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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으로 이사 와서 벌써 십여 년 넘게 살았다. 때때로 그동안 변화한 대전의 모습 가운데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지하철이 생겼고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내가 번잡해지고, 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각종 문화시설이 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외양과 규모는 커졌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속 빈 강정'이 아닐까 싶은 회의감이 들 때도 없지 않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음반 가게의 퇴장이다.

내가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대전역 앞 지하상가를 비롯해 은행동 일대만 15군데가 넘던 음반 가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사라져 버렸다. 이런 현상은 3년 전, 대전에서 30년 동안이나 음반 도매업을 해오던 현대레코드가 폐업함으로써 절정에 다다랐다.

서점들도 그런 현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동국서림, 문경서적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서점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특히 2003년 5월에 있었던 대전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 중의 하나인 문경서적의 부도와 곧바로 이어진 폐점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문경서적 부도 원인으로는 구도심의 극심한 공동화 현상과 인터넷서점의 등장 등으로 말미암은 매출부진 때문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문경서적에 몸담고 일해오던 직원들이 폐점된 서점 앞에서 울먹이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라져 버린 것은 비단 새 책방만이 아니다. 중앙시장 근처 헌책방 골목에 늘어서 있던 헌책방들 역시 대부분 문을 닫고 몇 개 남지 않았다. 나이 든 세대에게 헌책방은 화장실만큼이나 익숙한 곳이다. 학기가 끝나면 쓰고 난 참고서를 팔고 새 참고서를 사러가곤 했다.

더러는 채 책방에서 제 효용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밀려난 책이 이곳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마터면 그냥 폐기물이 될 뻔한 책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갱생의 기회를 맞기도 한다. 팔리지 않아서 짐이 되는 책을 이곳으로 넘겨 새 책방 자금 순환에 숨통을 트이게도 하는 곳도 바로 헌책방이다.

대전에 처음 이사 와서는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책들을 보충하기 위해 부지런히 헌책방을 순례하곤 했다. 몇 번 다니다 보면 주인과 절로 안면을 트게 된다. 한가한 때엔 주인과 마주앉아 낮술을 마시는 때도 있었다. 새 책방은 주인과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쉽지 않지만 헌책방은 저절로 관계가 형성된다. 술을 마시며 얘기하다 보면 어느 책방은 어음 거래하고, 어느 책방은 현찰 거래한다는 사소한 얘기까지 다 듣게 된다.

하마터면 책 도둑이 될 뻔했던 시인

서점과 음반 가게의 퇴장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정겨운 삶의 풍경 가운데 하나를 상실해버린 아쉬움을 남겼다. 서점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있는 박철 시인의 시 '책방에서'를 읽노라면 마치 아름다운 성장기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이다.

밖은 추운 날이었다
말발굽처럼 굽어진 책방 안에서 한 아이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여주인은 엎드려 뭔 일을 하는지 둥그렇게 등짝만 보였다
아이가 얇은 재킷 안으로 책을 슬쩍 디밀다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책을 내려놓고 서둘러 책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얇은 옷 탓이었다 사내는 아이를 따라 문밖을 나섰다
하얗게 얼굴색이 변한 아이는 윗동네에 산다고 몸을 떨며 말했다
산동네는 더욱 바람이 세찰 것이다
바람 탓이었을 것이다
사내는 앞으로 네가 보고 싶은 책을 사주겠노라고
무책임하게 덜컥 약속을 했다
사내는 집으로 돌아와 궁리 끝에 S전자 회장 앞으로 편지를 썼다
보름 후 담당 여직원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회사로선 배려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직원 자신이 개인적으로 책값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넉넉지 않은 여직원은 결혼을 약속한 애인에게 의논을 하였다
역시 가난한 애인은 고민 끝에 책방을 하는 첫사랑에게 사연을 풀어놓았다
멀리 사는, 15년 만에 만난 첫사랑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책들은 매달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아이에게 전해졌다
모든 사랑이 손을 잡고 한마음이 되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아이와 책방 여주인이
몇 집 건너 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들 있었다
아이가 훗날 시인이 될 거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들 있었다

- 박철 시 '책방에서' 전문


ⓒ 창비
예전에 내가 알던 국문과 교수는 언제나 '굶는 과'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족은 가난을 앓는 종족이다. 때로는 자신이 처한 가난조차 즐겨 시의 소재로 삼는다. 우리나라 시인들 중에서도 함민복과 박철이 특히 그렇다. 두 살 연배인 박철 시인이 함민복 시인의 정신적인 형이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은 따스한 밥이 되네"(시 '긍정적인 밥' 일부)라고 노래하는 함민복 시인과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들고/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두 번이나 길을 나섰"(시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일부)지만 맥주 마시는데 쓰고 자스민 화분 사는데 씀으로써 결국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한 박철 시인. 두 사람 모두 넉살이 좋다는 점과 그 넉살이 밉지가 않다는 점이 매우 비슷하다.

