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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마치 <스타워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우주전쟁>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제목에 따른 착시현상으로 손해를 볼 영화다. 우주선과 최첨단 무기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통쾌한 액션과 함께 영웅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SF영화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빙하기가 도래한 지구촌의 재난을 다룬 <투모로우>처럼 극한상황 속에 부성애를 강조한 '재난영화'에 가깝다. 다만 인류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 기상이변이나 천재지변이 아닌 외계인의 일방적인 침공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사전에 제목과 내용과의 괴리감을 인식하고 관람한다면 스필버그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 EㆍT >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기존 스필버그식의 SF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당황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스필버그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할리우드 SF영화에 대한 선입관 등이 배반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주전쟁>은 우리에게 낯선 스필버그의 영화로 다가올 듯하다.

영화는 특별한 드라마나 극적인 갈등구조가 없다. 인간이 자신들보다 지적 우위에 있는 외계 생물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21세기 초반. 외계인들은 지구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오만하게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을 응징하고자 일방적으로 침략한다.

뉴욕의 항만노동자인 레이(톰 크루즈 분)는 마침 이혼한 전처가 여행을 가며 부탁한 아들과 딸과 함께 있던 중 외계인들의 침공을 목격하고 쑥대밭이 된 뉴욕을 탈출한다. 레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아들 로이(저스틴 채트원 분)와 어린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 분)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한다는 내용이 영화 줄거리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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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은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대통령도 없고 특출난 전투기 조종사도 없다. <스타워즈> 같은 우주액션장면은 아예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화면에서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구조조차 보기 어렵다. 군대는 외계생물체가 오래 전 땅 속에 숨겨놓았던 '트라이포트' 앞에서 무력할 뿐이며 '트라이포트'는 가공할 위력으로 무참하게 살육전을 벌인다.

영화의 볼거리는 바로 '트라이포트'가 땅 밖으로 나오는 장면과 이들이 종횡무진 움직이며 뉴욕 주변을 아비규환으로 만드는 장면들이다. 가상의 미래세계가 아닌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트라이포트'라는 최첨단의 살육무기가 레이저광선을 쏘아대며 거대한 몸체를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SF장르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레이의 모습에서는 기존 SF영화의 주인공다운 특징을 발견할 수 없다. 레이는 이혼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무심한 아버지였을 뿐이다. 외계인과 맞서 싸우기 위해 군대에 자진 입대 하려는 아들 로이처럼 용감하지도 않고, 그나마 탈출에 도움이 되었던 자동차도 피난 가는 사람들에게 빼앗길 정도로 평범하며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연약한 캐릭터였다.

그러한 레이의 모습이 바로 <우주전쟁>을 찍은 스필버그의 의도였다. 그는 2005년 여름시즌 개봉한 자신의 신작 영화에 대해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생존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 엄청나게 큰 사건에 대항하는 인간 본성의 기본적인 요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00억원을 들인 대작 <우주전쟁>은 위와 같은 이유로 대작임과 동시에 작은 영화였다. 시각적인 스펙터클이 있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지구를 구하는 주인공의 영웅담은 없고 거대한 재앙에 직면한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담은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미국사회가 9·11 테러 이후 겪었던 공포감과 연관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 레이첼 역의 다코타 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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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화에서도 외계인들의 침공이 있은 뒤 피난을 가는 레이에게 딸 레이첼은 테러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또한 처음 외계인들의 침공을 목격한 뒤 집에 돌아와 온 몸에 가득 쌓인 회색먼지를 털어내는 레이의 모습은 9·11테러 당시 거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썼던 뉴욕시민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문제는 미국과 상황이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주전쟁>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이다. 게다가 원작인 H.G 웰즈의 <우주전쟁>이 아무리 SF소설의 고전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흥행의 마술사'라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와 다코타 패닝 등 할리우드 스타배우들이 포진해 있지만 미국 관객들에게 받을 박수만큼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의 관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스필버그의 모습은 평론가들로부터는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고 극장에서 오락적인 재미를 느끼려는 관객들은 그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고 관람하는 것이 속은 편할 듯하다. 영화의 내용이 결국 '우주전쟁'이라기보다 "아빠 힘내세요"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7월 7일 개봉. 12세 관람가

2005-07-07 11:1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7월 7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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