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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북향민 청년 박충권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민의미래는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기 위해서 만든 위성정당이며, 선거 후인 4월 26일 합당 절차가 완료돼 국민의힘에 통합됐다. 박충권 당선인은 2009년 탈북해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제철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지난 1월 국민의힘 총선 1호 인재로 영입됐고, 국민의미래 기호 2번 후보로 공천받아 당선됐다. 북한에서 그는 국방대학교 졸업 이후 ICBM 핵무기 개발 관련 연구로 일을 했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북한 핵무기 전문가'로 강조되며 영입됐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인재로 영입된 북향민 청년이 한 명 더 있다. 국가보훈부 박민식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인 북향민 청년 김금혁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유학생으로 이번 국민의힘 총선 5호 영입인재 중 한 명이다. 김금혁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등 다양한 언론과 미디어에 출연해서 이미 많이 알려진 청년이다. 지난 2022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청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보수진영과 민주진영을 대표해서 필자와 둘이 함께 각 정당의 대북정책과 북한인권정책 관련 대선정책토론을 한 바도 있다. 필자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북향민을 인재로 영입하고 비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한다면 분명 북향민 중에 '청년'으로 범위가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었다. 실제로 두 명의 영입인재 모두 30대 청년이다. 하지만 김금혁은 비례후보 순번을 받지 못했다. 그에겐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을 포함하면 그동안 보수정당에서 북향민 출신 국회의원이 네 명이 나왔다.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북향민 조명철 전 통일교육원 원장이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됐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공사가 최초로 지역구 국민의힘 후보로 당선됐고, 꽃제비 출신 인권운동가인 지성호 활동가가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바 있다. 이번 22대 총선 박충권 당선인까지, 지난 12년 간 총 네 명의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나왔다. 북향민 출신 국회의원의 등장은 북향민들에게는 물론 한국사회와 심지어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북향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 3만 4천여 명의 북향민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 따라서 소수자 출신이 제도권 정치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소수자 집단의 직간접적인 정치적 목소리가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해당 집단의 정치적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는 기대를 갖게 하는 행위 자체가 우선 중요하다. 실제로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등장해서 북향민 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거나 북향민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미지가 더 나아졌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집단에게 대표성이 주어졌다는 것 만으로도 정치적 메시지나 정치적 효과는 충분히 거두었다. 실제로 조명철·태영호·지성호 의원은 북향민 관련 정책이나 법안들을 발의하고 민원을 처리하기도 했다. 특히 지성호 의원은 의원실 내에 '북한이탈주민 권익센터'를 설치하여 4년 임기내내 북향민들의 문제해결에 집중했다. 

한국사회에서 북향민과의 사회통합이라는 차원에서도 북향민 출신 정치인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남과 북은 분단 70년이 넘도록 달리 살아왔기에 제도적인 측면은 물론 문화적 이질감도 상당하다. 향후 통일을 기대할 때 이 간극과 괴리를 좁히는 것이 현재 가장 당면한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 북향민들을 소위 '먼저 온 통일'이라고 호명하기도 한다. 북향민들이 실제로 먼저 온 통일로써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든 제도권 안에서의 활동반경이 넓어져야만 가능하다. 소수자 집단에 머문 채 사회적 배려나 동정의 대상으로만 남아있게 된다면 사회통합은 시혜적 관점에서만 수행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향민들이 한국사회에서 각자가 속한 영역에서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고 정치적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북향민들에게는 대표성 확보가 필요하며, 이 대표성에는 당사자성이 더욱 중요하다. 북향민 출신 국회의원이 북향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네 명의 북향민 출신 국회의원의 등장은 사회통합 차원을 넘어 향후 통일준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노력이다. 이들에 대한 역량과 평가는 차치하고, 이들이 갖는 상징성이 우선 중요하기 때문이다.

네 명의 북향민 출신 정치인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아쉬움도 있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는 당연한 것이고, 제도권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모두 보수정당에서만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면서도 한계로 지적할 수밖에 없다. 북향민 사회가 보수성향이 짙은 게 반영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내막에는 북향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대 정당의 정치공학적 계산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다. 보수정당이 추구하는 반공 대북정책과 북향민들의 북한체제에서의 억압 경험과 저항이 맞닿아 정치적 또는 정책적 효과를 만들어 낸 결과이다. 물론 이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정치적 효과 계산이 없는 정치행위는 없으며, '반공'과 '종북타파'를 내세우며 북향민이 보수정당에서 당선됐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로 우선 의미가 있다. 조명철·태영호·지성호·박충권, 이들의 정치입문에 대한 일성(一聲)은 일치한다. 자유민주주의 투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박충권 당선인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 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의 대척점에 선 정치인"으로 소개한다. 태영호 의원은 후보시절 선거유세를 다니며 수시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꽃제비 출신 지성호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북한에서 엘리트 과정을 밟은, 출신성분이 좋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정치인이 되는 건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가 여러 의미로 강력하다. 따라서 여태 민주당과 진보정당에서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나오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계이자 진보진영의 한계이다.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좌와 우를 넘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갖는 상징성은 한국사회와 북한사회 양쪽 모두에 크다. 북한은 계층이동 사다리가 없는 사회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인 나라, 계급이 없는 사회를 지향해왔던 북한은 오늘날 정 반대의 모습으로 전락했다. 철저한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까지 나뉘어지며, 아이가 성장할수록 꿈이 사라지는 사회가 돼 버렸다. 남녀노소 사회구성원 모두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잇는 오로지 김씨 가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만 한다. 이런 곳에서 탈출한 북향민이 정반대 체제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권 정치인이 된 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탈출구로서 한 점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계층이동 사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지도자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니까. 북향민들의 한국생활은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한국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것을 누릴 수 있는지 모두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한국까지 왔지만 생활고로 아사했다는 소식이나 자살했다는 북향민 소식은 더 이상 들려서는 안 된다. 북향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잘 정착하여 지극히 평범한 보통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사회가 그나마 희망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래서 북향민 출신 정치인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북향민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문제는 대표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이다.