그들은 주변부 사람들의 삶을 즐겨 보여준다. 엄살과 넉살 사이를 오가며 힘들다는 내색조차 없이 가난의 진경과 진수를 보여준다. 시인은 타인의 아픔을 대신 배설하는 자인가 아니면 "중생이 아프므로 나 역시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환생들인가.

박철 시인은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데 탁월한 솜씨가 있는 시인이다. 시 '책방에서'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 아마도 서울 시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작고 허름한 책방이리라.

책방 안에는 책장을 넘기던 아이와 사내와 '엎드려 뭔 일을 하는지 둥그렇게 등짝만 보'이는 여주인 등 세 사람이 있다. 책을 읽던 아이는 별안간 그 책을 갖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아이의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아이는 책을 훔치기로 맘먹고 얇은 재킷 안으로 책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 책방 안에 있던 한 사내와 눈이 마주치고 만다. 들켰다고 생각한 아이는 서둘러 책방을 빠져나가고 뒤따라 간 사내는 아이를 붙들고 얘기를 나눈다. 겁먹어 몸을 떨면서 아이는 윗동네에 산다고 말했다. 사내는 "앞으로 네가 보고 싶은 책은 다 사주겠다"고 덜컥 약속을 해 버리고 만다.

도무지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S전자 여직원→결혼을 약속한 애인→책방을 경영하는 S전자 여직원 애인의 첫사랑이라는 3번의 단계를 거친 끝에 매달 아이에게 책이 전달됨으로써 그 약속은 결국 실현된다. "모든 사랑이 손을 잡고 한마음이 되어 피어"오른 사랑의 결실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당사자는 아이와 책방 여주인이다. 그들은 몇 집 건너 사는 이웃이기도 하다. 그러나 둘은 정작 서로 이런 아름다운 인연의 끈으로 묶인 줄 모르고 있다. 책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이 아이는 먼 훗날 시인이 됐다. 그가 바로 박철 시인이다. 박철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험준한 사랑>에 실려 있는 시 '책방에서'는 마치 한 편의 동화 같다.

지금과 달리 예전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됐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 말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이른 말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헌 책 속에는 뭔가 색다른 향기가 있다

▲ 한때 제법 큰 헌책방을 운영했던 그가 길거리에서 책을 팔고 있다.
ⓒ 안병기
박철 시인의 시 '책방에서'가 자전적 내용을 담은 시라면 이정록 시인의 시 '헌책방 털보씨'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얻어진 시이다.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라는 이정록의 처녀시집을 상재한 이래 이정록 시인은 일관되게 관찰이라는 열쇠로 사물의 빗장을 열고 들어가서 사물을 들여다 보는 시 세계를 지향해 왔다. 그는 사물을 통해서 삶을 성찰하되 결코 오래 서성거리거나 머물지 않는다. 사물이 가진 의미를 날카로운 직관에 의존해서 곧장 파악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칼을 쓰지 않는 조각가다.
표지가 떨어지고 모서리가 마모되었어도 까만 글자 아직
눈 떠 있다. 헌책방의 헌 책 속에는 눈뜬 사람에게만 보이
는 향기가 있다.

정가표를 본다. 오래된 가격표에서 쑥냄새가 나고 해당화
같은 검인(檢印)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세상은 늘 새것처럼 정가
표가 붙어 있어 고해(苦海)의 목선에서 그가, 굳은살 두툼한 손사
래를 보낸다.
구석에서는 그의 아내가 겸업으로 옷을 수선한다. 크거나
작기 때문에 맡긴 옷, 구멍났기 때문에 맡긴 옷, 크거나 작
은 옷에서는 '크거나 작은'을 없애고 구멍난 옷에서는 '구멍'
을 없앤다. 크기도 작지도, 구멍나지도 않은 여자와 그는 행
복하게 산다.
긴 수염이 새로 나온 수염 끝에 매달려 책먼지를 쓰다듬는,
누가 봐도 그의 얼굴은 헌 책처럼 생겼다. 그리하여 그를 보
면 이삭 같은 농부와 통일 같은 병사, 그리고 백성 같은 대통
령을 꿈꾸게 된다.
그가 낡은 소파에 앉아 신문 뒤에 상반신을 감추고 있다. 불
편한 기사가 있는 듯 신문이 떨린다. 잠시 후, 재봉틀 소리가
그의 다리를 지나 너절한 골목길을 박아댄다.
헌책방을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찾아오면 그는 눈
시울이 젖는다. 그의 눈망울을 타고 걸어나오는 오래 된 글자들
이 나란히 순대골목에 앉는다.

