수 있다. 용의자는 1997-1998년 일산에 위치한 자신의 토지(약 99㎡)가 신축 아파트 건설 부지에 포함되어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불만을 가졌다.

 

당시 건축회사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9600만원의 보상금을 책정했으나 시가기준으로 생각할 때 금액이 적다고 판단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용의자는 각 기관에 수차례 진정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이 과정이 부당하다는 불만을 갖게 된다. 용의자의 자필메모 내용을 살펴보자.

 

"토지의 시가가 4억인데 1억도 안되는 공탁을 걸고 강제로 철거시켰다."

"정부에 억울함을 수차례 진정했으나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부는 약자는 죽이고 법을 알며 권세 있는 자는 죄는 조금(묻는)다."

"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 

 

또 체포된 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내용에서도 같은 내용의 범행동기를 읽을 수 있다.

 

 "의정부 고충처리위원회에 갔는데 ‘봐줄 수 없다’고 하고,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합의부 판사가 말도 없었다.” 

"수차례 진정을 하니까 하도 여러번 하니까, 거기서 뭐라고 하냐면, 전화도 꺼놓고 세 번 이상 하면 안되고...."

 

이렇게 용의자의 범행동기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극장형 폭력,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

 

이에 대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문화일보에 실린 2월 13일자 '재 속에서 불사조 탄생… 슬픔을 창조적 힘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극장형 폭력의 일종이라고 해석한다. 

 

사회불만을 드러내는 ‘시어터 바이올런스(Theater violence), 극장형 폭력이다. 정보화시대의 폭력은 개인이나 소수그룹이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질 수 있는 데모와 폭력수단을 쓰는 데 이것을 극장 폭력이라고 부른다.이번 숭례문 방화의 경우가 바로 이런 극장형 폭력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용의자는 자신의 불만을 여러번의 진정과정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불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숭례문이라는 문화재에 방화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낮은 사회갈등 해결능력과 법제도 등 사회에 대한 불신이 근본 원인 

 

우리사회는 사회갈등의 해결능력이 낮은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 최근의 한미FTA 문제, KTX여승무원 파업사태 등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사회갈등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해 극단으로 치달은 사건들이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단면은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7월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에 대한 합의를 이룬 기관장들을 치하하며 합의가 어려운 우리사회의 여건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사회가 한번 갈등이 시작되면 좀체 합의가 안되고 악착스런 투쟁을 하다가 결국 밀어붙이기로 결론이 나서 후유증이 생기는데...."

 

게다가 사회갈등의 최종 해결수단인 법제도마저도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KDI 경제정보센터가 2006년에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원 판결이 공정하다'는 응답은 50%에 그쳤고, 경찰의 법 집행이 공정하다는 응답도 43%에 머물렀다. 또 국민의 70%는 ‘공직자의 절반은 부패했다’고 생각해 사회갈등을 조정하는 공공조직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숭례문 화재의 용의자도 법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많이 불려질 만큼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 작년엔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 잇따른 기업총수 및 재벌출신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국민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키도 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인식을 뒷받침하는 결과들도 그동안 많이 보도되어 왔다.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2006년 8월에 노회찬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일부 법원의 판결이 사회고위층과 일반서민에 대해 편파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1월~2005년 8월 서울중앙지법의 횡령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배달원, 종업원 34명의 평균 횡령액은 636만원이고 실형을 산 사람은 15명(44.1%)에 이르는 반면, 기업체 대표이사급 83명의 평균 횡령액은 46억원에 달하는데도 실형을 산 사람은 28명(3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징역형을 선고받더라도, 기업체 대표이사급들은 집행유예로 풀러나는 비율이 59.4%(69명 중 41명)에 이르러, 배달원 종업원의 37.5%(24명 중 9명)보다 21.9%p나 더 높게 나타났다.

 

숭례문 화재 사건의 해결책은? 사회구조의 투명화

 

어느 사회나 그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늘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의견이 공정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의사는 한겨레에 실린 2007년 3월 7일자 '자기존재 증명욕구'라는 칼럼을 통해 인간에게 자기의사를 표한하고자 하는 욕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최소한의 자기존재 증명욕구는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와 같다. 자기존재를 증명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감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산소 없이 재주껏 살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고, 이를 들어주는 곳이 있어서 자기존재 증명욕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함을 이야기할 수 있고, 억울한 문제들에 대해선 투명하고 공정한 해결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개인에게 충분한 설명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사회구조에 대해 신뢰도를 높게 가진다면 억울한 사람도, 억울한 자신의 사연을 알리려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비극적인 일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경보장치를 설치하고 문을 걸어잠궈도 제2, 제3의 숭례문 화재 사건은 사회의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숭례문 화재사건의 진정한 해결책은 문화재 보호설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고,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가는 풍토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태그:#숭례문, #방화범, #화재, #해결책, #투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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