이번 국민의힘 총선 1호 인재로 북향민 청년 박충권이 확정되자 많은 북향민들이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북향민 단체장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금혁이 5호 영입 인재로 발표가 나오자 또 불만이 터져 나왔다. 평양출신 엘리트에 북향민을 대변하지 못하는 청년이라는 불만이었다. 김금혁은 인재로 영입된 후 언론에서 "북향민을 대표하기보단 대한민국 청년 한 명으로 정치하겠다"고 발언했다. 일부 북향민들과 단체장들이 여기에 불만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네 명의 북향민이 비례대표를 받았는데 모두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엘리트라는 점도 불만을 키웠다. 박충권 당선인은 국방대학 출신이지만, 김일성종합대학 출신과 비슷한 급의 엘리트가 맞다. 북향민의 대대수는 평양출신도 엘리트도 아니기 때문이라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불만이다. 

보통 비례대표 후보는 전문분야나 직종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거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이나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영입되거나 출마한다. 그동안 북향민들 중에 정치권에서 활동하거나 사회활동을 해온 인사들이 여럿 있었다. 매번 총선이 있을 때마다 각 정당에 공천을 신청하는 북향민들도 여럿 있다. 조명철 의원은 통일교육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탈북지식인으로 활동해왔다. 태영호 의원은 고위급 탈북인사로 워낙 언론에 공개된 인물이었고, 지성호 의원은 북한인권활동과 북향민 구출사역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들은 북향민들 사이에서도 그 활동을 인정받거나 적어도 존재가 인지되고 있었던 인물들이다. 

박충권 당선인은 이 부분에서 앞서 세 명의 북향민 출신 의원들의 등장과는 달랐다. 자칭 타칭 내노라하는 북향민 단체장들이 서로 박충권 당선인에 대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불만이 나왔다. 북한인권운동 등 북향민 커뮤니티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인물에게 북향민 대표성을 줬다는 불만이었다. 사실은 더 정확하게는 불만을 나타낸 단체장들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자신들 중 한 명이 받아야 하는 공천을 북향민 사회에, 북향민 관련 활동에 기여도가 없는 사람이 받는 게 말이 되냐는 불만이었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동안 북한인권운동과 북한정권실체 고발 등 보수정당에 강경대북정책의 근거를 제공했던, 때로는 댓글공작 등 국정원의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고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을 넘나들었던 이들에게는 박충권 당선인에게 공천장이 간 것이 꽤 마뜩잖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라는 게 활동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적(前績)이 없는 인물을 공천함으로 예측가능한 비판과 공격을 피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이번이 거기에 해당된다. 필자가 앞서 이번 공천에서는 북향민 중에 공천을 한다면 분명 청년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기존 북향민 단체장들에게 공천을 줄 수 없었다.

불만을 토로했던 기존 북향민 단체장들의 경우 한 두가지 이상의 문제로 이미 언론에 나왔던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탈북 기성세대로 많은 탈북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는 공천을 해야 하는 보수당의 입장에서도 고민이었을 것이다. 논란이 예상되는 인물을 공천하는 것 보다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공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30대 청년이고 과학 '전문가' 타이틀도 가능했다. 정당들이 저마다 시스템 공천을 말하지만 사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박충권 당선인의 경우 인재영입 과정에서 조정훈 의원의 추천으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향민 사회에서 추대 또는 여론이 수렴되거나 경쟁으로 최종 선출된 후보가 아니다. 이런 절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북향민 공천은 보수당에서 정무적 판단, 선거공학적 판단에 따라 공천을 줬다. 공천을 주는 당 입장에서 구미에 맞는 인물에게 준 것이다. 그러자 북향민 단체장들이 북향민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 및 추대하는 방식으로 공천권을 쥔 국민의힘에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총선 한 달 전인 지난 3월 8일 태영호 의원은 북향민 단체장들과 기자회견을 열어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를 북향민 비례대표로 추천했다. 이 자리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허광일 위원장, 전국탈북민연합회 장세율 상임대표,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 등 북한인권단체 대표들과 북향민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받은 김성민 대표가 함께했다. 이들은 한국사회 정착에만 매진한 사람보다는 그동안 인권운동을 해왔던 사람이 북향민을 대표해서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의힘 공천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이들의 요구가 한 켠 일리는 있다. 누군가는 정치를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우연히 기회가 와서 잡은 사람이 있고 또 누군가는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왔으나 기회가 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현재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공천과 인재영입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되기 때문이다. 어느새 대표성보다는 그저 기호에 맞는, 그때 여론에 맞는 인물을 영입하기에 바쁘다. 

정치라는 게 꼭 정해진 순리나 경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전에 쌓아왔던 활동을 인정받아 정치를 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운이 좋아 정치인이 되고나서 좋은 정치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건 대표성의 문제다.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그 사람의 평소 활동을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살아왔던 경로를 갖고 검증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필자는 박충권 당선인에게 더 기대를 갖는다. 대북정책이나 북한인권정책에서는 기존 보수당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기존 북향민 단체장들과는 달리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언어와 방법론으로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소속집단의 지지가 없이 대표성을 받은 자리이기 때문에 소속집단의 목소리를 더욱 내야 할 것이다. 북에서 온 당사자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피스아고라 대표입니다.


태그:#태영호, #지성호, #탈북민, #박충권,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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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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