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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뻘겋게 타오르는 가마 속에는 지금 흙이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제대로 된 도자기가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인 게다.
ⓒ 송상호
삶의 의미를 중요시하는 예술가라면 자신의 인생철학을 '굵고 짧게'라고 멋있게 말할 법도 한데 도예가 양재석씨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가늘고 길게, 그리고 끈적끈적하게'라며 진솔하게 밝힌다. 어쩌면 참 멋대가리 없게 들릴 법도 하지만 그에겐 삶의 진실이 뚝뚝 묻어나는 이야기다.

그는 그렇게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못났든 잘났든 자신만의 '마이웨이(My way)'란 걸 그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다.

그의 수상한 인생 여정은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1998년 부산에서 해오던 일을 제쳐두고 3살짜리 딸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타향살이가 이제 10년째 들어서는 셈이다. 부산에서 함께 떠나왔던 3살짜리 딸이 초등학교 5학년, 안성에 와서 낳은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안성에 와서 남긴 것은 11번에 걸쳐 이사한 전적이다. 그러니까 타향살이 10년 동안 거의 평균 1년에 1회 정도 이사를 한 꼴이 된다.

그게 다가 아니다. '배고픈 예술가의 길', 그것은 그가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길이었다. 으레 그래야 되는 것도 아닌데 다른 길에 곁눈질하지 않고 가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는 그가 안성에 와서 부업으로 포장마차, 막노동, 반도체 공장 노무직, 학원 차량 운행 등의 험한 일을 마다 않고 해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깨엔 아내, 딸, 아들 등 3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에겐 자신의 삶이니 가는 길이지만,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은 부모 잘못 만난 거 말고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가난한 서민 가장들의 뼈아픈 진실이 그에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

▲ 불가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품을 다듬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 송상호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바로 '가마질'하는 날이다. 그릇을 가마에 구워내는 날인 게다. 오전부터 시작한 가마에 불 때기는 저녁 7시나 되어서야 마치니 참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는 구워내어야 한다지만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스 불가마로도 하나의 작품을 초벌 하고 불가마에서 구워내어 식히는 데 총 4일이나 걸린다. 구운 도자기를 가마 안에서 식혀 꺼내는 데만도 불을 끄고 난 후부터 약 하루가 걸린다니 참으로 긴 인내의 시간들이다. 아마도 장작 불가마였다면 10일은 족히 걸릴 거라는 그의 설명에 혀가 내둘렀다.

하여튼 8시간 이상을 달구어야 겨우 나온 지금의 온도는 1256도. 이 정도 온도로 흙을 구어 주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단다. 그렇게 고온으로 흙을 익혀주어야 비로소 습기가 침투하지 않아 도자기의 모습이 변형되지 않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포기 안 하는 게 아니라 포기를 못하는 거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나이에 다른 걸 하지 못하는 건, 이제까지 해오던 일이고, 자녀들과 아내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 함부로 전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도자기 예술가는 못 되는 거 같고요. 허허허허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가마 옆에서 뭔가 대단한 의미가 담긴 답변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안고 '그동안 이렇게 힘든 예술가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원동력이 뭐냐?'고 물은 나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 가마에 도자기를 거의 다 채워 넣었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가마에 불때는 게 더 재밌단다. 가마에 불땐 후 작품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설렘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단다.
ⓒ 송상호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꾸밀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맛은 바로 '순수함과 담백함'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미이다. 흙이 드러내주는 물성, 즉 흙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도 그렇다. 부산에서 예술계통 교직을 선택하여 그나마 안정적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그는 순수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여 상경했다. 어쩌면 그는 사서 고생하는데 선수인지도 모른다.

이런 그에게 지난해부터 경제적인 압박감이 목을 조여 온다. 그동안 어렵게 살아도 빚은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빚을 조금씩 지게 되었다는 것. 산 넘어 산이 따로 없다. 자녀와 아내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요즘 들어 더욱 커진다.

하지만 불가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자기를 굽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를 보면 왠지 모를 확신이 든다. 적어도 1250도는 넘어야 제대로 된 도자기가 나오듯 그의 인생도 지금은 불로 단련 받는 중이지만 단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훌륭한 도자기로 태어날 거라는 확신 말이다. 불로 단련 받을 때는 앞이 캄캄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서야, 아니 그런 시간을 보내야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듯 그의 인생도 지금은 불가마 속에서 1250도가 넘는 열기로 단련 받고 있는 중이라는 걸 말이다.

그의 꿈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주 소박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꿈을 꾸는 그는 예술인 보다는 생활인으로 남고 싶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의 진솔한 고백은 그의 묘비에 이렇게 쓰여 졌으면 하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

▲ 지금 불가마가 가리키는 온도는 1256도.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도자기가 나온다고. 마치 요즘 그의 삶을 나타내주는 듯 하다.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 매주 1회 '도예교실'이 열리는 작업장 성혜도방(문의 :010-3182-7172)은 경기 안성시 보개면 면사무소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인터뷰는 지난 29일 성혜도방에서 이루어졌다.


태그:#도예가, #양재석, #예술가, #도자기,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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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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