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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군주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며, 국민이 스스로 지배하는 나라이다. 대통령은 군주가 아니다. 국민이 자신들의 주권을 부분 위임하여 국가를 운영하도록 선출한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국민을 대리할 뿐 스스로 지배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이 것이 민주공화국의 원리이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는다. 헌법과 법률이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룩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성장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불만이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 형평성과 분배가 수준이하라고 투덜거린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과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 너무 급진적인 개혁에 집착한다고 불편해한다. 모두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불만이다.

 

사실 적절한 수준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다. 집권자가 적절한 수준의 균형점을 정하고 그것을 모두 달성하더라도 양쪽에서 비판을 받게된다. 좌측깜박이를 켜고 우측으로 달리는 정권이라는 말은 양측에서 모두 비판받는 정권의 처지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라는 바가 다르고, 모두가 목표하는 지점이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충돌하여 절충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같은 사안을 놓고도 양쪽이 각기 반대되는 이유로 비판한다.

 

물론 그러한 상충되는 욕구들을 조정하고 완충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완충하기는 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확대 재생산하여 정치적 이득을 키우려한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우리정치의 현실이다. 특히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지역구도로 나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대립을 강화하고 잘 싸우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고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구도이다. 결국 문제는 국민의 지역주의적 지지행태의 탓으로 옮아간다.

 

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이 정치지도자에게 카리스마를 원한다. 대화하고 절충하며 룰에 의하여 이끌어가는 정치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시원하게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박정희가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상이 되는 것이다. 국민은 '나를 따르라'방식의 리더를 원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못하고 독재를 향수하고 있다. 사실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고 압제하는 방식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민주적인 방식은 매우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느껴지기가 십상이다.

 

요즘은 종종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력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원하던 우리사회의 개혁이 너무 더디다는 생각때문이다. 성과가 안나오는 절차적 정당성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권력기관을 활용해서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것을 노골적으로 원하는 경우도 있다. 연일 시끄럽게만 하고 결과적으로 이룩한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배어 나온다. 정권이 인기가 없어진 이유이고, 범여권의 후보군이 정권과의 차별화에 나선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후 권력기관을 스스로 놓아버린 일은 대단히 옳은 일이다. 검찰, 국정원, 경찰, 국세청등이 대통령의 수족노릇에서 벗어난 것은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의 잘못을 청산하는 것이다. 사실은 잘못된 것을 본래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특별히 잘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정권이 권력기관을 활용하여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에 비하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실 권력기관을 활용해서 통치하는 것은 대단히 매력있는 일이다. 검찰이 정권의 부정부패를 처벌하지 못하고, 정적들의 비위정보를 보고한다면 대통령에게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된다. 마음놓고 정치자금을 조성해서 정치인들을 관리하면 우호세력을 키울 수 있고, 정적들의 세를 위축시킬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의회가 수적 열세에 있다면 야당의원을 빼내올 수도 있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정치사찰의 결과를 보고하는 경우도 그렇다. 경찰이나 국세청의 경우도 활용할 생각만 한다면 대단히 위력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을 그러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역대정권이 불법행위를 밥먹듯 자행하여 익숙한 것일 뿐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당연히 권력기관은 독립적, 중립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해야 옳다. 국민이 묵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혁파해야할 독재시대의 잔재일 뿐이다. 결과가 옳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과정에서 그렇게 부당한 권력남용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권력기관을 독립시키고 나서는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구미에 맞는 수준으로 사회를 개혁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연히 성과가 높게 나타날 수 없다. 적절한 수단이 마땅치않기 때문이다. 합법적이고 제한적인 수단만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에는 매우 어렵다. 지지자들은 실망하고 이탈한다. 심지어 강력한 반대세력이 되기도 하였다.

 

우호세력이던 정치인들도 하나둘씩 떠난다. 정치자금도 주지 않으며, 공천권도 행사하지 않는 대통령을 추종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유착이 끊긴 권력기관들도 금단현상 때문인지 매우 비판적이다. 언론들도 처음부터 대립관계를 형성하며 연일 비판에 열을 올린다. 거마비와 촌지를 주고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우호적인 보도를 유도하던 과거 정권들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갈수록 힘도 떨어지고 우호적인 세력은 줄고 비판세력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혹자는 선개혁, 후 권력기관 독립의 수순을 밟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의도가 불순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개혁성과가 미흡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과정이 좀 옳지 않더라도 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권초기에 권력기관을 움켜쥐고 활용하기 시작하면 끝내 그것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설혹 그렇게 해서 개혁의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곧 무너질 사상누각이 된다. 권력남용에 의하여 만들어진 성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모두 방향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간절한 유혹을 뿌리치고 반드시 풀어버려야 국민의 감시속에서 천천히 개혁될 가능성이나마 남는다.

 

예를 들어보자.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던 시기에 권력기관을 동원하였다면 충분히 의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개혁입법의 경우도 권력기관이 동원되었다면 훨씬 결과는 좋았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해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며, 여당정치인들의 차별화도 시도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부동산 정책이나 경제정책도 충분히 권력기관과 언론등이 유착했다면 결과는 더 좋았을지 모른다. 권력기관을 마구 활용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지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언론이 있었다면 많은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기관을 대통령이 부당하게 활용하는 일은 타파되어야한다. 더디더라도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맞게 천천히 가는 것이 옳다. 국민이 원하는 만큼의 정치발전과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적 시스템을 억지로 넘어설 방법은 없다. 그것은 다만 독재자들의 방법일 뿐이다. 민주공화국은 불편해도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절차의 미학이다. 결과에 집착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해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개혁을 위한 권력기관 활용과 그것을 통한 독재를 바래선 안된다. 특히 민주화 운동세력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주장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것이며, 민주화 운동의 순수성까지 의심받을 일이다. 혹시 돌아볼 일이다. 독재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자 했던 마음이 진실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독재자를 축출하고 민주화운동 세력이 새로운 독재자가 되기를 바랬던 것인지...사람이 중심이었는지 시스템이 중심이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 인터넷 시민광장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권력기관독립, #민주공화국, #개혁독재, #성과지상주의 , #절차적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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