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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가명) 님은 7년 차 수의사이다. 꽤 큰 병원에서 일한다. 20~30대였던 남녀 선배들이 세 명이나 갑상선 암에 걸려, 수의사의 직업병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졌다고 한다. 갑상선 암의 업무 관련 요인으로는 방사선 노출이 제일 중요하다.

연락을 받기 전에는 수의사의 산재는 동물들에게 물리거나 긁히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x-ray 노출이라니. 1월 13일 이현정 님을 서울에서 만나 어떻게 노출되는지 물어보았다.

"저희는 방사선사가 따로 없어서 직접 찍어요. 또 동물들이 가만있지 않으니 수의사와 테크니션들이 직접 잡고 찍어야 하죠. 납복을 입지만 흘러내리기도 하고, 그럴 때 아이(동물)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흘러내린 보호복을 올리기는 어렵죠. 한 번에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 찍는 게 보통이고요. 납복 외에도 장갑이나 고글 같은 것도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는 데 필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보호구를 갖춘 동물 병원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있다고 해도 바쁘고 급해서 착용하지 않기도 하고요. 작은 병원에서는 원장님이 빨리빨리 찍으려고 납복 안 입고 들어가시기도 하는데, 그러면 후배 수의사가 혼자 납복 입기 어려워요. 정형외과, 신경외과 수술이나 심장기형 교정을 위한 중재술을 하면서 방사선을 이용해 동영상을 보기도 해서 방사선 사용량이 늘어났어요. 또 몇 년간 일해도 납복을 교체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죠."

수의사의 방사선 노출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2014년 감사원 조사 결과 수의사들이 1년에 80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는 결과가 있었다. 2018년에는 손 부위 피부에 120mSv가 노출된다는 연구도 있었다. 방사선 노출 기준은 일반인의 경우 연간 1mSv, 방사선사 등 방사선 관련 직업인은 연간 50mSv 이하다.

방사선뿐 아니라 약품의 영향도 받는 수의사
 
검사 전 과정에서 동물을 붙잡거나 들어 나르는 일이 많아 근골격계질환도 흔하다.
 검사 전 과정에서 동물을 붙잡거나 들어 나르는 일이 많아 근골격계질환도 흔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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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방사선도 요즘 많이 찍는데, 치과 촬영실이 따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일반 진료실이나 수술실에서 찍는데, 그건 파노라마로 방사선 조사 범위가 넓어서 차폐가 안 되거든요. 그럼 직접 찍는 사람 말고 주변 사람들도 노출되고요."

수의사가 노출되는 직업적 건강 유해 요인은 방사선뿐만이 아니다. 반려 인구가 늘어나고 반려동물들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또 동물 치료 산업이 커지면서 항암제, 호르몬제, 광범위 항생제 등 다양한 약품을 사용한다. 수의사는 약품의 영향도 받는다.

"요즘은 코로나라서 마스크라도 쓰지만, 예전에는 마스크도 안 썼어요. 아이들이 다 작으니까 약들을 대부분 갈아서 주거든요. 그럼 막 가루가 날리고 그랬죠. 항암제 다룰 때만 장갑, 가운을 챙겨 입어요. 항암제를 먹여야 하는데 잘 먹지 않으니 손으로 먹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노출되기도 하고, 항암 하면 눈물, 땀, 배뇨로 배출되는데 그걸 의료진이 치워야 하니까 거기서도 노출될 수 있죠. 항생제도 많이 쓰는데 가루로 하도 많이 마셔서, 우리 나중에 항생제 내성 생기는 거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예요."

채혈, 신체 측정, x-ray 촬영, 초음파 검사 등 모든 검사 과정에서 누군가 한두 명이 동물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하기에 근골격계질환도 흔하다. 10kg이 넘는 동물들을 안아서 나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스스로를 택배기사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동물은 움직이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마취나 진정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이 이런 위험 부담을 높인다. 사람들은 마취 전에 마취를 견딜 수 있는지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데, 동물들은 그게 쉽지 않다. 심폐기능이 매우 안 좋은데 그걸 모르고 검사를 위해 간단한 마취를 했다가 사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취나 진정은 수의사나 보호자 모두에게 부담이다. 그렇다 보니 요동치는 동물들을 붙잡느라 수의사나 테크니션들이 고생한다.

