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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유럽의 시간은 아메리카의 시간보다 유장하다. 아이들의 생체시계는 노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푸념하는 노인들의 말은 옳다.

더디게 흘러가는 노인의 생체시계가 외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노인들과 정반대로 느끼며, 따라서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고 느낀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상대적이다. 동일한 잣대로 측정하여 평균치로 환산되어 있지만, 그것은 공간과 지각주체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발생한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루었던 임상수 감독. 절대 권력자 살해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흘러갔던 한국 현대사 한 페이지를 무겁지 않게 그려낸 영화 <그때 그사람들>.

10·26에서 계절이 두 번 바뀐 시점에 발생한 5·18 광주항쟁과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오래된 정원>이 임상수의 신작이다.

그런데 <오래된 정원>에서 시간은 전작과 달리 20년 가까운 세월을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영화에서 시간은 현재까지 확장되어 나타난다. "진짜 멜로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한 감독이 시간의 확대를 오래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림 속의 사람들과 은결

@BRI@머리털이 모두 빠져 박박 밀어버린 여인의 머리. 휑한 눈과 푹 꺼진 눈두덩. 총기 없는 눈망울과 까만 눈두덩에서 읽히는 사신의 그림자. 창백한 낯빛과 오목하게 들어간 볼 살. 여윈 목덜미. 그런 여인 옆의 청년. 숱 많은 머리털과 짙은 눈썹. 긴장해 있지만 온화한 품성을 드러내는 눈. 하관이 빠져 미끈한 인상을 주는 얼굴. 젊은 날의 활력과 생동감.

그림 속 여인은 암과 싸우며 쓸쓸히 죽어간 한윤희(염정아). 윤희는 죽기 전에 자화상을 그렸고, 거기에 사랑한 남자 오현우(지진희)를 보탠 것이다.

오래전에 체포되어 수감된 현우. 윤희는 그의 얼굴마저 잊어버려 사진으로 남은 현우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남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림을 중년 사내가 처녀애한테 넘겨준다. 처녀 이름은 은결이며 열여덟 살이다.

은결은 그들의 유일한 혈육이고, 현우는 눈 내리는 거리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대면한다. 만 16년 8개월 만에 출소한 현우.

은결은 두 귀에 화려한 엠피쓰리를 꽂고, 최신유행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2006∼2007년 겨울에 잘나가는 부츠와 짧은 치마 차림이다. 얼굴화장은 물론이고 맵시 있게 눈 화장까지 한 은결의 걸음걸이는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넘쳐난다.

청년 시절에 투옥되어 중년 나이에 세상으로 나온 현우. 그의 머리에는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윤희의 그림 속에서 현우는 고등학생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여인 윤희와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춘 청년 현우. <오래된 정원>에서 관객은 이렇듯 엇갈리는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와 과거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불편한 불협화음이 영화의 주된 음조다.

오래된 정원 : 잃어버린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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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외딴집. 현우가 물속에서 자맥질하다가 야수 같은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그에게는 살아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그는 도청을 사수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곳을 빠져나온 죄의식에 끝없이 시달리고 있다.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의 시민군을 살육한 계엄군의 총칼을 피해 도망쳤다는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듬해 현우는 윤희와 소풍을 나간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두 사람이 앉아 있다. 봄이 한창이어서 초록의 물빛이 나무 곳곳에 가득하다. 하지만 현우 가슴 속은 컴컴한 굴속 같다. 도저히 걷히지 않는 울분과 불안과 시대에 대한 절망이 가슴 속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와 함께 보내는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에서도 현우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숨겨줘, 재워져, 먹여줘, 몸 줘. 근데 왜 가니?"

현우를 태운 버스가 빗속으로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윤희가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현우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광주항쟁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조작된 간첩단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정황 이외의 다른 정보는 없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현우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이유를 윤희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함께 했던 '갈뫼'는 일시적인 낙원일 뿐이다. 세상의 이치와 고통을 알아버린 현우는 윤희의 사랑과 개인적인 행복의 그늘에서 쉬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그에게 너무 강렬한 것이다. 1980년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내면풍경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그는 낙원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다. 뱀에게 지혜를 깨친 아담처럼.

