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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조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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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폭력’은 없어질 수 없다. 물리적이든지, 변형되어 행해지는 정신적 고통이든지. 나는 상식적으로 폭력문화 근절엔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운영 원리로는 불가능하다. 법률적으로 폭력의 빈도수를 줄이겠다는 발상,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말은 문제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군대는 사회주의 사회다”라는 말을 항상 곱씹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기적 욕구’를 인정하면서 발전해 가는 반면, 이를 물리적 방법으로 억누르며 운영되는 사회주의 원리가 군 생활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닮은 군대운영 원리... 이기심은 ‘악덕’이다

이기적 욕구는 다양하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 자기개발을 하고 싶은 욕구, 열심히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욕구, 남들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 등등.

하지만 사회주의의 실패는 이러한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즉 개인의 이기적 욕구는 악덕이고, 사회에도 해가 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역시 이런 원리를 따른다.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통제하기 위해, 물리적·정신적 폭력이 동원된다. 혹은 이런 폭력적 수단이 언제든지 사용될 수 있다는 공포감 조성을 무기로 삼기도 한다. 이기적 욕구는 조직운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2년 4개월간의 군 생활(공군 전역) 역시 내가 가진 ‘이기심’ 대부분이 폭력 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철저히 억눌려졌던 시간이었다. 생산적인 조직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채.

[이기적 바이러스 #1] 군대 가기 싫어요!

2003년 5월 26일. 입대일이 다가오자 문뜩 군대 가기가 싫어졌다. 종교적 신념 때문은 아니었다. 통제적인 생활, 외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무엇을 위해 내가 군대에 가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살상기술을 배우는 장에 동원된 점 역시 동의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이 못 마땅했는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달랬지만, 별로 마음 속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내 발걸음은 훈련소로 옮겨졌다. 군 입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아서가 아니다. ‘병역법’이란 국가적 폭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군대에 안 가면 ‘감방’ 가게 될 것 같아 무서웠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 모종의 ‘예방접종’을 받게 된다. 내 이기적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지 못하도록.

현재 ‘징병제’ 체제에서, 병역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없다. 국가적 폭력을 볼모로 한 타의적 군 입대는 동시에 군대운영에 동원되는 폭력문화를 인정하는 불행한 순간이 된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등 개인의 선택적 자유를 보장하면, 폭력문화를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이기적 바이러스가 ‘악덕’이 아니라, 군대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병역제도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사회적 생산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바이러스 #2] 훈련소는 헬스클럽? 자격증 학원?

군 입대 후, 국가로부터 받은 예방접종 효과는 놀라웠다. 고달팠던 훈련소 생활 5주는 저항적이던 나를 순종적인 사병으로 길들였다. 또 아무 목적 없고 이유 없는 훈련소 조교 호루라기 소리에 나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새로 배운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훈련소의 절반 정도는 특기학교인 ‘헌병 교육대’에서 보냈다. 헌병교육의 특수성상 매일같이 이유 없는 기합을 받아야 했고 간접적인 폭력, 모욕적인 험담에 시달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조교의 통제에 따라야 했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부정해왔던 ‘폭력의 효용’을 배우게 된다. 군대에서 사람을 다루고 일을 시키려면 물리적인 통제를 해야 된다고. 또 앞으로 자대에 가서 후임 병을 받을 때도 조교가 했던 방법을 써먹어야 하겠다는 변태적인 발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훈련소에서 조교들의 물리적인 통제가 없어도 5주간의 시간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유익한 시간이 된다면, 조교의 호루라기 소리 없이도 잘 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훈련소의 근본 목적은 군 생활에 필요한 체력단련과 실무능력 교육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군 훈련소는 과거처럼 ‘외적 군기’를 잡는 곳으로 역할하고 있다. 개인적인 욕구는 온 데 간 데없이 사라지고 비생산적인 구타와 기합, 욕설 등이 난무한다. 또 이것을 훈련병들이 따라 배운다. 훈련소는 '군대 폭력문화의 학습소'였다.

앞으로 훈련소는 자대입대를 앞둔 병사들의 신나는 체력단련소, 유익한 자격증 학원이 되어야 한다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기초적인 군사능력 함양과 함께,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무능력 교육에 있어 자격증을 수여하는 방안을 마련해 보자. 그러면 폭력적인 통제가 불필요해지고, 폭력의 효용 역시 배우지 않게 된다.

이젠 ‘각’을 잡겠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을 맨땅에 굴리게 하지 말자. 훈련소에 퍼진 병사들의 이기적 바이러스가 참여를 유도하는 건전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기적 바이러스 #3] 군대 가서 돈 벌고 싶어요!

내 전역증 사진. 군대를 제대하면서 알찬 자기개발의 성과를 얻고 나올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군 생활의 동력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전역증 사진. 군대를 제대하면서 알찬 자기개발의 성과를 얻고 나올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군 생활의 동력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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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 받자마자, 군생활의 실질적 목표는 '제대‘가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무의미했다. 내가 더 열심히 근무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제대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구체적인 동력이 없는 군 생활은 퇴행적인 폭력문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선임병이 혹은 간부가 후임병을 구타하거나 욕설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품행불량을 개선하겠다는 이유도 있지만, ‘자대 운영’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군 생활에서 사병들을 움직이는 수단은 폭력의 사용 혹은 이로 인한 공포감 조성이다. 나는 헌병보직을 맡아 매일같이 야간 초병근무를 서야 했다. 잠이 부족했지만 참아야 했다. 또 근무가 없는 시간에는 군 공사장 강제사역에 동원되었다.

그래도 불만 없이 일해야 했다. 선임병의 ‘폭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병들의 ‘이기적 바이러스’를 군대운영의 동력으로 사용해 보자. 국방의 의무, 극기심 함양 등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말로 더 이상 설득하지 말자. 군 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폭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사회에 나가 써먹을 있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병영문화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주먹’으로 강요하지 말자.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아날로그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사병들의 이기심을 자극해보자.

폭력이 필요 없는 군대... 개인의 이기심은 ‘미덕’이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자본축적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은 미시적 관점에서 ‘악덕’일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볼 땐, 경제적 생산성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군대 역시 지금까지 사병 개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조직에 해가 되는 ‘악덕’으로 간주해왔다. 또 조직운영의 동력을 중앙 집중적인 폭력문화에서 찾으려고 했다.

개인의 이기적 욕구는 군대란 조직을 발전시키지 못할까. 물론 나태나 회피, 반항 등의 비생산적인 욕구는 분명 ‘악덕’이다. 또 군대라는 조직 특정상 어느 정도의 통제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개인의 긍정적인 이기심은 신선하고 건전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또 이를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발전적인 방향이 될 것이다.

나는 군대 운영원리가 더욱 ‘자본주의적’이기를 요구한다.

사병 개개인의 이기적 욕구에 충실하게, 또 이것을 조직의 발전 동력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나의 의사로 결정되는 군 입대, 건강한 체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소, 열심히 일한 만큼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울 수 있는 군대. 이 모든 것이 가능할 때 더 이상의 폭력은 동원되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적 유산처럼.

덧붙이는 글 | '의무경찰 구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모 기사 입니다



태그:#군대, #구타, #병영문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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