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드래프트가 끝나고 FA 시장도 소강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각 구단은 내년에 함께 할 선수와 그렇지 않을 선수를 구분하는 선수단 정리에 한창이다. 이는 올 시즌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하위권 구단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 나란히 88승을 따내며 정규리그 1, 2위를 차지한 두산 베어스와 SK와이번스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두산이 13명, SK가 14명이라는 많은 숫자의 선수에게 내년 시즌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특히 SK에는 야구 팬들에게 꽤나 이름이 익숙한 베테랑 선수들의 이름도 대거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투수 중에서는 2017년 5승 3패 7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3.57로 '비룡군단'의 필승조로 활약했던 '피콜로' 박정배가 있다. 야수 중에서는 2011년 신인왕 출신의 외야수 배영섭과 2016년 19홈런을 기록하며 거포로서 가능성을 뽐낸 최승준이 눈에 띈다.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재취업에 성공할지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SK가 발표한 재계약 불가명단 14명 중에는 구단의 코치연수와 프런트 제안을 거절하고 현역 연장 의지를 밟힌 베테랑 내야수의 이름이 빠져 있다. 방출선수 명단에 포함시키는 대신 백업 내야수 보강에 관심이 있던 KIA 타이거즈로의 무상 트레이드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17년의 프로생활 동안 4개의 우승반지를 차지하고도 내년 시즌 광주에서 야구 인생의 세 번째 도전에 나선 나주환이 그 주인공이다.

아쉬운 FA계약 맺었던 나주환, 프로 15년 만에 생애 최고의 시즌
 
 나주환

ⓒ 연합뉴스

 
천안북일고 시절 봉황기 우승을 이끌며 '전국구 유격수'로 떠오른 나주환은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16순위)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됐다. '박경수(kt위즈) 쟁탈전'에서 LG트윈스에 패한 두산에서 차선책으로 나주환을 선택한 것이다. 나주환은 루키 시즌부터 96경기에 출전하며 1군 내야수로 활약했지만 나주환의 서울 생활은 5년이 채 되지 못했다. 2007년 4월 이대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SK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나주환은 SK 이적 후 4년 동안 3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첫 번째 전성기를 보냈다. 특히 2009년에는 약점으로 지적되던 타격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타율 .288 15홈런 60타점 21도루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을 노리던 나주환은 어깨 부상으로 33경기에 결장했고 경쟁자였던 강정호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시즌이 끝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2013년 2월 소집 해제된 나주환은 유력한 유격수 후보로 떠올랐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전하면서 입대 전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복귀 후 첫 시즌 15경기에서 타율 .087라는 민망한 성적을 남겼다. 나주환은 2014년 정근우(한화 이글스)의 이적으로 헐거워진 SK 내야진에서 127경기에 출전해 타율 .273 7홈런 51타점 10도루라는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FA시장에서 높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1+1년 5억5000만 원에 SK와 재계약했다.

FA계약 후 2년 동안 120경기 출전에 그친 나주환은 계약기간이 끝난 작년 시즌 연봉이 1억5000만 원으로 삭감됐다. 하지만 나주환은 2017시즌 내야 전 포지션을 아우르며 122경기에 출전해 타율 .291 19홈런 65타점 69득점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 해 역대 팀 홈런 신기록(234개)을 세웠던 SK 소속이었기 때문에 크게 돋보이지 못했을 뿐 나주환은 2017년 한화 이글스의 4번타자 김태균(17개)보다 많은 홈런을 때려냈다.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낸 나주환에게 돌아온 열매는 달았다. SK는 전천후 내야수로 활약한 나주환에게 전년보다 100%가 인상된 3억 원의 연봉을 안겼다. 2003년 프로 입단 후 15년 동안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묵묵하게 활약했던 나주환이 드디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FA계약 당시 느꼈던 아쉬움도 2017년의 대활약과 연봉 인상을 통해 조금이나마 털어버릴 수 있었다. 

백업으로 쏠쏠한 가치 있는 베테랑 내야수, 내친 김에 주전까지?

나주환은 작년 시즌에도 유격수로 80경기, 3루수로 32경기, 1루수로 16경기, 2루수로 14경기에 출전하며 SK의 유틸리티 내야수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타격 성적도 2017년보단 못하지만 타율 .262 12홈런 56타점 54득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나주환은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선발 출전하지 못했지만 교체 선수로 4경기에 출전해 6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나주환은 올 시즌 반발력이 떨어진 공인구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94경기에 출전한 나주환은 타율 .222 3홈런 20타점 14득점에 머물며 햄스트링 부상으로 15경기 출전에 그친 2013년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올렸다. 그나마 수비에서는 528이닝 동안 실책 1개에 그치며 안정감을 뽐냈지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주 포지션이었던 유격수로는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SK의 센터라인 내야수 중 가장 많은 연봉(3억2000만 원)을 받았던 나주환이 부진하자 SK는 나주환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다. SK구단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7세가 되는 나주환에게 코치 연수를 가거나 프런트로 변신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나주환은 여전히 현역 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었고 마침 경험 많은 백업 내야수를 찾던 KIA에서 나주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나주환의 무상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올 시즌 KIA는 나란히 FA 자격을 얻은 '꼬꼬마 키스톤 콤비' 김선빈과 안치홍 정도를 제외하면 유틸리티 내야수 자원이 마땅치 않았다. 주전으로 자리잡기 전에 내야 전 포지션을 오가던 박찬호는 시즌 중반부터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았고 2년 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황윤호는 아직 1군 경험이 부족하다. 1군에서만 통산 1423경기 출전 경험이 있는 나주환은 분명 KIA 내야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선수다.

게다가 KIA는 아직 유격수 김선빈, 2루수 안치홍과의 FA 계약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만약 KIA가 두 선수 중 한 명이라도 놓친다면 팀에게는 큰 악재이지만 나주환에게는 주전 자리까지 노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수도권 팀에서만 활약한 나주환이 광주에서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야 세대교체를 노리는 SK에 비해 백업이 부족하고 주전들마저 잔류가 불확실한 KIA가 나주환이 활약하기 더 좋은 구단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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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나주환 유틸리티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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