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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그냥 재밌게 읽고 놀자. 그러는 동안에 저절로 깨끗하고 착한 마음이 자라나게 하자."

어린이 교육에 전념했던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 잡지 창간호에 실은 글이다. 방정환을 존경하는 김흥제 시인은 70세에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쓴 동시는 미출판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500편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이제 세 살인 손녀를 신생아일 때부터 돌보며 동시를 썼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껏 자라는 모습을 묘사한 동시가 253편이라고. 이달 나온 세 번째 연작 동시집 <금붕어야 나랑 놀자>의 작품 해설(140페이지)에서, 한국동시문학의 원로 신현득 아동문학가는 "이러한 유아동시 연작은 세계에서 처음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라고 쓴다. 

필자는 김흥제 시인의 또다른 손녀이나, 이번에는 친인척 관계가 아닌 시인으로서 그를 인터뷰했다. 새 동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9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시인을 만났다. 

김흥제 시인은 지난 73세부터 76세인 현재까지 네 권의 동시집을 출간했다. 첫 작품 <네 이름 참 예쁘다>는 일반 동시집이다. <발가락도 장난감>, <첫걸음 떼기>, <금붕어야 나랑 놀자> 세 권은 아기를 주제로 연결된 연작 동시집이다. 태몽부터 두 돌까지의 모습을 담았단다.

아이의 영유아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시인은 당시에만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듯이 동시로 남겼다.

어항 앞에 선/ 아가 보고/ 금붕어가/ 입을 뽀끔//
아가도/ 금붕어 보고/ 입을 뽀끔뽀끔//
"나랑 놀자."/ 아가가/ 어항에 손을 대니/ 금붕어는/ 꼬리치며 돌아선다.//
 - 시 '금붕어야 나랑 놀자' 중 한 부분


"은퇴 뒤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아이들이 좋아할 시 써보고 싶었어요"
 
김흥제 시인
▲ 김흥제 시인 김흥제 시인
ⓒ 김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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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30년 동안 초등교사로 근무했어요. 명예 퇴임 후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했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가끔 동시를 읽어주면 집중도 잘하고 '데구르르' 같은 의태어 표현에 반응하며 재밌어했죠. 그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시를 써보고 싶었어요."

- 시인 등단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동시교실 특강을 들으며 동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매주 2편의 동시를 써서 회원들과 합평하고 선생님의 도움말을 들었어요. 선배 동시인들의 동시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했어요. 등단하기 위해 아동문학평론, 월간문학 등 신인상에 출품했어요. 아홉 번 떨어지고 열 번째 도전했던 2020년에 아동문학평론 동시부문에 당선됐죠. 동시를 쓴 지 3년 만인 73세 때였어요."

- 열 번을 도전하긴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나요?

"동시 입문이 늦었던 만큼 쓰는 대로 꾸준히 응모했어요. 떨어지면 내 동시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고 계속 썼어요. 덕분에 동시가 많이 모여 신인상을 받은 후에 첫 번째 동시집을 빨리 낼 수 있었죠."

-왜 손녀가 동시의 소재가 되었나요? 

"제게도 5명의 자녀가 있지만 직장에 다니느라 육아를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셨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죠. 넷째 딸이 외손녀를 낳고 제가 육아를 도왔는데 아기가 자라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행동 하나하나가 동시의 소재로 보였어요. 제목을 생각해 놓았다가, 아기가 잘 때 동시를 썼죠. 손녀에 관한 시는 지금까지 253편을 썼고 그중 175편이 출간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쓸 거예요." 

- 말씀하신 손녀는 어떤 아이인가요? 

"사랑을 잘 표현하는 아이에요. 엄마가 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으로 마중을 나가더라고요.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면서 '예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어요. 26개월 된 아이가 그렇게 기특한 말을 한 게 놀라웠어요."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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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양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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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녀가 동시를 읽고 감상을 말하는 날이 오면 어떨까요?

"'할머니, 제가 진짜 이렇게 했어요?' 하며 신기해할 것 같아요. 자신이 모르는 어린 시절을 알게 되겠죠. 가족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신현득 원로 아동문학가는 "이러한 유아동시 연작은 세계에서 처음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라고 해설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연작으로 담은 시도가 최초라고 하네요.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놀랐어요. 더 성실히 관찰해서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예전에는 아기가 동네의 꽃이었어요. 온 동네가 같이 키운다고 할 정도였죠. 제 동시를 읽은 사람들에게 아기가 주는 기쁨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어요. 노래가 나오면 몸을 흔들고, 밥풀을 얼굴에 묻히며 먹고, 부모가 손뼉 치면 똑같이 손뼉 치는 아기다운 모습을요.

어린이가 읽는다면 자신이 어렸을 때를 머릿속에 그리며 즐거워하길 바라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단란한 시간을 가져도 좋지요. '너를 키우면서 우리도 이랬단다' 하면서요. 아기를 가지려는 사람들은 아기가 주는 기쁨을 미리 느껴볼 수 있겠죠."

김흥제 시인은 지난 세 권의 연작에 이은 네 번째 연작 동시집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손녀의 두 돌부터 세 돌까지의 이야기가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연작 이외에 일반 동시도 이미 마련돼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동시 쓰기가 즐거워요.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요"라 말하는 시인의 표정은 해맑은 어린이 같았다. 그가 신인상을 받았을 때 밝힌 소감은 "늦은 시작은 없다"였다.

70세에도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 늦은 나이가 아닐 수 있다. '이미 늦었다'는 핑계를 대며 시도하지 않고 포기했던 내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석영씨는 김흥제 시인의 또다른 손녀입니다. 위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동시, #동시집, #어린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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