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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은 끝났지만 진보진영의 대선 참패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지난 5년간 크게 잘못했다'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분석을 시작으로 이념에 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쪽에서는 참여정부가 실용적이어서, 다른 쪽에서는 실용적이지 않아서 참패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대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는 유창선 위원의 주장이나 바닥에서 새로 시작하자는 오연호 대표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정치가 완전한 정보가 공개되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가정하는 서양에서 수입된 정치학자의 분석과 진보언론의 분석이 어찌 그리 차이가 없는가. 구조적 분석이 결여된 시각은 진보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실용주의를 들고 나왔을 때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40%를 상회하는 최고조를 만끽했다. 따라서 정동영의 실용주의가 당을 망쳤다는 고태진님의 분석이나 진보진영이 신보수만큼 실용적이지 못해 실패했다는 유창선 위원의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진보진영의 실용주의에 점수를 준다면 참여정부는 훨씬 좋은 점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동반성장, 사회 투자 등 좌와 우를 아우르는 참여정부의 정책에 국민은 왜 그렇게 인색했는가.

 

일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4-5% 경제성장은 고성장에 해당한다. 20위 후반의 국가경쟁력을 11위로 올려놓았고, 역대 모든 정부가 확보한 유전과 가스의 양, 52억 배럴보다 2배가 넘는 107억 배럴을 확보한 정부, 과학기술에 투자해 과학기술 선진국을 만든 정부, 세계 1위 전자정부, 주가 500을 2000 이상 끌어올린 정부의 업적을 국민은 왜 인정하지 않는가.

 

홍헌호님은 참여정부가 시장친화적 실용주의하다가 망했다고 하는데 일부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택하지 않았다면 제2의 경제환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정부나 한나라당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조정하고 반값아파트를 들고 나올 수 있지만, 참여정부는 백화점 셔틀 하나 없애는 데에도 온갖 저항에 직면했다. 참여정부가 브레이크는 없이 과속만 했다는 홍헌호님의 주장은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향상된 국민복지를 놓고 토론해야 한다. 그 이상 잘하지 못한 것은 노 대통령이 세금 인상문제를 공론화하자고 했을 때 보수나 진보나 모두 외면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적이지 못해 지지자를 잃었다는 주장이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다. 우리 국민들이 언제 그렇게 진보적이었나. 국민들이 그렇게 진보적이라면 민노당이나 문국현 후보가 30-40% 정도의 득표를 해야 정상 아닌가.

 

결론적으로 동일한 정책으로 만족시키기 어려울 만큼 진보진영이 이념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것 외에 이념 그 자체는 대선참패와 무관해 보인다. 노무현정부가 추구한 정책의 이념이나 객관적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노무현정부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어 있는 구조적 모순이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다는 분석이 더 정확한 것 아닐까.

 

노무현은 신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정부도 없다. 개혁적이면 안정감이 부족하고, 서민적이면 품위가 떨어지고, 실용적이면 좌도 우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 정치다.

 

결국 정치도 심리고 경제도 심리다. 품위가 없는 노무현의 말은 지속적인 공격의 대상이었던 반면, 천박한 이명박의 말은 아무 문제가 없다. 노무현이 말까지 품위 있게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대다수 국민은 경제가 파탄 났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단 한 번도 주류세력이 교체된 적이 없다. 한줄 서기 사회였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주류에게 줄을 서는 일도 없지만 주류에 맞서는 소수자는 ‘빨갱이’라며 마녀사냥을 당했다. 그 용어가 요즘엔 ‘친노’로 변했을 뿐 주류세력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왕따를 당하거나 마녀사냥을 당하는 사람은 피해자가 그럴만한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공격을 합리화해 주기도 한다. 2차대전 때 유대인이나 중세의 마녀가 그랬다. 노무현은 마녀가 될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노무현이 주류의 미움을 받은 것은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고 언론의 특권에 저항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주류가 이루어 놓은 성공신화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주류 문화에 끊임없이 도전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거스름으로써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의 전술적 실패를 거론한다면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남녀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양성평등의식이 강한 여성은 살아남기 어렵다. 소위 잘난 여자는 주류문화에 맞섬으로써 마녀사냥을 당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여성이 여성에게 더 적대적이다.

