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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창원 중앙동은 20대의 젊은 물결이 크게 일렁거렸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또는 밥 한끼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추운 겨울마저 따뜻한 봄으로 변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8년간 계속 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김영기씨(가명․26)는 이번 설을 “여태껏 지내온 설 중 가장 추운 설”이라며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김씨는 지난 해 결혼을 하고 예정일을 3개월가량 남긴 배부른 아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설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월경 회사에서 김씨를 포함한 몇 명을 인천으로 전출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끝내 노사정위원회와 노동부의 중재안에 따라 출장 형식으로 2개월간 아무 연고 없는 인천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 회사에서 제시한 6개월 전출보다야 낫다지만 출산일은 다가오고 젊은 나이에 결혼에 떳떳할 수 있게 아내 곁에서 계속 지켜주고 싶은데 어렵게 됐다. 징계성이 짙은 전출”이라며 쓴 소주잔을 들이켰다.

 

김씨의 전출은 이미 예전부터 예고된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해 10월 특례병을 마치고 재입사한 김씨는 개인 사생활을 고려하지 않는 회사 측의 강제적 잔업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노조협의회라는 노조 아닌 노조가 설립되어 있어 마땅히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김씨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사측에 강제적 잔업 거부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사측에서는 잔업 시간대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여 문제를 제기한 몇몇 노동자를 의도적으로 잔업현장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때부터 김씨와 사측의 갈등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잔업 수당 중 50%가 지급되지 않고, 점심시간도 1시간에서 40분으로 단축되고, 근로계약서의 계약 기간이 1개월로 명시되어 있는 등 사측의 일방적인 행태로 김씨와 사측의 골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김씨는 “체불된 임금 50%는 노동부 고소를 통해 받았고, 근로계약서도 수정되었지만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했는데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느끼니 영세 사업장은 비정규직 정규직의 차이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몰라서 아무런 문제 제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맹에서 조금 더 발로 뛰어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 자기 권리를 찾을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번 설을 맞아 대구로 올라가야 한다는 김씨는 “마음이 춥다. 제발 마음 편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내 자신이 편해야 가정도 챙기는데 이렇게 힘드니까 아이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좋게 해결되어서 빨리 일터에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다”고 마지막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mp3를 귀에 꽂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김씨의 뒷모습은 주변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20대. 하지만 김씨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차가운 겨울바람은 주변 젊은이들과 달리 더 매서워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취재원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태그:#설, #노동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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