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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보이> 겉표지.
ⓒ 아트북스
요즘은 어른들이 읽는 그림책, 어른들이 읽는 동화책이 곧잘 나오는 듯하다. 이에 비해 아직도 어른들은 만화나 동화를 무시한다. 아이들이 보는 것으로 만화의 경우는 안 좋은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감수성도 좀 키울 겸 고정관념을 타파해보자! 사실 순수함을 절실하게 되찾아야 할 사람은 어른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소개해볼까 한다. 몽환적이면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 <워터보이>이다.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이완의 첫 단편집 <워터보이>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종이 감촉도 남다르다고 생각할 만큼 내용과 그림은 신선함 그 자체이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iwan'이라고 사인된 그림이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매료될 만한 신비로운 그림 덕택에 외국 작품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작가는 한국사람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아이완은 첫 걸음부터 자기 스타일로 그림 동화, 일러스트, 만화 등 장르를 뛰어넘어 예술성 높은 그림 작업을 보여준다. 지난 2000년 자신의 홈페이지(www.iwanroom.com)를 열어 작품을 올려왔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큼 인기를 누려왔다.

이젠 오프라인 상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는데, 2003년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에 초청되고 각종 전시회에 초대되는 등, 작품세계를 인정받기도 했다. 게다가 이젠 단행본으로 처녀작 <워터보이>가 나왔으니 그의 이름이 또 한번 널리 알려지는 순간이 될 듯싶다.

이 책은 속이 비치는 피부를 갖고 있는, 물에 반쯤 잠긴 습기 찬 방에 사는 '워터보이'가 '워터월드'로 떠나는 여행을 말 그대로 그렸다. 하늘빛 물로 채색된 그림이 첫 장부터 끝장까지 소복이 담겨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워터보이>는 '워터보이'라는 소년의 작은 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작은 방으로 찾아오는 손님과 워터보이가 겪는 일종의 여행 이야기이다.

워터보이가 사는 방은 작지만, 거대한 물과 함께 온 세상이 그 곁을 지나간다. 방을 지나치는 것들을 만나며 나름대로 인사하고 보살피기도 하지만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물 위를 떠다니던 의자 하나를 발견하고 방으로 가져온다. 놀랍게도 작은 의자 밑에서 소녀가 얼굴을 내밀고, 다시 소녀를 떠나보내려 할 때 소녀는 의자 밑으로 워터보이를 잡아끈다.

좁은 줄만 알았던 의자 밑으로 들어가자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넓은 사막이 펼쳐진다. 소녀와 함께 건조하고 넓은 사막을 돌아다니던 워터보이는 광활한 사막과 넓은 물이, 아주 다르지만 아주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건조한 사막의 바람과 모래 등을 몸으로 기억한 워터보이는 소녀와 인사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잎사귀에 소녀의 의자를 올려 띄워 보내고, 워터보이는 또다시 누군가 방 곁을 지나가길 기다린다.

이 책은 그림이 주이지만 글이 중심을 잡아주어 어린왕자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보고 읽는 가운데 그윽한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림과 글이 서로 부축하면서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이끄는 이 책은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각각의 이미지만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워터보이는 일종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여행을 하든, 누가 그의 몸 속에 들어가 여행을 하든 세계는 넓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의미를 부여해준다.

예를 들어 방으로 놀러온 물고기 한 마리에게 잊지 못할 기발한 선물을 주고 싶었던 워터보이는 물과 함께 물고기를 삼킨다.

몸 구석구석 여행을 시작하는 작은 물고기. 워터보이의 내면을 구경한 물고기는 미련없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넓은 물 세계로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물고기의 기억'으로 자리한다.

이렇듯 어떤 세계 속으로 여행은 곧 자신의 기억이 되고, 그 속에서 보고 느끼게 해주는 신비함이 숨어있다.

작가는 "나는, 제 나름의 세상에 살고 있을 법한 인물들에 대해 상상하길 좋아한다"고 말한다. '제 나름의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다르다. 상상 속에나 존재할 만한 세계와 인물들이다.

인간과 동식물을 조합한 듯한 인물들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간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멎을 듯한 놀라움과 이질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아이완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과 공간들 속을 여행하다보면, 그 이상한 세계로의 여행이 우리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환상적인 상상 속의 세상 이야기로 현실적인 세계와 인간의 모습을 더 정확히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워터보이 - 소년의 작은 방

아이완 글. 그림, 아트북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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