"저도 고양이 귀 청소를 혼자 하다가 한번 삐끗한 뒤에 허리가 종종 아파요. 수술 오래 하는 것도 허리 아픈 일이고, 늘 10~20kg 되는 아이들을 번쩍 들어야 하고. 남녀노소 모두 디스크 환자예요."

감염 문제도 다양하다.

"인수공통감염병에 노출이 많이 되죠. 세균, 곰팡이 감염은 당연하게 여겨져요. 한 번도 안 걸려 본 선생님이 없을 정도예요. 고양이 키우는 사람한테는 고양이 담당을 안 맡기기도 해요. 사람이 매개체가 되어서 병을 옮길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진드기 매개 감염병이 이슈였어요. 최근에 어떤 원장님이 진드기 매개 감염병으로 위험한 강아지를 심폐소생술 한 뒤에 감염되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사람 치과에서도 감염 위험이 큰 것처럼, 동물도 치과 시술이 감염 위험이 커요. 스케일링할 때 균이 멀리까지도 튀거든요. 제가 다닌 여러 병원에서 페이스 쉴드를 하는 수의사를 본 적이 없어요."
 
수의사 혹은 동물병원의 테크니션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수의사 혹은 동물병원의 테크니션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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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과 관련한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는 점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비싸다 알려져 있잖아요. 이렇게 비싼데도 왜 이 검사나 시술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매번 잘해야 하거든요.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 하면 머리를 중심으로 검사하면 되는데 동물은 어디가 아픈지 모르니까 검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검사 항목이 늘어나다 보니 진료비가 올라가고, 반려동물은 의료보험도 없으니까 더욱 동물 병원 진료비가 비싸다고 느낄 것 같아요. 보호자들이 비용에 민감하다는 걸 저희도 이해하고 잘 알고 있어서 최대한 설명을 하려 해요.

만일 30만 원이 드는 시술인데 저희가 설득을 못 해서 안 하게 되면, 그 아이는 치료할 수도 있는데 죽게 되는 거예요. 그럼 안타깝죠. 30~40만 원 때문에 안락사해달라 하기도 해요. 죽을병도 아닌데도요. 수의사나 테크니션 대부분 다 동물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돈 때문에 살리지 못하면 괴롭죠. 그것도 보호자가 정말 가난하고 어려운 경우라면 모를까, 외제 차 타고 와서 30만 원 때문에 안 한다고 하면…."


병원마다 다른 안락사 기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락사나 동물 간 수혈처럼 민감하고 중요한 생명 윤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이 질병 또는 상해로부터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동물이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질병을 옮기거나 위해를 끼칠 우려가 매우 높은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유기 동물이 기증 또는 분양이 곤란한 경우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병원마다 기준이 다르다.

"안락사의 수의학적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병원마다 적응증이 다르죠. 실제로 저한테 안락사 요청을 해서 거절했는데, 다른 병원에서 안락사했다는 사례도 본 적 있어요. 진짜 상태가  좋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용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고요. 처음 안락사하는 수의사는 대부분 울고, 작은 병원에서는 안락사 한 번 있으면 병원이 다 같이 우울해지고 그래요. 수의사나 테크니션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수혈도 최근 중요한 이슈예요. 예전에 동물단체에서 공혈견(헌혈을 위해 길러지는 개)을 고발한 적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대학병원 등에서 헌혈센터 같은 걸 잘 운영하려고 노력도 하지만. 동물한테는 의견을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특히 고양이 혈액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동거묘를 데려와서 채혈할 때도 있는데, 이 친구도 정말 원할까 싶을 때도 있죠."


2021년 한국임상수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서울대 정신건강센터 김은영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해 본 수의사가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많았고, 자살을 시도한 수의사는 무려 2.7배 많았다. 발표자는 "수의사의 스트레스 관리, 생명·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철학적, 심리적,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교육"이 수의학 교육 과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건강뿐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부딪칠 수 있는 다양한 건강 문제 역시 수의사를 포함한 관련 직업인들의 교육 과정에 꼭 포함되어야 한다.

"수의사 말고도 동물보건사나 동물 미용하는 선생님 등 종사자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근무 환경에 대한 인식은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본인이 노동자라는 생각도 별로 없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떤 걸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기도 하고요. 수의사뿐 아니라 업계에 있는 모든 분의 노동 환경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수의사, #직업병, #직무_스트레스, #근골격계_질환, #직업성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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