남루하고 누추한 과거 : 극복되지 못한 80년 광주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과거는 누추하고 남루하다. 광주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게딱지처럼 허름한 집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달동네가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시위현장의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옷매무새와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와 트럭들까지 하나같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것은 영화의 공간배경과 인물들의 겉모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출소한 현우가 광주에 내려와 만나는 선후배들의 모습은 파탄 일보 직전의 인간군상으로 그려져 있다. 과도하게 과거에 사로잡혀 현실과 담벼락을 쌓은 채 살아가는 후배 건. 외도나 돈에 집착하여 후배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선배들. 혀 꼬부라진 그들이 추억도 잊은 채 불러대는 운동 가요는 늙고 병든 과부의 습관적인 넋두리처럼 값싸고 처량하다.

이것은 위장취업자 미경의 분신장면에서 두드러진다. 활달하고 씩씩했던 대학생 미경의 투쟁은 일화적인 장면으로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윤희가 사랑하는 후배 영작을 붙들어두기 위한 장치로써 분신자살이 다루어지고 있는 탓이다.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자신을 죽이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을 영화는 그 시대의 일상적인 풍광 하나로 그려낸다.

이런 까닭에 영화 <오래된 정원>은 우울하고 쓸쓸해 보인다. 감독의 시선에 포착된 오늘의 서울은 화려하고 은성하다. 다 잊어버려 과거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은결의 언행은 '쿨'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지난날의 어둡고 음습한 '80년대 광주터널'을 빨리 지나서 행복한 '지금'과 '여기'와 만나라고 우리를 재촉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과연 그런가!

<오래된 정원>이 멜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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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아름다운 남녀가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순리이자 인간의 정리이기도 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욕망과 정열의 도가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청춘남녀를 바라보는 일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인생의 통과의례로 반드시 겪지 않으면 아니 되는 필수과정이 바로 사랑의 시작과 끝일 터이므로.

하지만 <오래된 정원>을 멜로영화로 만든 감독의 의지는 생뚱맞다. 동족을 살해하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 무리를 끝끝내 용서할 수 없었던 현우. 사랑하는 벗과 선후배들을 사지로 보내고 괴로워했던 현우. 올곧은 신념과 의지 하나로 불의한 세상과 맞서려 했던 현우. 그런 인물을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이미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끌어안고 고뇌했던 지식인 청년과 아리따운 미술선생의 사랑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전란 중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그러나 광주항쟁은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근본적으로 변모시켰다. 사태의 진실도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정확한 사망자와 실종자조차 파악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인 사건인 것이다.

'진짜 멜로'를 만들고 싶었다면 영작과 윤희 관계를 발전시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실제로 영작은 선배인 윤희와 살면서 은결이를 함께 키우는 생각을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연하남과 연상녀의 결합은 오늘날 얼마나 잘 팔리는 상품인가. 더욱이 영작은 윤희 말처럼 선도투쟁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로 출세하여 무슨 선거엔가 출마한다고 하지 않는가!

짧은 마무리

영화 <오래된 정원>은 지나간 1980년대와 '건대투쟁'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돌아보도록 한다. 영화에서 흐르는 시간은 17년 정도지만, 실제로는 27년 정도로 보인다. 은결과 현우가 대면하는 장면은 분명 올겨울이므로. 이것은 현우가 석방되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과 사태의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감독은 치열하게 광주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비참하고도 철저한 몰락과 파멸을 보여준다. 이제는 잘나가는 변호사나 정치가로 출세한 386세대에 대한 신랄한 비난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현우가 더욱 불쌍하다. 사랑한 여인을 말 못할 마음으로 떠나와 0.7평 독방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고초를 겪어야 했던 현우가 참으로 불쌍한 것이다.

윤희는 또 어떤가. 미혼모가 되어 암과 싸우다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여인.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사랑하는 이를 추억해야 했던 현우와 윤희. 1980년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진짜' 멜로영화를 만들기에 <오래된 정원>은 너무나도 누추하고 참담하며 우울하다. 차라리 그들을 따로 떼어내서 다른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만나게 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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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오래된 정원 전남도청 임상수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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