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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기계 없는 농업. 카라바오(필리핀 일소)가 밭을 정지하고 있는 모습.
ⓒ 윤병두
"앤드리(Andry)씨! 왜 이렇게 힘든 유기농업을 고집합니까?"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먹을거리인데 이것마저 위협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는 자연농업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

필리핀의 최남단 민다나오 섬, 다바오시 근교의 헬렌농장에서 만난 앤드리씨의 말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산 아포산(2956m)을 간직한 섬나라 민다나오. 우리나라 제주도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섬은 우리나라 남한 만큼이나 되는 큰 섬이다.

태풍의 진원지를 벗어난 지역이라 재해가 없고 화산지대 물 빠짐이 좋은 비옥한 땅으로 필리핀 식량의 40%를 생산하는 보물섬이다. 인구는 1800만 명 수준인데 오랜 세월 이 섬으로 이주해온 27개 부족이 어우러져 살다보니 갈등과 분쟁도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 유기농채소가 깨끗하게 자라고 있는 재배포장
ⓒ 윤병두
@BRI@농업이 주산업이며 열대과일을 재배하는 대규모 과수농장이 아포산을 끼고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해발 500m 위치에 자리 잡은 헬렌농장도 37ha나 되는 과수원과 양돈과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이다.

다바오를 말하라면 과일천국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에겐 너무도 생소한 과일, 두리안, 마랑, 작 프루트, 포멜로, 망고스틴, 만다린, 파파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열대과일이 이 농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부분 자연농업에 의존한다. 농장에 필요한 퇴비는 돼지 600여 두를 사육하면서 생산되는 톱밥을 이용한 퇴비와 야자열매 껍데기를 부식시켜 만든 유기질 비료를 사용한다.

▲ 열대과일 작푸르트가 익어가고
ⓒ 윤병두
▲ 음식 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바나나 품종
ⓒ 윤병두
유기농 채소는 1ha 정도 재배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채소와 과일은 다바오 시내 대형 슈퍼마켓에 납품이 된다. 토마토, 양상추, 몽빈, 고추, 멜론, 오이, 양배추, 셀러리 등 수십 종이 재배되고 있었으며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수량이나 품질이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

앤드리씨는 축산과 마케팅을 전담하고 유기농채소는 주로 부인이 맡아 재배한다. 농장에 종업원은 17명이나 되지만 농기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밭갈이만 이곳 카라바오(물 들소)를 이용하고, 그외 작업은 인력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왜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마땅한 농기계가 없다고 말한다. 유기농은 이곳 주민의 고용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앤드리 부인은 덧붙인다.

▲ 노란비닐에 식용유를 발라 해충을 달라붙게하는 방제법
ⓒ 윤병두
▲ 야자나무 열매(코코넛) 부산물을 썩여 퇴비로 사용
ⓒ 윤병두
유기농 채소밭에는 플라스틱 물병에 디젤유를 담아놓아 해충이 날아오지 않게 하고 있었다. 노란색 비닐에 식용유를 발라 해충을 잡는 끈끈이로 활용한다. 왜 노란비닐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곤충은 노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농막에서 만난 종업원이 화분에 식물을 심고 있어 물어보니 레몬그라스라고 말한다. 냄새를 맡아보니 허브처럼 진한 향기가 났다. 바로 이 풀을 채소 중간 중간에 심어 냄새를 싫어하는 해충이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 흔한 비닐 멀칭도 마다하고 모두 짚이나 야자 부산물로 덮어 잡초를 방제하고 있었다.

▲ 나비가 자유롭게 번식할 수있는 환경이 바로 유기농업
ⓒ 윤병두
유기농으로 생산된 농산물의 가격과 수익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려 했다. "나는 유기농으로 큰 소득을 바라지 않아요. 유기농 채소는 일반채소보다 가격은 20% 더 비싸지만 수익은 오히려 적어요. 유기농의 가치를 널리 알려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그의 말속에서 진솔함이 묻어 나왔다.

연간 6천만 원 정도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비교적 대규모 기업농에 해당된다. 앤드리씨는 한국에도 유기농과 관련해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NGO 단체에도 가입하여 후원과 사회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하던 날도 현장학습을 위해 찾아온 40여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유기농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 인류건강을 위해 자연농업을 강조하는 앤드리씨
ⓒ 윤병두
농장취재를 마치면서 나는 유기농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묻어나오는 농심과 철저한 직업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앤드리씨처럼 직업의식이 투철한 영농 종사자가 많은 나라,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 농산물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체울 수 있는 그날, 그리고 국민건강과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업인이 우대받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보면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아포산 자락을 내려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아포산 자락에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헬렌농장을 방문하여 그곳의 유기농업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태그:#유기농업, #민다나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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