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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닥터박갤러리 입구와 내부. 암적색 외부와 아트숍 내부. 옆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남한강이 인상적이다
ⓒ 김형순
정종미(50)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전이 경기도 양평 닥터박갤러리에서 개관기념기획전으로 8월5일까지 열린다. 2000년 이후 산수화를 현대화한 색면추상화 '몽유도원도', '어부사시사', '바람'과 인물화를 설치미술형식으로 그린 '종이부인', '미인도', '쉬(She)', '소녀', '여인' 등을 선보인다.

닥터박갤러리는 2006년 6월 개관한 양평 남한강변 복합문화공간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번 와본 사람은 꼭 다시 오게 하는 위력을 지닌 곳이다. 정종미 작품과도 품격이 너무 맞아 마치 그의 그림을 위한 갤러리 같다.

▲ '어부사시가(4면)' 한지, 천, 안료, 염료 139×169cm 2007(정면) '바람'(오른쪽). 작가는 오방색 그 이전의 보다 한국적인 색채를 찾고 있다. 정종미 작품과 갤러리 분위기가 잘 맞는다.
ⓒ 김형순
정종미는 창작의 근간을 전통적 한국미에서 찾는다. 그래서 아무나 갈 수 없고 누구도 가려하지 않는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었기에 그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누구보다 그는 우리전통의 색과 칠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공부했고 이를 그의 작업에 구체적으로 적용시켰다.

작가는 고궁이나 사찰의 벽 하나를 봐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거기서 동양적 세계관을 읽어내고 이를 근간으로 하는 선과 색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작가의 작품에 도입하고 반영한다. 이런 종류의 작가의 노고는 그의 이론서 <우리 그림의 색과 칠>(2001년)에도 고스란히 정리되어있다.

이번 기획전은 크게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나뉜다. 자연을 다룬 색면추상은 산수화를 세련된 현대화로 바꿔놓았다. 또한 인간을 다룬 인물화는 과거에서 현대까지 한국여성을 등장시킨다. 왜냐하면 작가에게 한국여성은 강한 생명력, 후덕한 포용력을 지닌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인의 감칠맛

▲ '女人' 한지, 천, 안료, 염료 180×90cm 2006. 한국여성의 관능미가 독창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 김형순
이번 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여인'을 먼저 살펴보자. 어깨도 과감하게 드러낸 이 작품은 전통미가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인 고리타분함은 찾아볼 수 없다. 고전미에 오히려 도발적 관능미를 더해 한국적 에로티시즘을 내뿜는다.

또한 살짝 발끝을 드러내 보인 화려한 꽃신의 무늬하며 치마의 소재로 보자기를 응용하여 색면추상 풍으로 알록달록 모자이크한 것은 그 누구도 엄두를 못 낼만큼 독창적이다.

거기다가 여인의 얼굴과 어깨와 팔이 자연스러운 처마의 곡선을 닮아 그지없이 아름답다. 머리모양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묶음과 이움이 조화를 이루어 율동감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래서 더 감칠맛 나고 그림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전통미의 현대적 해석

▲ '여인' 한지, 천, 안료, 염료 180×94cm 2005 한국여인의 숭고한 미를 읽을 수 있다
ⓒ 김형순
작가 아들이 엄마 그림을 보고 "엄마 그림은 박물관 그림 같다"라고 했다는데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면 정말 그렇다. 이는 작가는 그만큼 전통에 근거한 한국미에 심취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전통만을 고수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국내외에서 공부하며 깨달은 시대정신과 현대인의 정서와 감각도 함께 담은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제단에 쓰이는 영정 같다. 여성을 이런 경건한 분위기로 그린 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격하된 여성을 격상시켜 그것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오래 가려졌던 여성의 심지 깊고 풍요로운 정신적 면을 되살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보자기부인' 한지, 안료, 염료 180×90cm(왼쪽). '종이부인' 수제종이, 염료 180×70cm 2007. 과거나 현대나 여성적 품격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 김형순
위의 두 작품은 한국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 '보자기부인'은 바탕에 조각보를 바탕으로 오방색의 기묘한 분위기를 내고 그 위에 초록저고리 홍색치마 입은 여인을 등장시켜 안팎으로 신령한 느낌을 준다. 또한 가지런히 놓은 손과 발은 여인의 품격을 보여주며 그 내면까지도 일러준다는 점에서 두 그림은 다르지 않다.