 

서민이 진보적일 것이라는 가정이야말로 진보들의 가장 큰 착각이다. 미국에서도 진보는 중산층 엘리트의 전유물이다. 우리사회는 아직 공공 개념이 발전되지 못한 과도기라서 중산층마저 사익의 포로가 되어 진보세력이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자칭 진보가 30% 정도 되지만 이 중, 진보 칼럼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이념적 진보는 많아야 10-15%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진보세력이 두 번이나 정권을 잡았느냐고?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은 적은 없다. 민주세력과 민중세력을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민주화세력도 독자적인 힘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다. 김대중정부는 경제환란의 위기 속에서도 보수의 분열, DJP 지역연대로 집권했고, 대통령의 지지도로 보자면 임기 내 실패한 정권이었다. 경제환란을 극복한 직후 치른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에게 과반의석을 내주었다. 그나마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만큼 참패하지 않은 것은 지역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와 정치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탄생했다. 정치적 진보의 연대로 정권을 잡았지만 그것이 진보들이 주장하는 경제적 진보정권의 탄생은 아니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경제적 진보의 개념 조차 없다. 한 번도 경험한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다. 언론도 교수도 보수 일색인 나라에서 어떻게 국민들이 스스로 진보적이 되기를 바라는가. 진보진영은 국민들에게 진보적 이상과 패러다임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단지 노무현정권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 이번 대선은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고 그런 점에서 진보세력 전체가 보수세력에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진보진영이 대선에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민주진영의 비주류 멘탈리티(근성)에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비주류 근성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목적의식과 책임의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했고, 언론과 싸우는 것으로 비쳐지면서 국민들에게 영락없는 비주류 정치인으로 보였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뭘 위한 비판인지 목적의식도 없이 노무현정권을 공격함으로써 책임을 면하려 했다.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인, 학자들도 무책임한 비판만 해댔지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국민들은 지들끼리 찢고 까불며 책임을 전가하는 진보진영의 무책임성에 화가 난 것이다.

 

반면 보수는 목적의식이 투철했다는 점에서 주류다웠다. 정권을 잡기 위해 사이비 언론, 찌라시라는 비판도 달게 받으며 이명박후보 띄우기에 몰두했다. 참여정부에 경제파탄이라는 책임을 지운 결과 경제프레임으로 올 대선을 치르는데 성공했다. 정권탈환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손발을 맞춘 보수진영은 유능해보였다.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은 순진하게도 이들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보수정권의 탄생에 함께 기여하느라 참 수고 많았다. 그런데 선거 후 결과 분석에서도 진보언론이 주류의 분석틀을 그대로 따라 가니 앞으로도 진보정권이 탄생하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민주화투쟁을 할 때에는 비주류 멘탈리티가 도움이 된다. 공동의 적에 맞서 무조건 반대하는 일이야 무책임할 때 더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 창조적 대안이 없는 비판은 진보진영을 파괴할 뿐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서구의 진보와 달리 세력화하지 못했다. 진보의 아젠다가 걸린 일에서는 대통령과 정당,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까지 철저히 협력하는 서구의 주류 진보를 배우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배운 무조건 반대만 하는 비주류 근성을 떨치지 못한 때문이다.

 

올 대선은 보수진영이 오랫동안 철저히 준비해왔기에 얻은 승리이기도 하지만 진보진영의 분열과 세력화의 실패가 불러온 참담한 결과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민주화세력이 더 이상 편법으로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주류세력이 국민들을 열심히 교화하고 감시한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정치가 과거의 정상정치로 돌아간 것이다. 대선참패가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동안 참여정부 인사들은 권력에 몸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유린을 당하고 보수언론으로부터 핍박을 당했지만 진보진영으로부터도 똑같이 냉대를 당했다. 진보언론으로부터도 부당한 공격을 받았지만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진보진영의 분열로 비쳐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을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제 진보진영이 주류근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정권을 잡지 못해도 좋다는 각오로 가열찬 내부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화 비주류세력은 하루 빨리 해체되어야 한다. 각종의 진보들이 나와서 노선투쟁을 통해 공통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력을 키우고, 국민 속에 뿌리를 내린 주류 진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외부의 병원균을 박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의 면역을 강화하는 것이다. 병원균이 침입해도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진보의 체질개선과 세력화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가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성하고 변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진보진영의 주관적인 인상비평, 부당한 공격은 거의 자학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흑인과 여성이 차별받는 것은 그들이 못났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본인은 이 분석을 끝으로 정치논평의 장을 떠나려 한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데 공정한 심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노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참언모(참언론을 위한 모임)로 돌아가 참여정부를 공격함으로써 책임을 면피하려는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이 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보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을 할 생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지자들의 의식을 높여야 한다. 진보세력의 주류화는 오로지 진보의 의식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보언론과 지식인의 선구자적 역할이 진보정권의 탄생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조기숙의 마법에 걸린 나라'(cafe.naver.com/chomagic)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대선결과분석, #진보의 주류화, #노무현, #참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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