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턴> 포스터
ⓒ 아름다운영화사
올해 한국 공포영화에는 기존의 '원귀' 위주의 공포물과 달리, 의학용어에 기초한 '이색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이코패스'(검은집), '카데바'(해부학교실) 등이 대표적이다.

<해부학교실> <기담> 등과 함께 올해 또 하나의 병원 공포물로 평가받는 <리턴>은 '수술중 각성'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 미국에서 환자 백명중 한명꼴로 겪는다는 '수술중 각성'은, 환자가 수술도중 몸은 마취가 되어있지만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로 수술의 고통을 모두 느끼게 되는 이상체험을 뜻한다.

수술용 도구들이 온몸을 마구 헤집고 살과 뼈를 가르는 고통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문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독특하면서도 철저한 의학적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어린 시절 수술중 각성의 끔찍한 고통을 체험하며 정신이상에 빠졌던 소년이 성인으로 돌아와 잔혹한 연쇄살인극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리턴>은 엄밀히 말해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귀신이 출몰하고 메인 플롯보다는 각 시퀀스의 깜짝효과에 기대는 기존 공포영화에 비하여, 캐릭터의 구성과 이야기의 완급조절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소재주의 영화들의 강점은, 독특한 아이템으로 일단 관객의 시선을 끄는 반면, 단점은 소재 자체를 살리는 데만 치우쳐 주변부의 요소를 간과하거나,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은집>에서 '사이코패스'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차용하고도, 정작 공포효과만을 부각시키느라 사이코패스의 정체성을 단순히 사회에서 격리시켜 할 괴물로만 묘사한 반면, 왜 사이코패스가 괴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리턴>도 이런 약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영화의 핵심은 결국 '누가 25년 전 수술중 각성을 겪었던 소년인가'를 알아맞히는 전형적인 범인 찾기 게임이다. 주인공이자 범인인 '소년 시절의 나상우'에는 4명의 유력한 후보군이 있고, 이들은 저마다 '나상우일 것 같은' 심증이 있다. 영화는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이 네 남자의 캐릭터를 교차시키며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아쉬운 점은 '수술중 각성'이라는 잔혹한 체험이 어떻게 평범한 인간을 연쇄살인범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이 다소 빈약하다는 점이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반전 자체도 중요하지만, 반전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설득력있는 호흡으로 관객을 이야기에 집중시킬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스릴러 영화가 아직 장르적으로 취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면 배우들의 캐스팅일 것이다. <하얀거탑>에서 욕망에 일그러진 엘리트의 다중성을 누구보다 잘 소화했던 김명민을 비롯하여, 김태우, 정유석, 유준상 등 저마다 색깔있는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힘있게 이끌어간다. 이들이 모두 검증된 흥행배우라기보다는 출연작에서 안정된 연기력과 개성으로 생존해온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나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높여주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영화에서 힘있는 남자배우들의 연기력 위주로 이끌어가는 영화를 본 지도 오랜만이다. 병원을 무대로 한 작품답게 신체 상해 같은 잔인한 시각묘사도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이 영화가 주는 극적 긴장감은 '평범히 인간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의 잔혹한 심리묘사에 있다.

장면 전환에서도 철저한 클로즈업을 통한 네 배우의 디테일한 표정연기, 플래시백으로 바라보는 유년시절의 나상우,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범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행동 등이 너무 과도하거나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드라마의 알맞은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에 이어 연이어 몰아치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크게 늘어지는 부분이 없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만한 부분. 다만 개성있는 네 남자주인공의 개별적 캐릭터 묘사에 비하여, 각 인물들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얽혀드는 초반부의 묘사가 다소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2007-08-08 16:07 ⓒ 2007 OhmyNews
리턴 김명민 병원공포물 심리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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