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포스터 ⓒ 싸이더스

언젠가부터 일제시대라는 시기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바뀌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일제시대 이미지라는 것은 삼일운동, 독립군, 일본의 수탈 같은 것들이었다.

 

군사정권시기에 초,중,고교에서 국사를 배우며 자라고, 어용방송의 드라마를 통해 일제시대에 대해서 배우고 알아온 자에게는 그런 이미지 밖에 남는 것이 없다. 군사정권기에는 모국의 국사에까지 박제된 이미지를 드리워 둔 것 같다.

 

난 재작년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라는 책을 읽고나서야 일제시대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대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게 구성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국정교과서와 어용방송의 드라마가 내 머리에 주입해 넣었던 일제시대에 대한 이미지에 변화가 일어났다. 참 새롭고 놀라운 경험으로 기억된다.

 

그전의 일제시대가 독립을 둘러싼 투쟁이나 일제의 잔학상이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면, <나비와 전사>에서 깨우치게 된 것은 조선의 '모던'에 대한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독립군들의 투쟁과 잔학한 일본군경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차, 전기, 영화, 라디오, 신여성… 등도 있었고, 식민지 반도땅에는 무엇보다 민중들이 항상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개량적인(?) 관점을 가지고 보니까 조금 다르게 보인 영화가 <라듸오 데이즈>다.

 

<라듸오 데이즈>는, 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독도문제와 같이 영토분쟁이 터지면 온 국민이 분노를 하는 나라에서 독립군을 저렇게 허당으로 묘사하고, 일제의 잔학상은 곁다리로만 붙이는 그런 영화가 욕을 먹지 않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내가 자라고 성장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군사정권기에라면 이런 영화는 여론의 지탄을 받거나 좀 더 철저하게 반일을 하지 않은 죄로 영화를 내려야 했을 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개인적으로는 이 매력적인 코미디 영화에서 핀트가 맞지 않는 독립투사와 일경들을 배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라듸오 데이즈>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당대 민중들의 동경을 받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에도 독립군과 일본군경이 등장하지만, 독립군과 일본군경이라는 기표는 다른 기의를 가지고 있으며, 독립군과 일본군경은 고유의 의미망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그냥, 영화적 클리세(상투적표현)로 전락했다(아직도 우리사회의 금기구조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일제와의 갈등구조를 되풀이해야만 하게 한다. 항일투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배제한 영화는 만들 수 없을까? 그렇게만 되면, 조선이 근대화되는 시점을 배경으로한 신선한 '모던'극을 한 편 볼 수 있을 것 같다).

 

<라듸오 데이즈>의 '모던'은 방송이다.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에서 조선의 '모던'을 알리는 알레고리(비유)는 기차였지만, <라듸오 데이즈>에서는 라디오 방송으로 치환되어 있다. 식민지의 '모던'을 알리는 신호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

 

사실, <라듸오 데이즈>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 시기가 조선의 '모던'이 열리는 시기라는 점은 라디오방송을 중심에 놓은 다양한 상황묘사에서 보여지지만 그 곳에서 피폐해지고 수탈받는 민중들은 배제되어 있다. 정사에서는 잊혀지고, 영화에서는 배제되는 그들의 모습을 코미디영화라고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모던'이 식민지와 더불어 왔다는 한계를 <라듸오 데이즈>는 충실히 재현해 주지는 못한다. <라듸오 데이즈>의 군상들은 잘 나가는 사람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근본주의적 비판을 비켜 간다면, <라듸오 데이즈>는 참 잘 만든 작품이다. 조선이 '모던'해지는 상황의 한 단면이 라디오방송이라는 소재와 배경으로 잘도 코미디화 되어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독립투쟁인지, 조선의 '모던'을 경축하는 축제인지 모호한 불꽃향연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부분은 대단히 역설적인 기능을 가진다. 이야기의 논리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는 독립투쟁에 관한 상황이 존재해야 옳다. 그런데, 불꽃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영화 이야기 구조의 형식적 논리를 따지면 이 부분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결론을 그렇게 형식논리로만 보지않고 내재적인 면까지 읽어낸다면 이 불꽃 향연의 도입은 올바른 것일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텍스트의 사건과 주연이 반드시 항일투쟁과  함께 해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그때의 주역은 라디오 방송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대다수 서민들이다. 

 

<라듸오 데이즈>의 엔딩에서 주인공들은 라듸오를 뛰어넘어 무대에까지 올라간다. 조선의 '모던'을 알리는 쇼가 벌어진 것이다. 그 무대엔 여태껏 등장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다 올라와 있다.

 

조선 '모던'의 주인공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아닌 것처럼, 백범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만이 역사의 위대한 주인공 또한 아니다. 그래서인지 <라듸오 데이즈>의 무대에는 다양한 인물이, 기생이든, 가수든, PD든 다 올라온다. 어색하지가 않다. 감동을 주지는 않지만 오래가는 여운을 준다.

2008.02.05 09:00 ⓒ 2008 OhmyNews
라듸오 데이즈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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