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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시작되는 숲 속엔 가랑비가 내린다. 숲에 비가 내릴 때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아무렴 그럴테지. 가다 만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8월과 9월의 가름에서 숲은 이제 한여름을 이 빗방울에 실려 떠나보내고플 게다. 그럴 게다.

여름 내 무성했던 숲은 이제 가을빛으로 서서히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 8월이 지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녹음은 이미 어제의 모습이 아니어서 많이 퇴색되고 바래어 간다.

ⓒ 고평열
9월까지는 그래도 섭하지 않을 만큼 버섯들이 얼굴을 내민다. 한여름을 사랑하는 버섯, 흰가시광대버섯도 아직 제 모습을 다 감추지는 않았다.

ⓒ 고평열
둥그스름하니 원을 그리며 피어나는 걸 균륜이라고 표현한다. 땅 속에서 균사체로 살아가는 이들은 잠시 번식을 위해 땅 위로 얼굴을 내밀 때를 제외하면 원을 그리며 생장을 계속하면서 수 년, 혹은 수십 년을 땅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다만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 잠시 버섯이란 이름으로 인간에게 보여지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지하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인간에게 알려오는 것이다.

ⓒ 고평열
한 계절이 가고 옴이, 한 해가 가고 옴이, 혹은 한 세대가 가고 옴이 다 그렇듯이 걷던 발걸음 멈추고 지나간 자리를 뒤돌아보면 결국 한 장에 그려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곡이 함축되어 담겨지는냐의 차이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씁쓸함.

ⓒ 고평열
흙 속에서 피워내는 생명치고는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이어서 행여 다칠세라 굳은 가시를 곧추 세웠을까?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나를 보고 알라'고 말하는 듯하다. 채 일주일을 더 살지 못하지만 흰가시광대버섯은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다.

ⓒ 고평열
며칠을 살거나, 수십 년을 살거나, 제 할 일을 다하면서 살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윤회의 한 고리를 잇는다는 생의 몫은 버섯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이 조물주가 만들어낸 삶의 기본틀에서 돌고 도는 것.

덧붙이는 글 | 고평열 기자는 제주환경운동연합 자연생태해설사이자, 제주문인협회 수필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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