표지에 떨어지고 모서리가 마모된 사람들이 그 골목을 중심으
로 살아간다. 누더기가 된 세상에서 쉽게 비바람 몰아친다. 몰
아치는 누더기 비바람을 제일 먼저 맞아야 하는 낡은 널판지나
종이박스도 헌 책처럼 황인종이다. 이곳에 오면 대문을 지키는
연탄재도 연탄재 구멍을 맴돌다 나온 바람마저도 털보가 된다.

- 이정록의 시 '헌책방 털보氏'


ⓒ 문학동네
시의 배경이 되는 곳은 헌 책처럼 '표지에 떨어지고 모서리가 마모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골목이다. '누더기가 된 세상에서 쉽게 비바람 몰아'치는 곳이다. 털보씨는 그 골목에 자리 잡은 헌책방 주인이다. '크기도 작지도, 구멍나지도 않은' 여자인 그의 아내는 책방 한쪽 구석에서 옷 수선을 하고 있다. 서점 전용 가게가 아니라 부부 공동으로 운영하는 누추한 가게이다.

털보씨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인지 시인이 가진 인식의 일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의 첫 연은 서둘러 "헌책방의 헌 책 속에는 눈뜬 사람에게만 보이는 향기가 있다"라고 규정한다. 헌책 속에 있는 향기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헌 책을 사게 되면 그 안엔 별스런 낙서가 들어 있다. 선물 준 사람의 이름은 물론 무엇을 기념해서 주었는지까지도 적혀 있다. 헌 책 속에 스며 있는 '향기'란 책의 전 소유자가 남긴 이런저런 자취를 말하는 것일까. 때로 우연히 구입한 헌 책 속에는 지금은 유명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된 사람들의 서명이 든 책을 만나는 수도 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면 털보씨는 낡은 소파에 앉아 신문 기사를 읽기도 하고 조각가처럼 "표지가 떨어지고 모서리가 마모"된 책을 손보기도 한다. 어쩌다 헌책방을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찾아오기라도 하면 그들과 함께 "순대골목에 앉"아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의 일상은 평화롭기 짝이 없다. 그는 "늘 새것처럼 정가표가 붙어 있"는 세상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이곳을 지킬 뿐이다. 이곳에 오면 "대문을 지키는 연탄재도 연탄재 구멍을 맴돌다 나온 바람마저도" 모두 털보씨가 된다. 자기식으로 사물을 동화시키는 털보씨의 능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정록 시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과 무생물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버리기 쉬운 풍경 속에서 우리 삶에 도사린 모순과 맹점을 짚어내는데 소질이 있는 시인이다. 절대 대상을 향해 빈정거리거나 야유를 보내거나 비비 꼬지 않는다. 시인은 그저 자신의 품 안에서 사물과 풍경을 따뜻하게 품어줄 뿐이며 우리는 그가 쓴 시를 읽으며 우리의 무심한 지나침을 반성한다.

삶에서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속도 경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예전엔 서서히 낡아가는 것들이 요새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낡아져 버린다. 그걸 라이프 사이클이라고 한다던가.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날로그 시대라면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도 요즘은 퇴장을 요구받는다. 낡은 사람들의 경험은 재활용을 거부당한 채 곧장 쓰레기 처리장으로 직행하고 만다.

며칠 전, 집 앞 길거리를 지나다가 누군가가 길가에 책을 펴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냥 스쳐 지나려다 눈여겨보니 아는 얼굴이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대전역 근처에서 꽤 큰 헌 책방을 운영하던 분이다. 30년 가까이 계속해오던 가게를 집어치우면서 그는 꽤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을 기억한다. 뭔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더니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거대자본에 밟히고 세월에 떠밀려서 헌 책방이나 선술집 같은 정다운 풍경들이 자꾸만 사라져 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낡은 것에도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새것 중에도 취해야 할 것이 있고 아무리 새것이지만 가벼이 취해선 안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버려야 할 것은 간직하고 고이 간직해야 할 것은 도리어 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며 사는 것은 아닐까.

'헌책방 털보氏'가 없는 세상은 지저분하지 않고 말끔해서 상쾌한 기분일까. 정(情)이란 어디까지나 시간의 산물이다. 우린 너무 빨리 새것에 취해버림으로써 정이 깡마른 세상을 자초하며 삭막한 날들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태그:#박철, #이정록, #헌책방,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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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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