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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6월 9일)는 국립부여박물관을 다녀왔다. 해마다 충남 부여에 다녀오지만 박물관에 들른 것은 거의 10년 만의 일이다.

박물관을 둘러본다는 것은 내겐 버거운 일이다. 박물관 안에 전시된 그 많은 유물을 한꺼번에, 그것도 단 몇 시간에 둘러본다는 일이 도무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건성건성' 쳐다보고 '대충대충' 훑고 지나가는 행위 속에서 감흥을 느끼기는커녕 머릿속에 사소한 지식조차 담아두기 어렵다.

더구나 난 철저히 계산되고 계획된 공간이 질색이다. 본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은 유물이란 제아무리 꾸며놓아도 어색한 면을 감추지 못하는 법이 아니던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박물관에 가게 되면 야외 전시장에 있는 유물들에 더 마음이 끌린다. 문화재 격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는 일이다. 내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그밖의' 것들이 좋다. '기타 등등'의 것들이 좋다.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한 주변부 인생의 동병상련이라 해도 상관없다.

국립부여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많은 주춧돌, 석조, 석탑, 석탑 등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 비석받침.
ⓒ 안병기
부여 성주사 터에 있던 거북 모양의 비석받침이다. 귀부와 머리와 몸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남아있는 부분의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 비머리(이수).
ⓒ 안병기
비석의 머리로 보통 이무기가 조각돼 있어 이수라고 한다. 용들이 얽혀있는 모양이 매우 사실적이다. 동그란 부분은 탑비의 명칭을 새겨넣는 제액 부분이다.

▲ 연꽃무늬 석등받침.
ⓒ 안병기
부여 석목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8∼10세기)의 연꽃무늬 석등받침이다. 화사석은 없어졌지만 석등받침은 우아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가 고향인 문인석.(16~18c).
ⓒ 안병기
박물관 정문 왼쪽 언덕 위에는 비각이 하나 있다. 그 안에는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을 기리기 위한 기공비가 서 있다.

기공비는 역사의 치욕을 상기시키지만 비문 내용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 명이 당나라로 압송되었던 사실과 부흥운동의 중요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는 유물이다.

이 2기의 문인석은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당유인원기공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기공비 옆에 조아리듯 서 있는 문인석은 마치 삼전도의 치욕을 연상케 한다.

▲ 천왕사 터로 전해지던 자리에 있던 여래입상.
ⓒ 안병기
부여 금성산 중턱에서 불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여래좌상.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밋밋한 일직선의 몸매를 지녔다.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 지역에서 유행하던 불상으로 보인다.

▲ 동남리석탑.
ⓒ 안병기
석목리 논절부락의 고려시대 옛 절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2층 기단에 5층 몸돌을 한 석탑이다. 소박하고 서투른 솜씨지만 고려시대 후기 당시의 석탑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양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석탑.
ⓒ 안병기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는데 2층부터 크게 작아진 몸돌들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보주 등 탑의 상륜부는 유실되어 새로 만들어 올린 것이다.

▲ 부여 구교리 석조불좌상.
ⓒ 안병기
부여군 구교리 석불좌상은 박물관 정문 옆 따로 조성된 동산에 초석, 비석받침 등과 함께 있다.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렸으며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하고 올려놓고 있다.

▲ 석조관음보살좌상.
ⓒ 안병기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다.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렸으며, 왼손 바닥을 편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조잡하긴 하지만 국보 제124호 한송사 석조보살좌상과 매우 흡사한 생김새다. 당진에서 출토되었으며 11세기 석불로 추정되고 있다.

▲ 동자석.
ⓒ 안병기
부여박물관에 있는 2기의 동자석 중 한 기. 키 작은 동자석의 얼굴은 특이하다. 동자석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순진무구한 표정만 보면 분명 어린아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화롭고 고요한 얼굴 표정은 분명 어린아이의 얼굴을 여윈 어른의 것이다. 그러므로 저 동자상은 어른의 친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유독 동자석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다.

한 공간에 섞여 동류항으로 묶이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나와 예외가 된 야외전시장 유물들. 그것들에는 마치 사람처럼 수많은 우여곡절과 유전을 겪으면서 간직한 나름대로 무늬가 있다. 그 무늬는 아침 햇살과 석양 그리고 정오의 햇살 아래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조용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이 석조물들이 석양에 젖어드는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게 되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그:#국립부여박물관, #충남 부여, #야외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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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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