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은 권정호 변호사, 세선째 의자에는 유영재 전 효순미선사건대책위 집행위원장이 앉았다.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은 권정호 변호사, 세선째 의자에는 유영재 전 효순미선사건대책위 집행위원장이 앉았다.
ⓒ 이재환

관련사진보기

 
유영재 전 효순미선사건대책위 집행위원은 20년 전 발생한 효순미선 장갑차 압사 사건에 대해 "한국 촛불집회의 효시였다"고 평가했다. 오는 6월 13일은 '효순・미선 탱크 압사 사건' 20주기다.

지난 2002년 전국민이 한일 월드컵에 심취해 있을 때 두 명의 여중생이 주한 미군 장갑차에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효순미선 두 학생은 생일을 맞은 친구 집에 가던 중 경기도 양주시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미2사단 소속 장갑차에 치여 압사했다.

지난 7일 충남 보령시 문화의 전당 대강당에서는 '효순미선 압사 사건' 20주기를 맞아 "탱크라도 구속해"라는 제목으로 두 소녀를 추모하는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은 보령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주최하고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가 후원했다. 권정호 변호사와 유영재 전 효순미선사건대책위 집행위원이 강연자로 나섰다.

유영재 전 집행위원은 이날 강연에서 "두 소녀가 살아 있다면 올해 서른다섯 살이다. 효순・미선 사건은 촛불의 효시였다. 두 학생은 우리에게 촛불이라는 아름다운 저항의 방법을 알려줬다"며 "탱크라도 구속하라는 구호는 그때 나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02년 6월 13일은 마침 지방선거가 있던 날이라 임시 공휴일이었다"며 "아이들이 친구 생일 파티에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 다음날 <한겨레신문>에 아주 작게 기사가 나왔다"고 말했다.

유 전 집행위원은 계속해서 "당시는 관심이 온통 '2002 한일 월드컵'에 쏠렸다. 월드컵 거리 응원자들을 대상으로 사건을 알렸다"며 "월드컵 응원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들이 직접 효순미선 사건의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효순미선이 사건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미국 대사관을 10만의 촛불이 둘러싸는 역사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미국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며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한 적은 있지만 10만의 촛불이 미대사관을 둘러싼 것은 처음이었다. 미국도 반미투쟁이 격화될 것을 걱정했는지, 이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가 나왔다"고 회고했다.

권정호 변호사는 효순미선이 사건이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미SOFA(소파) 조약의 불평등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SOFA 개정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효순미선 사건의 재판에서 변호를 담당하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자주의식이 높아졌다"면서도 "하지만 한미 SOFA 협정 문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줄도 바뀌지 않았다. SOFA 개정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을 통한 정식 민간소송을 유족들이 소송을 하지 않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미국 측에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가망이 없다"며 "민간 차원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모의법정 형식을 빌어서라도 형사재판을 구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라도 진상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태그:#효순 미선 20주기 , #보령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