오른쪽 그림 '종이부인'은 왼쪽 그림 '보자기부인'을 현대적 여인으로 환생시킨 것 같다. 본래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된 건 아니고 여기선 비교하기 좋게 붙였을 뿐이다. 시대가 바꿔도 한국여인의 격조 있는 인품은 변함이 없음을, 전통적 고전미를 현대적 한국의 여성미로 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려준다.

▲ '쉬(She)' 수제종이, 염료 90×60cm 2007 세련된 현대미 넘치는 한국여성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 김형순
'쉬(She)' 연작은 현대여성을 다양하게 그린 그림이다. 현대여성이 과거보단 조건이 많아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지나야 할 터널과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이러한 난국을 슬기롭게 헤치고 나오는 여성들에게 작가는 그림으로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는 작가자신의 자화상내지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 여인상일 수도 있다.

화가의 재료연구

작가는 "시인에게는 언어, 화가에게는 재료에 대한 지식이 기본"이라며 좋은 재료, 전통재료에 애착을 가진다. 고구려벽화와 고려불화의 채색연구에 깊이 파고드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수천 년 세월에도 변치 않는 벽화나 불화의 신비한 색채와 미묘하게 호응하고 교차하는 독특한 색감에서 옛것의 위력을 깨닫는다.

▲ '바람' 한지, 천, 안료, 염료 194×130cm 2006. 보자기무늬를 응용한 이런 풍경은 한국적 추상의 고아함을 맛보기에 안성맞춤이다
ⓒ 김형순
작가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온몸을 던져 작업을 해왔다. 마무리단계에서 쓰이는 콩즙을 직접 만들고 바르는 등 힘든 공정과정은 마치 조선시대 여인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자기의 몫을 다한 모습과 닮아있다.

현대적 색면추상 풍인 '바람' 같은 작품은 보자기무늬로 기하학적인 구성을 하고 거기에 펄럭이는 바람을 넣어 깃발이 흔들리면 마치 우주가 숨 쉬는 것 같다. 현대적 조형과 한국적 색감에 샤머니즘적 엑스터시를 뒤섞어 그림의 뒷맛은 시원하고 깔끔하다.

작가의 작업실사진을 보면 조선시대 여인의 체취와 숨결이 듬뿍 느껴진다. 거기엔 다듬잇돌과 홍두깨도 있다고 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별명이 '거북이'였다. 뭐 하나를 시작하면 꾸준히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란다. 그의 뚝심은 이제 나이 쉰에도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 '어부사시사' 한지, 안료, 염료 60×90cm 2006. 바다의 물결 속 물고기가 파동을 치는 것 같은 현대적 감각의 반추상화
ⓒ 김형순
지난해 작인 '어부사시사'는 물결 속 물고기가 파동을 치는 생동감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린 반추상화로 고전성과 현대성, 고유성과 보편성을 띤 수작이다. 그의 작품이 덜 알려져 있고 그의 진중한 화풍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일단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기 시작하면 국내외미술시장에서 더 많은 각광을 받을 가능성은 높다.

작가는 작업의 고된 과정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종이 위에 숨결을 담는 일, 인성을 부여하는 일 그리 쉬운 일 아니고… 수없이 올리고 닦고 지우고 훔쳐내고 그런 후에 다시 찢고 붙이고 뜯어내고, 그 과정에서 내 의도를 멀찍이 벗어난 것을 체념하고 용납하면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무너질 듯한 어깨, 손가락마디가 갈라지는 듯한 고된 노동 속에서 가끔 회의가 몰려온다."

그의 힘든 작업은 쉽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색과 칠에 대한 연구도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여성적 멋이 깃든 한국적인 미가 빛을 볼 날을 올 것을 믿어본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소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031)775-5600 www.drparkart.com
교통편: 청량리중앙선-양평역-양평시장이나 양평터미널-항금리행 버스-힐하우스 앞 
입장료: 6천원 월요일 휴관 전시시간: 오전11시~오후8시까지. 나머지 홈페이지 참고

[작가소개] 1957 대구 생 1980 서울대 미대 회화과 졸업 1984 동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1994-1995 뉴욕 School of Parsons in New York & Dieu Donne에서 수학
수상: 제13회 이중선미술상 수상 저서: <우리 그림의 색과 칠>(2001년, 학고재 간)


태그:#정종미, #어부사시사, #몽유도원도, #종이부인, #닥터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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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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