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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공중파 드라마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의존하는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끌기 힘들다. 하지만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다른 결과를 낳고는 한다. 남성들의 성적 요인은 드라마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들에게 흥밋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남성 동성애 커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드라마의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사극은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초기에 어떻게 순간적인 흥밋거리용 콘셉트를 통해 주목을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물론 전적으로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SBS 드라마 '왕과 나'의 이러한 콘셉트는 생식기가 없는 남자들이다.

 

남자의 외양적 정체성이라는 생식기를 잃었으니, 그의 성적 정체성은 어떠할까? 아니 그의 성적 행동은 어떠할까? 사고와 행동 전체의 변화도 궁금하게 만든다. 이는 남성들에게도 궁금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그동안 정면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소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내시라는 존재를 고상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장 여성이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제3의 크로스 섹슈얼리티를 표방하듯이,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는 신비감과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환관 혹은 내시야 말로 크로스 섹슈얼리티의 초기 원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철학적으로도 흥미를 자아 낼 수 있다. 내시는 여성도 아닌 남성도 아닌 제3의 존재다. 이러한 사이의 공간에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주체가 되며, 그들은 고뇌와 소외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주체가 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허락이 안 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드라마의 주인공인 환관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다만, 제3의 존재라는 점보다 내시라는 존재가 풍기는 성적 아우라는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생식기를 거세당한 남자라는 콘셉트는 성적 상상력을 어떤 형태로든 자극하기 마련이다. 다만 남성성을 완전히 잃는 그들의 모습은 눈여김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대중문화에서 내시 혹은 환관의 모습은 매우 여성스러운 모습을 지닌 캐릭터였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그러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여성스러운 환관이 아닌 남성성이 가미된 존재감은 현재의 크로스 섹슈얼리티의 유행 흐름에 맞아 보인다.

 

이러한 성적인 부분만이 '왕과 나'의 몰입요소는 아니다. 내시 양성소인 내자원과 내시부를 통해 조선시대 혹은 전근대 사회에서 핍박받은 것은 여성만이 아니라는 점을 사극을 통해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라 해도 다같은 여성이 아니듯이 아무리 남성 지배질서라고 해도 남성 사이에도 계급은 있기 마련이다. 가난해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미가 내자원에 은자 10냥을 받고 아들을 팔아넘기는 과정을 드라마가 부각시키려는 이유일 것이다.

 

거꾸로 내자원과 내시부는 성공과 부를 위한 마지막 탈출구가 되는 셈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대장금'에서 수랏간 궁녀를 통해 비쳐본 여성들의 삶과 비교해 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궁녀가 되는 여성에서부터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한 비상구로 달려가는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은 가능했다. '왕과 나'는 '대장금'의 남성 버전일 수도 있다.

 

남성 버전이라고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대장금'보다는 권력구도를 더 내세우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일수록 성공과 부는 권력과 밀접한 법이다. 내시는 권력과 떼어 놓을 수 없기에 드라마 '왕과 나'는 왕권과의 갈등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내시는 단지 하찮은 주변 장치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중심에 있었음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남성 시청자들도 흥미를 가질만한 구도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내시 혹은 환관에 대해서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한 점이 기대감을 갖게 한다. 권력과 성 그리고 욕망, 여기에 약자에 대한 정에 따른 감수성의 자극은 드라마 '왕과 나'에 주목 하게 만든다. 다만, 환관이나 내시부-왕권의 갈등을 통해 드라마가 우리가 지향해야할 어떠한 사회를 그려 보이려 하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또한 권력이 중심이라면 멜로라인으로 그것을 어떻게 감쇄시킬지도 지켜볼 일이다. 아무리 '대장금'의 남성 버전이라지만 '대장금'처럼 아시아의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지나친 기대감일 것이다. '대장금'의 음식과 의료를 통한 휴머니즘, 어머니의 한과 꿈을 기본으로 하는 절절한 감동의 가족애, 그리고 반권력적 요소들은 결핍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도 보낸 글입니다.


태그:#왕과 나, #환관, #팩션, #드라마 ,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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