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의 포스터
ⓒ 토브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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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실제 존재했던 유명한 연쇄 살인범 에드 게인(ed gain)을 모델로 하고 있다. 1906년 8월 27일 미국 위스콘신의 라 로스에서 태어난 에드 게인은 기독교 광신도인 어머니에게서 모든 여자는 악이라는 세뇌를 받으며 억압적인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완벽하게 홀로 남겨진 에드 게인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날인 57년 11월 17일. 미국 위스콘신의 플레인 필드에 위치한 에드 게인의 농가에서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흔들 의자와 구두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는 여자의 생식기, 여성의 젖꼭지로 만들어진 벨트 그리고 사람의 신체 기관들이 발견되었다.

검찰에서 "여자가 되고 싶었다"고 주장한 에드 게인은 정신병으로 판정받고 무죄로 풀려나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85년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인 선’ 그 자체였으며, 유일무의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무덤 옆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단지 조용하고 소심한 이웃이었던 에드 게인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에드 게인의 등장은 FBI의 수사에 정신 분석학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독보적인 존재는 이미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 하게 많은 영화들에서도 인용되어 쓰여졌다.

 에드 게인의 실제 모습
ⓒ 에드 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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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블록은 에드 게인을 모델로 기념비적인 걸작 <사이코>를 집필하였고,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에드 게인의 유년시절을 사로잡았던 어머니에 대한 불우한 기억은 스티븐 킹의 <캐리>를 통해 명백하게 재현되었고, 이 역시 브라이언 드 팔마가 영화화했다.

토마스 해리스는 에드 게인을 추억하며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두명의 살인마를 모델링한다. 인육을 먹는 렉터 박사와 여자가 되고 싶어 여자의 가죽을 벗기는 버팔로 빌이 그것이다.

여타의 작품들이 에드 게인의 일면들을 조금씩 가져왔다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흡사 전기 영화로 보일 만큼 실제 사건의 모티브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영화는 5명의 젊은이들이 벤을 타고 텍사스를 횡단하다 중간에 태운 히치하이커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히치하이커의 기괴한 행동으로 크게 쇼크를 받은 젊은이들은 또 잠시 머물게 된 집에서 괴팍한 노인을 만나고, 이윽고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아들이 거대한 전기톱을 휘두르며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데….

74년 토브 후퍼에 의해 제작된 이 영화는, 단돈 14만 달러라는 상상 불허의 초 저예산으로 6주만에 제작되었다. 예산 부족으로 거의 수작업으로 진행된 제작 과정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은 동물의 뼈를 모으느라고 하루종일 땡볕에서 일하다가 탈진하였고, 후퍼 감독의 폭언과 폭설에 시달려야 했던 배우들은 "다음에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말로 고통에 찬 제작 당시를 회고했다.

 여타의 작품들이 에드 게인의 일면들을 조금씩 가져온 경우라면, <텍사스전기톱살인마> 는 흡사 전기 영화로 보일 만큼 실제 사건의 모티브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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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기법상의 임팩트나 컷의 분할없이, 관조적으로 밋밋하고 건조하게 촬영한(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예산이 부족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본 작품은 자연스레 다큐멘터리 필름 같은 뉘앙스를 지니게 되었다.

조악한 필름 해상도와 거친 촬영은 마치 90년대 후반의 <블레어위치>가 그러했듯이, 실제감을 강조하는 공포를 생성해냈다. 현실과 영화의 불안한 접점, 그 기괴한 균열 사이에서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에드게인을 떠올렸고, 결과적으로 대대적인 흥행과 이슈를 몰고 왔다.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무수히 많은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는 영화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은 반전, 반문화 운동이 전역을 휩쓸었고,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이 워싱턴을 공격하고 있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은 어떠한 명분이나 이유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 얼마나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캐릭터의 활용을 통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살인마 캐릭터인 '레더 페이스'(인간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의 끔찍한 외양과 일체의 감정없이 진행되는 비인간적인 신체훼손 행위들은 건조한 카메라 앵글과 더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폭력에 대한 불쾌감은 '레더 페이스'가 휘두르는 전기톱을 통해서 극대화되며, 이런 방식으로 후퍼 감독은 주위의 폭력에 무감각해져 있던 현대인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나선다.

 폭력에 대한 불쾌감은 '레더 페이스' 가 휘두르는 전기톱을 통해서 극대화되며, 이런 방식을 통해서 후퍼 감독은 주위의 폭력에 무감각해져 있던 현대인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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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폭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구세대의 의식과 관념에 대한 노골적 비판으로 교묘하게 오버랩된다. 여기서 우리는 남부 마초들의 전형을 비추어주는 가부장제하의 살인마 가족에서 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특이한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살인마 가족이 구세대의 기존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침입한 젊은이 무리들은 오래된 것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가치이자 반문화 운동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 살인마 가족과 젊은이들의 대립적 구도는 기존 가치의 전복이라는 탈 체제적 성향을 드러내는 설정이다.

작품내에서 살인마 가족의 의사결정자이자 구심체인 아버지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과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텍사스가 남부의 거대 도시로서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한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구세대의 가치를 거부하며 변혁을 주장하는 현실 비판적 영화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결국 살인마의 무차별적인 전기톱의 폭력에서 단 한 명의 젊은이만이 목숨을 건지고 그곳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한다. 지긋 지긋한 마초의 폭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이는 공교롭게도 여성이다.

오래된 가치의 무차별적 학대에서 간신히 그 존재를 유지한 여성은 그 자체로 변혁의 에너지와 희망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을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굶주린 가족은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들의 영역 혹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고 편협한 사회는 구세대의 기존 가치를 대변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침입한 젊은이 무리들은 오래된 것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가치이자 반문화 운동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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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레더 페이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트뤼포가 히치콕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듯이, 성공적인 살인마 캐릭터는 작품의 성공을 확정짓는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의 살인마 캐릭터인 '레더 페이스'는 '프레디' 나 '제이슨', '마이클' '핀헤드' '노먼 베이츠' 들과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인기있고 대중적인 호러 아이콘이다.

앞서 말했듯이 '레더 페이스'의 흉칙한 외양은 단순히 쇼크 효과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를 더욱 구체화시켜 전달하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가죽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 행위는 기형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타자로 변이하고 싶은 살인마의 심정을 대변한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태하고 싶어하는 살인마의 자의식은 이 추악한 영혼에게 일말의 인간적 양심을 부여한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젊은이들의 여행과 살인마 그리고 그의 과장된 남근적 무기, 신체 훼손 및 절단, 소수의 생존자와 한정된 공간 등의 내러티브 구조로 미루어볼 때 고전적 '슬래셔 장르'(연쇄 살인범과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형식의 영화로서 <할로윈>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 등이 대표적)의 관습을 따라간다.

슬래셔 장르는 80년대 후반 시리즈물들의 범람으로 내적으로 급속한 퇴행을 경험하고 대중에게 외면당했지만, 초기에는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과 문제점을 짚어내는데 탁월한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으로써 변태하고 싶어하는 살인마의 자의식은 이 추악한 영혼에게 일말의 인간적 양심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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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불쾌하고 찝찝한 여운이 남는 영화이다. 또한 이 작품의 도덕적 트라우마가 평생토록 여성과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에드 게인의 우울한 일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레더 페이스'의 전기톱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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