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록키 발보아> 한 장면.
ⓒ 20세기 폭스
록키 시리즈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람보에서 나온 록키 정말 멋지지 않냐" 곧장 이어지는 일장열변. "람보에 나온 배우는 원래 권투선수였어. 록키라는 배우인데 꽤나 권투를 잘해서 영화까지 찍었지"라고 나는 그 친구에게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록키'는 영화 이름이고 그 배우는 실베스타 스텔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우라고. <록키>가 그의 첫 영화라고 말이다. 그런데 도통 그 친구에게는 이 설명이 통하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인정할 수 없었는지, 그 후에도 그 친구에게 실베스타 스텔론이란 이름을 가진 배우는 없었다. 록키만이 존재했다.

어찌 그 친구뿐이었으랴. 그 당시 록키와 실베스타 스텔론을 동일 인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적잖게 많았다. 그만큼 록키와 실베스타 스텔론은 너무도 흡사했다. 록키 1편의 성공신화는 곧 실베스타 스텔론의 성공신화였다. 그래서였을까.

록키 후속편의 성공, 실패는 실베스타 스텔론의 흥망성쇠와도 연을 같이 했다. 2편, 3편이 나란히 흥행하고 4, 5편이 참혹한 패배를 맞본 흔적들은 그대로 동시간대에 출연한 다른 영화들의 흥행 성적과 함께 했다.

최근작에 속하는 <스파이키드 3>, <택시3>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는 조금씩 잊혀진 영웅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매달린 고깃덩어리를 때리고 철봉에 매달리며, 필라델피아 계단을 줄기차게 오르내린다. 그 유명한 <록키>의 사운드 트랙은 여전히 훈련 장면에서 빛나고,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오르는 그의 마지막 컷도 여전하다.

예순살의 록키는 더 이상 링에 오를 필요도 권투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금은 번듯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이제 추억 속의 과거들을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소일거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성기 시절의 록키와 현재 챔피언 딕슨과의 가상 경기가 텔레비전에 중계되면서 록키에게 제의가 들어온다. 실제 경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록키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고 확실한 선택을 한다.

사실 모두가 비웃었다. 예순의 나이 실베스터 스텔론이 록키를 다시 만든다는 이야기에 말이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다. 록키가 권투시합을 하겠다는 말에 그의 코치와 아들은 모두 말려댄다. 록키(실베스터 스텔론)는 아들에게 말한다.

"성공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너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도 세상을 살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정말 치열하게 살아볼 의지가 있다면 넌 다른 사람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겁낼 필요 없어, 그건 네 모습이 아니잖아."

▲ <록키 발보아> 한 장면.
ⓒ 20세기 폭스
눈치가 빠르다면 이 말은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 록키의 재탄생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 사람들과, 록키(실베스타 스텔론) 자신에 대한 다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정된 훈련과 예정된 링, 그리고 예정된 승리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현란한 편집으로 각 라운드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마지막 권투 장면보다 더욱 값진 것은 영화 속 자기 성찰에 가까운 고백들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록키 발보아>에는 인생의 징검다리를 건너온 자만이 말 할 수 있는 자존적 성찰이 들어있다. 그래서 시합이 끝나고 채점 결과가 울려 퍼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사람들과 악수하게 되는 것이다.

노년의 배우는 그렇게 다시 자신과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내 생애, 록키의 생애는 자신이 하고 싶은, 그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영화가 아름다운 순간은 빼어난 구성과 치밀한 시나리오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영화를 만들었고 어떤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를 원하는, 그 진정성을 확인 할 수 있을 때에 그 영화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많은 노년의 히어로들이 돌아오는 올 해에 록키 발보아는 자신의 성찰의 시간으로 컴백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은 올해에 가장 기억할 만한 엔딩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몹 (www.mediamob.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2-23 14:0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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