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일까?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불쌍한 유부녀들을 위한 말일까? 아니면 결혼으로 인해 자유로운 독신 생활을 청산하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유부남들을 위한 말일까?

결혼을 통해 얼마간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언제나 사랑하는 남성으로부터 받는 황홀한 프로포즈를 꿈꾸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을 꿈꾼다.

물론 남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한없이 넓은 들판을 달리며 자유로운 독신생활을 고수하고 싶어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혼을 앞둔 남녀 사이에서는 남자가 조금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생일대의 청혼을 하는 남자가 ‘YOU WIN∼!’이라는 한마디로 청혼을 끝내버린다면 어떤 여자가 그와 넙죽 결혼을 해줄까?

<청혼>의 남자 주인공인 지미는 결혼을 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그에게 있어서 결혼은 자유를 제공해주던 독신생활의 끝이며 곧 무덤의 시작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내라는 것은 무덤의 주인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연인이 있으니…그녀는 바로 사랑스러운 앤이다.

3년째 사귀고 있는 앤과 지미는 첫눈에 반해 사랑을 시작한 사이로 결혼을 전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고 있는 연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식을 올리면서 이들도 결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앤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는 것을 본 지미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게 되고, 반대로 앤은 내심 그의 청혼을 기다린다.

고민 끝에 지미는 청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청혼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독신의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을 떨쳐내지 못한다.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지미가 앤에게 청혼을 한 것은 단 한 마디 ‘YOU WIN∼’이다. ‘나는 결혼이 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결혼을 원하는 너에게 지고 말았다. 니가 이겼다. 그러니 결혼하자’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로맨틱한 청혼을 기대했던 앤은 어이없는 지미의 청혼에 한껏 실망을 하고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그를 떠난다. 하지만 앤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지미에게는 더욱 더 어이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그것은 바로 그의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며 24시간 안에 결혼을 해야만 1억 달러의 유산을 주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 게다가 10년 안에 이혼을 해서는 안 되며, 5년 안에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까지 딸려 있어 더욱 더 문제는 심각하기만 하다.

앤에게서 끝내 구제를 받지 못한 지미는 그 동안 교제했던 과거의 여자들을 하나 둘 찾아다니며 결혼을 구걸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여인들은 차갑게 거절을 하고, 1억 달러에 눈이 멀어 결혼을 결심했던 버클리마저도 아이를 낳아야 하고, 10년 간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에 그만 결혼식장을 떠나고 만다.

1억 달러를 놓칠 위기에 놓인 지미의 결혼추진위원회(!)는 신문에 ‘6시 5분까지 신부감 급구! 이 남자와 결혼하면 1억달러∼!’라는 광고를 내게 되고, 광고를 본 1000여명의 신부가 말 그대로 ‘버선 발로’결혼식장을 찾아온다. 하지만 극적으로 지미는 앤의 승낙을 받아내고, 이들은 1000여명의 신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청혼>은 한 편의 순정만화같은 영화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해준다. 24시간 내에 결혼을 해야만 유산을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장난기 어린 유언으로 순정만화가 시작되고, 1000명의 신부들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미를 쫓는 장면에서 그 순정만화같은 장면이 상승곡선을 타며, 그 신부들 사이에서 앤과 지미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서 그것이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영화는 시종일관 즐겁고 유쾌한 것을. <청혼>은 1억 달러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24시간 내에 결혼을 해야만 하는 코믹한 상황으로 관객을 몰고 가지만 한편으로는 ‘청혼’이 가지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청혼에 있어 왕도는 없다. 그저 한 가지 조건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보여줄 것’. 다소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영화 <청혼>은 실패한 청혼과 성공한 청혼의 사례를 보여준다. 따라서 101번째 프로포즈에도 성공하지 못한 남자들에게는 청혼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든든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자리매김을 한 르네 젤위거의 사랑스러움을 한껏 느끼고, ‘1억 달러를 내주고도 결혼하고 싶은 남자’인 크리스 오도넬의 매력을 실컷 맛본 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영화관을 나서며 넌지시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은 나를 위해 어떠한 청혼을 계획하고 있나요?’라고.
2001-09-26 06:4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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