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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쓴 책 읽어 볼래?"
"아.. 아니요... 괜찮아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가 글을 쓰든지 책을 쓰든지 관심 없었다. 아니 싫어했다. 집에서는 자기들과 놀아야 한다며 '글쓰기, 책 보기 금지'라고 할 정도였다. 딸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글을 읽고 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재미있었어요."
"슬펐어요."
"ㅇㅇ 삼촌 얘기예요?"
"회사 얘기라서 별로..."


다양한 총평으로 관심을 표현하며 아빠가 쓴 글을 읽는다. 자식들이 봐도 무방한 글을 남기는 것이 내가 추구해 온 글쓰기 방향이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잘 쓴 기사라고 한다. 비슷한 심정이랄까. '언제나 떳떳하고 정직하고 쉬운 글'이 내 글쓰기의 모토다.

한편으로는 매운맛이 부족해 읽는 재미가 덜할지도 모르지만, 교훈 하나라도 얹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황당하고 짜증 나고 분노를 유발하는 일은 지천으로 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에서든 배울 점과 깨달음은 있기 마련이다. 글을 쓸 때 '역지사지'와 '타산지석'을 일단 깔고 쓴다.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내 글이 딸의 글로 탄생했다

작년 여름에 딸이 교내 문예 창작대회에서 2등을 했다며 상장을 들고 나타났다. 여러 장르 중 에세이를 썼다고. 무슨 내용인지 물었더니 아빠가 카카오 브런치에 썼던 글이 주제였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지난해에 중학교 2학년 딸이 전학을 갔다. 딸은 학기 초 굉장히 외로워했다.

"나만 아는 애가 한 명도 없어서 쉬는 시간에 뻘쭘해요."
"복도에 애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겠어요."
"점심시간에 혼자 도서관 갔다 왔어요."


매일 저녁 마음 아픈 이야기를 쏟아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는 걸 알지만, 생각보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딸아이 말에 가슴 아팠다.

3주 정도 지났을까, 딸의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OO이가 신기하게 전학 오자마자 회장이 되었네요. 참 훌륭한 학생입니다."

전학생 딸내미의 출마 동기는 외로움이었다. 너무 심심해서 친구를 한꺼번에 사귀려고 회장이 되기로 결심한 거라고. 다행히 한 표 차이로 당선이 되었다며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전했다.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딸은 자신의 전학 이야기를 다룬 아빠 글에서 소재를 얻었다. 아빠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진짜 전학생 이야기를 썼다. 제목도 내용도 보지 못했지만, 아마 아빠의 글보다 더 현실적이고 절절한 심정이 담겼을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전학을 체감한 외로운 학생의 솔직한 마음이 통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수상도 기분 좋지만, 딸아이가 아빠의 글쓰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더 흐뭇하다. 딸내미 덕분에 다시 한번 글쓰기에 탄력이 붙은 순간이자 글쓰기의 순기능에 감탄한 사건이다.

딸내미는 여전히 "요즘에 왜 글이 안 올라와요?", "댓글 달았는데 왜 답글 안 달아주세요?"라며 아빠의 글에 관심을 보낸다. 이제는 아빠가 쓴 책도 보고, 아빠 추천 도서를 읽고 후루룩 느낀 점도 써 내려간다.

자기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며 주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집에서 틈만 나면 글 쓰는 아빠 모습을 자주 봐서 '쓰는 일'이 별것 아니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아들의 자신감 출처는 단 한번의 성취감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의 브런치 글이나 오마이뉴스 기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독후감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게임대회 아니고?' 귀를 의심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금이 탐나서?'라고 했지만, 난데없는 독후감 자신감은 어디서 났을까?

아들의 자신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갖춰진 것이었다. 남매가 독후감 대회에 나간 적 있다. 독후감 대회는 물론 나의 추천이자 아빠가 내준 유일한 방학 숙제였다. 당시 온라인 플랫폼 글쓰기 수업을 준비하던 때였다. 수업 자료를 만들면서 참고한 학생 글쓰기 방법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줬고, 남매는 아빠 수업을 듣고 열심히 독후감을 썼다.

이때 아들은 예선을 거쳐 본선까지 진출했다. 한 대학교까지 직접 가서 글을 쓰고 온 경험이 있다. 아이들이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 하나를 썼다는 것에 의의를 뒀지만, 아들은 그때의 성취감을 의미 있게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이 상금을 탐낼 만큼 커다란 자신감을 느끼게 된 것은 당시 누나는 예선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선에서 떨어진 누나가 학교에서 상을 받았어? 그럼 나는?'이라는 자신감이랄까. 단 한 번이었지만 그로 인해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은 흐뭇하면서도 놀라운 일이다.

최근에 아들이 대회에 나갈 소설을 읽고 '뭔 소린지 모르는 내용이 많아요'라며 한탄했다.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조바심을 낸다. 독후감 쓰는 법이 담긴 책을 건넸다. "이 책 166페이지부터 177페이지까지 읽고 따라 써 봐."

아들은 줄거리를 정리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고, 느낀 점을 쓰려고 머리를 쥐어짜며 유일무이한 자신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민하면서 무언가를 글로 정리한다는 건 값진 성취다. 수상과 상금보다 더더욱 큰 의미 있는.

혼자 쓰고 셋이 읽는 글

퇴근 후 집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내 책상으로 몰려든다. 당연한 아빠의 일상이다. "또 글 써요?"라고 물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을 활용한다.

평소 생각나는 주제에 대해 러프하게 틀을 잡고 최소 4~5일은 계속 들여다보며 수정 보완을 반복한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아이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한다. "한 번도 안 틀리고 읽으면 상금!"이라는 이벤트에 아이들은 게임처럼 번갈아 가며 즐겁게 아빠 글을 읽는다. 읽는 것도 쓰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며 단어를 배우고, "이 표현은 좀 어색한 거 같은데요?", "이렇게 쓰는 건 어때요?" 등의 의견도 제시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즉시 반영해 보란 듯이 수정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글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성취감도 느낀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글 쓰는 습관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글은 단순하게 팩트를 나열하더라도 생각을 해야만 쓸 수 있다.

일기나 에세이를 쓰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관리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수시로 자기 경험을 떠올리고 감정을 추스르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자 자신을 객관화하는 과정, 글쓰기가 주는 긍정 파워다.

많은 것이 영상으로 대체되는 요즘, 읽지 않고 쓰지 않아 문해력이 떨어지는 시대에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쓰는 기회는 소중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만들어 주는 게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직장 다니면서 글을 만나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
태그:#아빠의글쓰기, #글쓰기순기능, #자녀글쓰기, #즐거운글쓰기, #글쓰기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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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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