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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커피 나무에 열매가 수줍게 열려있다.
▲ 커피나무 열매 나의 커피 나무에 열매가 수줍게 열려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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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 벌써 4년째 키우고 있다. 몇 년 전 커피 농장에 다녀온 지인이 사다 준 커피나무 모종 한 그루를 애지중지 키웠지만 열매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워낙에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없어서 화분의 식물을 키워서 꽃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커피나무라는 희소성 때문에 관심은 기울였다.

그런데 커피나무가 무럭무럭 잘 커 주는 반전을 일으켰다. 어느새 키가 자라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해주었고 다섯 송이의 꽃을 피워서 커피 열매를 달기까지 했다.

나는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커피나무를 화젯거리로 내놓았다. 한마디로 나의 커피나무에 대한 자랑질이었다. 커피나무 키우기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처럼 떠벌리기도 했다. 인터넷에 다 나오는 지식들을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 아는 척을 하며 커피나무 키우기를 마스터한 것처럼 굴기도 했다.

어차피 내 지인들 중에는 커피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키울 수 없는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쭐해지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커피나무 꽃에서는 커피향과는 다른 신비한 향이 나기도 했다.
▲ 활짝 핀 커피나무 꽃 커피나무 꽃에서는 커피향과는 다른 신비한 향이 나기도 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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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고 하지만, 한국은 자연 환경적으로는 커피가 재배되기 힘든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커피나무 꽃이 피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것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감동 그대로 내 SNS 프로필 사진을 커피나무 꽃으로 내 걸어두기까지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커피나무 화분을 두고 물 관리만 해 준 것만으로도 나의 커피나무는 착하게도 잘 자랐다.

어느 날 옆 동네에 새로 오픈한 커피숍에 갔더니, 커피 열매가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장장 수령 10년이라는 커피나무가 입구에 떡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 부러웠지만 나의 커피나무에도 커피 열매 풍년을 안겨줄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 먹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커피를 키워서 원두를 직접 수확하고 로스팅 하고 갈아서 내려 먹는 맛을 언제쯤 보게 될까?

잎 하나 건드리지 않고 애지중지 키운 커피나무 

딱 5개만 열린 커피 열매를 매일 들여다보며 감동의 도가니를 채워가던 어느 날 열매 1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화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빨간 껍질에 둘러싸인 나머지 4개의 열매도 갈색 반점이 생기면서 검은색으로 변색되고 있었다. 수확해야 할 열매를 마냥 관상용으로 보고만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가슴이 쓰라린 아픔을 삼키며 나머지 커피 열매를 수확했으나 달랑 4알의 원두를 로스팅하고 어쩌고 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식탁 한쪽에 두고 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커피나무에는 가지마다 꽃눈이 달린 것이 관찰되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와 같은 가슴 뿌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벌써 코끝에는 원두를 로스팅하는 구수한 향기가 스쳤고 눈앞에는 하얀 커피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거름도 필요하고 햇볕도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유튜브까지 검색해서 계란 껍데기와 바나나 껍질을 갈아서 만든 천연 퇴비를 만들며 커피 농부 코스프레를 했다.

올봄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함부로 커피나무 화분을 바깥으로 내놓을 날을 받지 못하다가 동네 고추 모종 심기가 끝날 무렵 어느 날 햇볕이 좋은 날에 현관 앞에 커피나무를 내놓고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동안 커피나무를 방안에서 아기 키우듯이 키우면서 이파리 한 장도 함부로 따지 않았었다. 너무 무성해서 환기가 안 되는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난 차마 나의 커피나무의 이파리 한 장도 건드릴 수 없었다.
 
봄 햇살 한줌에 훅 가버린 나의 커피 나무
▲ 햇볕에 데인 나의 커피 나무 봄 햇살 한줌에 훅 가버린 나의 커피 나무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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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커피나무를 현관 앞에 내놓은 날, 한방에 훅 가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가 고사하지는 않았는데 나뭇잎의 절반 정도가 누렇게 말라가면서 떨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동네 다육 식물 화원을 하는 언니에게 자문을 구하니 실내에서 키우던 화분을 갑자기 바깥에 내놓으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도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빛을 쬐면 눈앞이 보이지 않거나 살갗을 데이는 것 같은 현상이라고 했다.

흉측한 몰골로 변한 커피나무를 다시 거실로 들여놓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자 힐링의 나무였던 나의 커피나무가 어처구니없는 한 순간의 실수로 몸살을 앓게 생겼다.
다행히 나의 커피 나무는 긴 장마를 잘 견디고 기력도 회복해 새로 나온 잎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돌아오는 봄에는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힐 날을 기대해본다.

태그:#커피나무, #커피열매, #커피나무 키우기, #원두커피, #로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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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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