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세우는 공약 중 하나가 청와대 이전이다.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청와대 공간배치를 포함한 이전 계획을 내놓는다. 진영을 떠나 현 청와대 입지와 공간구조에 문제가 많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청와대 이전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당선 후에는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다. 서울종합청사와 외교부 청사에 이어 국방부 청사가 후보지로 거론된다. 역대 정부마다 말잔치로 끝났던 청와대 이전이 이번에는 정말로 구체화될지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 이전은 "소통은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통념에 부합하는 문제다.

그런데 후보지를 놓고 제기하는 경호와 보안 우려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전 정부도 비슷한 이유로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같은 이유를 들먹인다는 건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청와대 이전은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르디우스 매듭과 같다.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매듭을 풀었듯 의지에 달렸다. 청와대 이전을 추진하는 목적은 구중궁궐,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면 된다. '광화문 시대'니 '용산 시대'니 하는 발상부터 틀렸다. 장소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전하는 가를 생각한다면 경호와 보안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시민들 속에서 소통하고 경청하고 싶다면 서울청사든, 외교부청사든 문제될 게 없다. 국방부 청사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방부는 평소에도 일반인 접근이 차단된 공간이다. 국방부청사를 선택한다면 구중궁궐을 벗어나 다시 구중궁궐로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호가 용이하다는 이유인데, 모든 게 갖춰진 상황에서 경호라면 누군들 못할까 싶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124부대가 청와대 뒷산을 타고 내려와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다는 이들이 있다. 그럴 정도로 국방과 경호에 자신이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그 나라 대통령과 국민들과 거리다. 그들은 시민과 가까이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에 들렀을 때도 부러웠다. 누군가 이곳이 대통령과 총리 관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칠 만큼 경호는 단출했다. 시내 중심에 관저와 집무실이 있고, 지도자는 시민들과 수시로 눈인사를 나누며 드나든다. 유럽에서 가장 힘이 센 독일도 그렇다. 재임 당시 메르켈 총리는 퇴근하면 동네 수퍼마켓에서 카트를 밀며 장을 봤다. 메르켈이 장을 볼 때 경호팀이 따라붙었다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국가 의전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독일 총리는 경호를 마다하고 시민들 곁에 있었다.

지난해 8월 한국사회는 강성국 법무부 차관 의전 문제로 한바탕 격돌했다. 비속에서 브리핑하는 강 차관을 법무부 직원이 무릎 꿇고 우산을 받친 사진이 발단이 됐다. 보수 언론은 권위적인 문재인 정권을 상징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진보매체는 그렇게 하기 까지 영상 카메라 기자들 압박이 있었다며 언론행태를 비판했다. 사실 어떤 과정에서 그런 모습이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뿌리 깊은 과잉 의전문화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게 옳았다. 해당 직원이 자발적으로 우산을 받쳤더라도 과잉의전은 관료사회를 지배하는 고질적 병폐다. 청와대 이전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청와대 공간배치에 문제가 많다는 건 모두가 공감한다. 지금 구조는 시민들과 소통은커녕 청와대 참모들과 소통마저 제한한다. 참모진이 일하는 여민관과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500m가량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참모들은 평소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다. 보고하려면 7~8분을 걸어야 한다. 김장수 전 청와대안보실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가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말해 놀라게 했다. 본관 대통령 집무실의 권위적 배치도 문제다. 대통령 집무실 문에서부터 책상까지의 거리가 15m다. 이러니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리 없다.

한국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 본관은 2564평에 달한다. 시민들, 참모들과 만날 수 없는 단절된 절해고도다. 이런 공간에서는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저 일방적인 지시와 틀에 맞춘 보고만 있을 뿐이다. 청와대 폐쇄성을 언급할 때 미국 백악관 웨스트윙과 비교한다.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을 중심으로 부통령실, 선임고문실, 비서실장, 국토안보좌관실 배치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엉덩이를 걸친 채 보고 받거나, 보좌관들과 둘러서서 피자를 먹는 광경은 이래서 가능하다. 반면 청와대 공간구조는 '고독한 결단'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문제가 많다.

'세계 최고 대통령'이란 찬사를 받은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2010~2015)은 관저를 노숙자 쉼터로 내줬다. 그리고 20km 떨어진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매일 아침 관저까지 낡은 '비틀' 승용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경호원은 달랑 두 명이었다. 또 월급의 90%를 빈민 주택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권위가 추락했을까. 국민들은 그를 '페페(할아버지)'라며 따랐다. 무히카는 취임 때보다 높은 지지를 얻고 퇴임했다. 또 남미 최고 경제성장을 이뤘고 국민소득도 최고였다. 2014년 타임지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으로 무히카를 선정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런 지도자를 믿고 따르지 않을 국민은 없다. 탈권위주의는 시대 흐름이다. 퇴근길에 시민들과 맥주잔을 기울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는 빈말로 끝났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권위주의 청산 의지가 있다면 시민 속으로 들어가길 권한다. 시민들과 벽을 허물고 언제든 소통하는 지도자라면 국민통합도 어렵지 않다. 무히카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을 지나치게 받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청와대 이전, #구중궁궐, #권위주의 문화 청산, #호세 무히카 대통령, #광화문 시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