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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숙
지난 토요일(24일),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가까운 후배의 남동생이 병으로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었던 금요일 늦은 오후, 밖에는 바람한점 없이 너무나 조용하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눈이 바닥에 쌓이고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어제와 다름없건만, 가슴이 무너질 듯 힘들어 할 후배를 생각하니 마음만 착잡했습니다.

병원 지하,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후배는 검은 상복을 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없다싶었는데 전북지역에 눈이 많이 와서 오는 길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후배는 누군가 업고 있던 아기를 건네 안았습니다. 살결이 뽀얗고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입니다. 뭔가 불편한지 아기는 자꾸 칭얼거렸습니다. 이제 8개월이 된 아기를 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부부에게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금슬이 좋아 둘이 살아도 좋지만 아기가 있다면 더 좋을 부부에게 어느 날, 태기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십여 년이 지난 다음에 듣는 임신소식은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주변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기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될 두 사람은 아기로 인해 새록새록 솟아나는 꿈을 꾸며 행복했습니다. 아이가 있는 단란한 가족풍경을 내심 부러워했는데, 이제 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동생 부부를 보는 누나는 더 흐뭇하였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뒤늦게 아이를 갖게 된 동생부부가 더 애틋해 보였습니다.

이제 동생도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서 자식 키우는 마음도 되어 보고, 부모 마음도 되어서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누나는 동생의 처를 볼 때마다 이제라도 아기가 있어준 게 고맙고 그저 대견했습니다. 똑 부러지는 살림솜씨하며, 하나밖에 없는 시누와의 관계도 이만하면 누구에게라도 내세울 만큼 서로 끔찍이 귀하게 여겼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임산부의 배가 봉긋해졌습니다. 배가 부를수록 걸음은 자꾸 뒤뚱거리지만 그 어떤 모습보다도 남편과 시누에게는 아름답고 눈부셨습니다. 눈으로만 보고 말없이 지나쳤던 아기용품을 고르는 것도 가슴 떨리는 설렘이었습니다.

후배의 남동생은 '암'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검사한번 해본다고 갔던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길면 6, 7개월이라고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인 것만 같았답니다. 동생은 100kg에 가까운 건장한 체구로, 어디하나 부실한데 없어 보이는 마흔의 장년입니다. 더구나 동생은, 이제 곧 아빠가 되는데 말입니다.

병원에서 들었던 '거짓말 같은 말'은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탱탱했던 살들은 자취 없이 빠져버리고 고통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건강한 사내아이였습니다. 후배는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안아들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일이 꿈만 같습니다.

흰 국화로 에워싼 영정속의 얼굴이 참으로 야속합니다. 하얀 여름옷을 입고 있는 망자의 선한 모습 아래 교회에서 오신 몇몇 분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마흔 살, 그 두 배를 살아도 될 나이에 아내와 돌도 안 된 아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찬송을 부르는 내내 후배와 그 옆에 아기엄마가 소리 없이 흐느꼈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 아무리 밝고 환해도 지금은 너무 이른 때였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후배의 올케는 후배만큼이나 작고 여립니다.

와야 될 사람들은 내리는 눈 때문에 조금 더 늦어질 거라고 눈 소식을 따라 수시로 연락이 옵니다. 아기가 엄마를 찾으며 다시 칭얼댑니다. 선잠을 깼는지 간간이 울기도 합니다. 하늘 길을 떠나는 아빠와 작별인사를 하는 것일까요. 검은 상복을 입은 엄마 품에서 칭얼대는 아기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울음이 장례식을 나오는 내내 귓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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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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