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주은래(周恩來. Zhou Enlai. 1898~1976) 전 중국 총리. 그는 '중국 인민의 벗'으로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다.
중국 인민의 벗이자 중국의 양심으로 추앙받았던 주은래 전 총리가 1963년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과의 접견에서 "조선 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며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 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밝힌 자료가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그는 "(중국과 조선)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데 이것은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해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진 게 주요 원인"이라며 "먼저 양국 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비판했다.

주은래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 머물렀던 설훈 전 의원은 이같은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 관계 대화록'을 입수해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조선과학원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주은래는 "발해의 수도였던 경백호 부근에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라며 "이는 (조선이)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고,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선족이 더 오래 전에도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부는 아시아 남부에서 표류해 왔다고도 하나 이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주은래는 "민족의 역사 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라며 "서적상의 기록은, 어떤 것은 당시 사람이 쓴 것이지만 관점이 틀렸고 또 어떤 것은 후대 사람이 위조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 역사서는 2차 자료일 뿐"이라고 밝혔다.

'후대 사람이 역사를 위조할 수 있다'며 역사 기록을 맹신하지 말라고 한 발언은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도 맞닿는 대목으로 주은래의 깊이 있는 역사적 안목을 보여준다.

주은래는 "중국과 조선 두 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세워야할 하나의 공통된 관점은 당시 중국이 여러분들 나라보다 컸고, 문화 발전도 조금 더 빨랐기 때문에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라며 "어떤 때는 (중국이)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중국의 역사왜곡'을 고백했다.

주은래는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라며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다"고 말했다.

▲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천안문 누각에 선 주은래
이어 그는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런 불평등은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기에 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통일 뒤 정치·외교·행정·군사·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빼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신중국의 실질적인 건설자로 평가받는 주은래는 26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는 한편, 준의회의로부터 41년 동안 부동의 제2인자로 우뚝 서 있었다.

"인민의 총리로 인민이 사랑하고 인민의 총리로 인민을 사랑하고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하며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라는 중국 천안문 광장에 세워진 주은래의 추도 시비에 새겨진 글귀처럼 그는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인민의 벗'으로 남아있다.

다음은 설훈 전 의원이 공개한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 관계 대화' 요지다.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 관계 대화

금년(1963년) 6월 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현재의 중조 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역사적으로도 그러했는데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 시기는 중조 양국과 두 민족의 역사적 관계이다. 제2 시기는 중국과 조선이 모두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을 당했을 때이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중국은 부분적인 일본의 식민지를 포함해 제국주의의 반식민지가 됐을 때이다. 이 시기의 중국과 조선은 혁명적 관계였다. 제3 시기는 바로 현재인데,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형제당-형제국가의 관계이다.

이 세 시기의 중국-조선 두 나라와 두 당 간의 관계에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역사관계, 민족관계, 혁명관계에 대한 조사 연구를 통해 쌍방의 관점과 견해를 완전히 일치시킨 다음 문건과 서적에 모두 기록하였다. 이것은 우리 역사학자의 일대 사건이고 응당 해야했던 일이다. 이것은 또한 정치 활동을 하는 당 활동가인 우리들이 당연히 노력해야할 방면의 하나이다.

제1 시기는 역사 기록 이래로 발굴된 문물에 의해 증명된다.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될 때까지 3000, 4000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 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 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 유역에는 모두 조선 민족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 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 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조선족이 더 오래 전에도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부는 아시아 남부에서 표류해 왔다고도 하나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 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민족의 생활 습관으로 볼 때, 남아시아에서 딸려온 생활 습관도 있다. 즉 벼농사, 방에 들어설 때 신발 벗기, 언어 발음은 우리나라 광동연해 지역 일대의 발음과 조금 가깝기도 하다. 우리나라 광동연해의 일부 주민은 남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 이 문제는 역사학자들에게 한층 심도있는 연구를 하도록 남겨두도록 하고 오늘 여기 연설 범위에 포함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조선족이 이미 오랫동안 거주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한 이 지방에 가서 현장 조사하고, 비문과 출토문물을 찾고, 역사 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들을 돕도록 하겠다.

민족의 역사 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바로 곽말약(郭沫若) 동지가 주장한 것이다. 서적상의 기록은 완전히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당시 사람이 쓴 것이지만 관점이 틀렸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은 후대 사람이 위조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완전히 믿을 수만은 없는 2차 자료일 뿐이다.

당연히 이렇게 긴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문자로 기록된 역사 자료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조선 두 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세워야 한다. 이 관점이란 바로 당시 중국이 여러분들 나라보다 컸고, 문화 발전도 조금 더 빨랐기 때문에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진·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 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전쟁이 실패하자 그냥 돌아왔을 뿐이지 분명한 침략이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 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이때 바로 발해가 일어났다. 이후 동북에는 바로 요족(痢族), 금족(金族)이 발흥했다.

그때 중국이 맞닥뜨린 문제는 요족과 금족의 중국 본토 침입 문제였다. 다음은 몽고족이 문제였는데, 원나라도 역시 당신들을 침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조선과 직접 합동작전을 전개했으나 만주족이 매우 빨리 흥기하여 장백산(백두산) 동쪽에서 요하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이러한 시기에 한족(漢族) 또한 일부가 동북지역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 만주족 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만주족은 중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만주족 이전 원나라 역시 매우 크게 확장했지만 곧바로 사라졌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 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읽을 때는 종종 부주의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읽었던 여러 서적을 그대로 접수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고, 책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연극중에 당나라 사람 설인귀가 있는데, 그는 바로 동방을 정벌해 당신들을 침략한 사람이다. 우리 연극에서는 그를 숭배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국가이며 여러분 나라도 역시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극이 다시 상연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이 연극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