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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조직될 때부터 와해의 순간과 마주할 운명에 처한다. 어느 노조든 마찬가지다. 노조의 와해는 자연적일 수도 있지만, 인위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그 인위적인 파괴는 대개 기업의 개입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기업은 왜 노조를 파괴하려 할까? 이유는 단 하나다. 노조가 노동자 권리향상을 목적으로 요구할 비용청구서 때문이다.

노조의 파괴는 그 의미처럼, 파괴하기로 표적 삼은 노조의 공중분해가 최종 지향점이 된다. 단기간에 그럴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이 사용자의 고민이다. 삼성이 80여 년간 유지한 무노조 경영을 폐기할 만큼 완전한 노조파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보다 표적 삼은 노조를 회사와 교섭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된다. 노조의 입장에서 교섭권 박탈은 노조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조가 어떤 요구를 해도, 사용자가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는 의미다.

그 방법으로, 사용자와의 교섭자리에 과반의 조합원을 모집한 노조나 그 연합체만 앉힐 수 있게 '강제'하는 제도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의2)를 이용하면 된다. 우선 회사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따를 노조(어용노조)를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과반으로 만든 다음에 표적 삼은 노조와 맞설 방패막이로 쓰면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영구하게 만드는 건 그다음 목표다.

언뜻 보면 존재하는 제도를 그대로 활용하기에 합법 같지만, 기업이 노조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려는 행위는 불법이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부당노동행위). 중립을 지켜야 할 사용자가 '없애기로 마음먹은 노조'와 '키워야 하는 노조'를 의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범죄의 특성상, 차별받는 노조와 당사자들이 죄를 물을 뚜렷한 가해증거를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관리자들이 표적 삼은 노조에 가입된 이들의 인사평가를 나쁘게 하자고 공모할 때 은밀히 이행하지 대놓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불법 행위이므로, 차별받는 노조나 당사자들이 알 수 없게끔 내부자들끼리 문건을 공유하거나, 메시지, 전화를 주고받는 형태의 모의 후 노조파괴에 나선다.

이런 이유로 내부자의 양심선언이나 수사기관의 신속한 압수수색 없이는 베일에 싸인 사건의 증거물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압수수색은 노조파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진행된다는 점에서 신속하지도 않다. 그사이에 그나마 남아 있는 물증들이 인멸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한 노조 간부는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우리가 힘겹게 얻어낸 증거로는 압수수색조차 안 된다네요. 나는 그게 증거를 몰래 훔쳐오라는 말처럼 들려요.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요."

사실 범죄혐의의 증거물을 '강제로 빼앗으려 할 때' 공적인 과정(압수수색)을 거치지 않으면 대부분은 불법행위가 된다. 압수수색 없이 노조파괴의 가담자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범인이 돼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과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증거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혹여 얻어냈다고 해도 그 증거는 가치가 없다. 예컨대, 이상훈 전 삼성전자이사회 의장이 노조와해 전략을 보고받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히고 만다. 그 이유에 대해서 대법원은 그의 범행을 밝히려고 사용된 증거가 "영장의 장소적 효력범위에 위반해 집행"됐기 때문이라고 항소심 판결을 옹호했다. 이런 자료도 증거채택이 어려운데 절도로 얻어낸 증거물은 어떨까?

증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 사례는 노조와해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인위적인 파괴도 자연적인 소멸처럼 보인다는 점이 문제다. 그것이 사용자가 바라는 최상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 노조들끼리의 알력처럼 비친다. 증거 없이 겉모양새만으로 판단하면 불법의 상황이 합법으로 오독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리에 실행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처음 한 번은 순간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일관되게 반복되면 의도적인 사건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회사의 표적이 된 노조원들에게만 유독 모든 이들이 기피하는 업무만 시킨다거나, 특정 노조원들을 향해 노조 탈퇴를 종용, 회유한다거나, 지나치게 감시를 하고 징계를 남발하는 일들이 그렇다.

내부에서 몰래 진행되는 일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하다시피 한 노조파괴의 정황들이 사법의 영역에서는 웬일인지 증거로 잘 채택되지 않는다. 그만큼 정황이 드러나도, 그와 연관된 내부자들의 공모 증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노조조직률 14%대(2020년 기준)의 사회에서 노조파괴 공모는 꽤 '대중화'된 기업들의 비용절감 전략이 됐다. 이는 노조파괴의 도구로 활용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지만, 그 법을 개정하거나 폐기하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계는 법을 개정하거나 폐기할 자격이 없다. 그 자격이 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노동자 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은 이를 실행에 옮길 입법권한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법안을 홀로 통과시킬 힘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스스로 '개혁법안'이라 생각하는 법안만 밀어붙일 뿐이지, 다른 법안들에 대해서는 여당과의 '합의정신'을 들이밀며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국민의힘은 노동자보다 사용자를 더 생각하기에 오히려 회사가 표적 삼은 '귀족'노조들이 사라지는 상황을 반긴다.

한편으로 노조조직률 14%의 반대말은 나머지 86%가 비노조원이란 사실이다. 그들은 당사자가 아니므로 노조에 대한 불법적 행위에 무심하거나, 오히려 파괴될 만하니 파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당사자성이 원체 부족해서, 다른 노동법과 달리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폐기에 대한 여론화도 힘든 실정이다.

노조가 파괴된 이후에 그것이 사실이라 밝혀져도 그 노조가 다시 복권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쯤이면 어용노조를 압도할 만한 조건이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용노조를 이길 세력도, 자본도 이미 바닥난 상태일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가 부도로 망하지 않고선 사용자의 조력을 받는 노조를 이길 방법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회사의 부도는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지므로, 어용이든 소수든 노조의 존재성마저 위협받는다. 그만큼 파괴된 노조가 다시 교섭권을 회복할 만한 유인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은 있다. 사용자가 거의 파괴되다시피 한 노조(극소수의 노조원만 남은 노조)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교섭권을 인정해주면 모를까, 사실 이러한 가정도 불가능을 전제로 한다. 교섭권을 주지 않기 위해 파괴시키려는 노조에 그걸 허용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다수노조, 소수노조 모두와 교섭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혹을 떼어 내려다 오히려 혹을 더 붙이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파괴된 노조가 부활하는 일은 기적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결국 파괴라는 목적을 달성한 기업은 법적 처벌을 받아도 이문이 남는다. 가담자는 최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그건 법 조문상이지 현실에서 실형이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벌금형을 받고 그마저도 합법적으로 얻어낸 증거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처벌에 비해 얻는 효과가 크니, 회사는 '배짱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끈기 있게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과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 중 일부는 원·하청의 노조파괴 의혹을 제기하며 수년간, 싸움으로써 버티는 중이다. 그사이 극소수만이 노조에 남았다. 현재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200일이 넘게 천막농성 중이고,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인 임종린씨는 53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속한 노조는 상급단체가 일치한다.

이들은 '내부자들끼리 공모한 물증들'을 기적적으로 찾아내기까지 했다. 결국 부당노동행위 가담자 일부를 기소하거나,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시키는 작은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래도 이들은 또다시 버팀으로써 싸운다. 노조파괴에 대한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더 나아가서는 소수노조가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내기 위해 버틴다. 노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교섭권한을 되찾기 위해 말이다.

법의 제정 목적은 무엇인가? 질서의 유지? 정의의 실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라는 '노조파괴법'은 어째서인지 특정 노조원의 입장에서는 그 어느 조건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대한민국 노동법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반대편의 입장에서 보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목적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앞에 기업이나 자본이란 단어만 붙이면 된다. '기업/자본의 질서'가 유지되고, '기업/자본의 정의'가 실현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법은 개정될 이유가 절대 없는지도 모른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노동법#노조파괴#노동조합#어용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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